건풍제약에서 회계·자금담당과장으로 재직하던 박영희과장(38)이회사를 그만 둔 것은 지난해 4월. 신동방그룹이 당시 법정관리중이던 건풍제약을 인수하면서다. 3년이상 다녔던 회사를 졸지에 잃어버렸지만 큰 걱정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이라 구인업체가 많았기 때문이다.회사를 그만둔 후에 여러 군데를 전전했다. 그러나 보다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다보니 재취업한 직장도 얼마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몇번 되풀이했다. 급하게 먹은 음식에 체한 셈이었다. 실직과재취업을 되풀이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원형탈모증마저 생겼다. 『이참에 푹 쉬면서 몸이나 실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몇 달을집에서 쉬었다.11월에 접어들면서 몸이 완전히 제 컨디션을 찾자 다시 취업전선에나섰다. 취업알선기관이라면 모두 찾아가 구직의뢰를 했다. 그러나사정은 예전과 확 바뀌어 있었다. IMF로 기업들이 마구 쓰러지고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직장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마땅한 자리가 없다는 것이 구직알선기관의 하나같은 말이었다.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창업이나 자영업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던터라 더욱막막했다.◆ “자신을 상품화해 PR하세요”그러던 차에 카드랜드사에서 크레본이란 회사를 만들면서 사람을뽑는다는 사실을 경총 인재은행으로부터 듣고 면접을 봤다. 크레본은 액자 앨범 사진현상 등 웨딩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회사. 막상재취업이 이뤄지자 『주변에 실직자가 늘고 기업부도가 줄을 잇는상황에서 다시 취업을 하니 크게 안도감이 들었다』는게 박과장의고백이다.회사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조직체계가 완벽하게 정비되지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고 맡은 일도 전에 하던 일과 이어져 맘이 편하다』는 박과장. 실직기간중 히든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터라 나름대로 그 카드를 손에 넣기 위해 준비를할 참이다. 자격증이다. 업무와 연관된 자격증은 물론 기회가 닿는다면 나중에 퇴직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도 따놓을 계획이다.박과장이 재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열심히 가꾸고 적극적으로 구인자에게 내보여야 합니다. 누가 와서 사주기를 바란다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직장을 잃은 후에 외출을 삼가고 소극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있는데 생활의 리듬이 깨지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수록 주위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게 유리합니다.』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 자리잡은 이징효 이연제약 경리부 차장(41)이 실직자들에게 주는 「고언」이다. 결산시기인데다 회계 자금총무까지 모두 맡아서 회사 안살림을 꾸리다보니 요즘 밤 10시 이전에 퇴근해본 적이 없다.『실업자가 되니 집안분위기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더라구요.식구들이 보는 눈도 틀려지고요. 불안 연민 등의 감정이 섞인 눈으로 보는데 갑갑하고 우울해지더라구요.』이차장이 7년간 근무했던 대도제약을 그만 둔 것은 지난 96년 9월.대도제약이 삼성에 넘어가면서다. 『대개 기업이 다른 곳에 넘어가면 경리책임자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핵심인사를 심는 것이상례』라는 이차장은 『무언의 압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사표를 냈다.『실업자가 돼도 혼자라면 좀 괜찮겠지만 처자식이 딸린 처지이다 보니 기분이 착잡하고 불안해지고…. 그 기분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요.』졸지에 직장을 잃은 이차장은 재취업을 할 것이냐 자영업을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부인과 상의해 자영업을 해보기로 결정하고 퇴직금과 적금을 갖고 아이템을 찾았다. 처음에는 슈퍼마켓을 해보려고 김포지역의 아파트상가를 찾았다. 그러나 경험이 없으면 위험하다는 주위의 충고와 개점에 필요한 자금규모가 커 포기했다. 빨래방이나 분식점을 해볼 요량으로 직접 가게를 돌아다니며알아보고 권리금에 대해 흥정도 해봤다. 괜찮다 싶으면 집을 담보로 융자라도 낼 심산이었다. 하지만 빨래방은 비싼 권리금에 비해수지타산에서 승산이 없어 보였고 분식점을 하려니 기술도 없는 데다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았다.회사 다니면서 쉽게 말하고 듣던 「회사 그만두면 ○○나 하지」라는 말이 얼마나 허튼 소린지 새삼 깨달았다는 이차장. 결국 자영업은 포기했다.『왜 경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이 모양인가. 자동차정비기술이라도 배워둘걸…』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재취업을 결심하고직장을 찾아 나섰다. 부지런히 문을 두드린 덕에 여러 곳에서 면접을 보았으며 출근하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마음에 차지 않았다.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닌 상황이었지만 유사한 업종의 회사에서자신이 해왔던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제약업체에서만 18년간 경리일을 담당해온 그의 마지막 고집이었던 셈이다.『제약업체의 경리는 거래처 전반의 관리는 물론 소소한 잔일이 많아 그런 특성을 모르면 힘듭니다. 꼼꼼하고 한번 일이 주어지면 반드시 끝을 보는 성격이라야 버틸 수 있는 자리죠. 그런 일만 18년이나 했으니 온갖 감정이 다 생긴거죠.』시멘트포대를 제작하는 조그만 중소기업이나 더 많은 월급과 부장직을 줄테니 와달라는 연예이벤트회사의 제의도 거절하면서 계속일자리를 알아봤다. 그러던 차에 회계사로 있는 선배로부터 경총에구직알선을 해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퇴근하려는 직원을 붙들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궁하면 통한다던가.『마침 이연제약이라는 제약업체에서 방금 구인의뢰를 하고 갔다』는 말을 듣고 구직의뢰서를 작성했다. 이연제약은 병원에 의약품을납품하는 회사로 연간 매출액이 1백억원을 넘는 알찬 회사.이틀 뒤 경총에서 연락을 받고 사흘에 걸쳐 면접을 본 후에 출근을하라는 말을 들었다. 보수나 직급은 전에 다니던 제약회사와 동일하게 책정됐다.『경리직은 돈과 밀접히 관련된 직무특성상 믿고 안심할 수 있는사람만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장님이 전에 다니던 회사와 거래처 등을 통해 저에 대해 물어보셨다는 말을들었습니다. 재직당시의 꼬리표가 다시 취업할 때까지 따라 붙는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거죠. 그러나 제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면서한점의 꺼림칙함이 없을 정도로 깨끗이 처신한데다 일을 완벽히 처리했다고 자부했죠.』실업자가 늘어나는데 반해 경기는 최악이어서 재취업이 어려운 요즘. 『그래도 재취업이 되면 다행이지만 안된다면 자기의 실력을키워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는게 필요하다』는 것이 이차장의 경험론적인 충고이자 자기다짐이다. 실직의 뼈아픈 경험으로 요즘 뒤늦게 그가 더욱 성의를 갖고 키우는 「노하우」는 못다한 대학공부(방통대 법학과 4년 재학중)에 푹 빠진 것.『아무리 어렵더라도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앞뒤를 신중히 고려해 후회 없는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MF가 가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 이후까지 생각해서 자신의 진로를선택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