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1년전인 97년7월15일 기아자동차는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기아 몰락에서 많은 이들은 한국경제에 곧닥칠 위기의 냄새를 맡았다. 후각이 가장 발달한 외국인투자가들은『정말 지긋지긋하다. 이젠 지쳤다. 잘해보라』는 말만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그 이후 우리 경제의 모습은 기아자동차보다 더욱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금융위기가 경제전역으로 확산되면서 기아는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한국경제 부실대기업의 창고에는 한보진로 기아라는 왕고참들이 즐비한데도 우리 언론들은 신참 부실기업의 판정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3차에 걸친 동아그룹 협조융자, 그리고 55개 부실기업의 판정은 뉴스였지만 기아는 별 뉴스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작년 7월 이후 필자는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기아의 제3자 매각을 즉시 단행할 것을 주장했다. 부도난 기아의경우 당초부터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던가. 생산을 정상화하고경쟁력을 복원하는 일, 이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됐어야 했고 그게안되면 고용도 없었다. 흔히 존속가치와 청산가치를 따져 경제성을기준으로 부실기업 처리를 결정해야 한다지만 이는 애매한 부실기업의 법정관리를 법원이 결정할 때에나 필요한 일이다. 기아와 같이 쓸만한 설비와 종업원을 가진 기업, 그것도 앞으로 우리 경제의빵을 해결할 자동차산업의 대표주자의 경우라면 하루 빨리 기업을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새로운 자본과 경영이 기아를 인수할수만 있었다면 기아의 신속한 재조직이 가능했었지만 우리는 실패했다. 제3자 인수보다 더 좋은 대안은 단연코 없었다.그동안 뭘 했던가. 정치권, 관료, 기아의 구경영진과 노조, 언론등이 각자 이해에 따라 샅바싸움을 해온 가운데 기아는부도유예-화의-법정관리-공기업화를 전전했다. 항상 인수후보로 거론되던 삼성 현대 대우 포드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는데 이는 우리의 한심한 정치경제 때문에 이들이 매우 복잡한 계산에 몰두했다는증거다. 국민기업이라는 속빈 개념, 전문경영체제라는 허울이 빚어낸 무소불위의 국민정서법 때문에 이 땅의 정치권력과 그들의 통제하에 있던 관료들은 기아의 표류를 방치하는 죄를 범했다.매사가 그렇듯 지칠대로 지치면 순리가 지배한다. 이제 국민기업이니 전문경영이니 하는 신기루는 사라졌고 기아의 경영진과 노조의손을 들어주던 국민과 언론은 모두 어디 숨었는지 모르겠다. 기아문제는 만 1년을 꼬박 채우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1년을 넘기기가차마 미안했던지 기아 1주기를 앞둔 지난 7월6일 채권단은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의 국제공개입찰일정을 발표했다. 7월15일 기일(忌日)에는 국제입찰공고 안내문이 발송될 모양이다.기아의 국제공개입찰, 만시지탄이나 잘된 결정이다. 그동안 이전투구에서 얻은 한가지 수확이 있다면 기아의 회계투명성일 것이며 그덕분에 입찰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일사천리로 입찰을추진해서 하루 빨리 새로운 자본과 경영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기아 때문에 추락한 대외신인도를 기아의 신속한 처리로 회복시키는것이 실리적 국가경영임을 명심하고 공정 투명한 공개경쟁입찰이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채권단이 스스로를 위해서 잘하겠지만 몇가지 원칙이 지켜지기를바란다. 첫째, 입찰참가자격에는 어떠한 제한도 있을 수 없다. 둘째, 낙찰자 선정기준은 단순명료할수록 좋은데 가급적 최고가 제시자라는 단일기준이 좋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 재벌문제 우려,해외자본 기피, 고용문제 등 그럴듯한 이유를 책상머리에서 생각하고 선정기준을 복잡하게 만들수록 낙찰자는 제2의 PCS사업자가 될공산이 크다. 셋째, 이 기업결합이 공정거래법 제7조가 금지하는경쟁제한적 기업결합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입찰서류 접수 직후부터 낙찰자 선정 사이의 기간 동안에 공정위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겠다. 이 때문에 다소 지연될 수도 있겠으나 낙찰자를 선정한이후에 공정위가 이 기업결합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더 큰 비용을초래한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권력과 행정부에 바라건대 제발 기아의 입찰을 채권단에 맡겨뒀으면 한다. 기아 1주기의 상주(喪主)는 채권자와 주주임을 명심하고 가해자인 정치권과 정부는 개입의 유혹을떨쳐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