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몇년간 엘리트란 엘리트들은 모두 언론사나 광고회사로몰려 들지 않았습니까. 언론고시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기자하면 인기 직종이었고 광고회사도 신세대 인기 직장 수위에 오르내렸고요.근데 이게 뭡니까. IMF 이후 가장 별볼일 없는 직업이 또 기자나광고회사 AE 아닙니까. 도대체 나가서 뭘 할수가 있겠어요.』(A광고대행사 AE·32)IMF 이후 한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이 언론사와 광고회사다. 두 업종 모두 기업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줄이기 시작하는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둘다 전문직종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활용 가능성이 넓은 전문성이 아니라 다른 업종에는 전혀 이용 가치가 없는 전문성이라는게 문제다. 언론사나 광고회사를나오면 그간의 경력을 다른 곳 어디에도 써먹을데가 별로 없다. 특히 기자나 AE는 다른 직종에 비해 퇴근 시간이 늦고 저녁 술자리도많아 자기계발에 시간을 쏟을 여유도 거의 없다.기자나 광고회사 AE는 조로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기자의 경우40대에 들어서면 부장을 달게 되지만 부장이 된지 3∼5년이 지난후에는 편집국장이 되지 않는한 편집국에 남아 있기가 힘들어지고대부분은 다른 부서로 옮겨야만 한다. 기자가 다른 부서로 발령받을 경우 잘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변화를 못 견디고 회사를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직이면서도 평생직업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광고회사도 마찬가진데 광고회사의 차장은 일반 기업의 대리또는 과장급이고 부장은 일반 기업의 차장급 정도다. 광고회사는다른 업종에 비해 승진이 빠르지만 그런만큼 「팽」도 일찍 당한다.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서 지난해말에 정리해고당한 한 AE는 『무슨 원칙에서 내가 해고당했는지 모르겠다』며 『나가라니 구차하게굴 것없이 나오긴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말한다. 국내 유수의 광고회사에서 일했던 경력 덕분에 중소 광고대행사 일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로 몇달을 버텨왔지만 그나마도최근 광고시장 형편이 워낙 안좋아 일이 끊기고 있다고 덧붙인다.기자 사정은 더하다. 특히 지난해말부터 경영사정이 극도로 악화된몇몇 언론사의 경우 회사측이 일부러 해고를 하지 않아도 몇 달씩월급을 주지 못해 기자들이 스스로 사직하고 있는 실정이다. K신문사를 올초에 그만둔 30대 초반의 한 기자는 『남아 있으려면 퇴직금을 회사에 출자해야 하는데 그러느니 나오는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현재 영어를 배우면서 지내고 있지만 뚜렷이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를 필요로 하는데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물론 광고회사 AE나 언론사의 기자란 직업 자체가 장기적으로도 최악인 것은 아니다. 두 업종 모두 사람과 기업, 사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직종으로 시각에 따라서는 신세대들이 선호할만한「매력적인」 직업이다. 그러나 광고시장이나 언론시장이 지금까지거품이 너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IMF로 인해 그 거품이 빠지면서 광고계와 언론계에 엄청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고 당분간은적지 않은 「실직자」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는게 문제인 것이다.실제로 국내 5대 광고대행사의 경우 지난해부터 한 회사당20∼50명 이상의 직원을 정리해고 또는 무기한 무급휴직시켰으며급여도 평균 30% 정도씩 삭감했다. 작은 광고대행사의 경우 소리소문없이 직원들을 해고시키고 있으며 월급 지급을 몇달씩 미루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신문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언론연구원의조사에 따르면 IMF 이후 세계일보의 경우 직원 1백5명의 사표를 수리해 의원면직시켰고 한국일보는 51명의 간부들을 일괄사표와 선별수리 형식으로 퇴사시켰다. 동아일보는 IMF이후 3차에 걸친 구조조정에 따라 9백30명의 인원을 8백명으로 줄였다. 이밖의 언론사들도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인원감축을 단행했다.K일보의 한 기자는 『TV 드라마에서 자유롭고 멋있는 직종으로 자주 미화되는 광고회사 직원이나 기자를 보고 환상을 갖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사정이 나아진다 하더라도 기자가 고소득 직종이나 평생 직업이 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