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마저 계약관계로 치부되는 이 우울한 세기말에도 동화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배우 박신양은 어찌보면 21세기라는 말과는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첨단으로 치닫는 시대에 그는 「순애보」라는 고답적인 단어를 화두로 이끌어냈다.<편지 designtimesp=18114>의 다정한 말기 암환자, <약속 designtimesp=18115>의 의리넘치는 깡패두목 등그는 사랑을 위해선 모든 것을 내던지는 낭만적인 인물을 그려나갔다. 신작 <화이트 발렌타인 designtimesp=18116>에서도 그는 잃어버린 사랑을 잊지 못해 방황한다. 외환딜러라는 잘나가는 직업을 버리고 옛애인이 살던동네에 찾아가 새를 기르는 현준역이다.그를 옆에서 바라보는 소녀가 있다. 서점을 하는 할아버지와 함께사는 정민(전지현)이다. 정민은 그와 전서구(편지를 전하는 비둘기)를 통해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예감한다.이야기와 분위기가 동화적이다. 복고풍의 세트와 맑고 푸른 색조의화면, 동일한 장면을 여러컷으로 나눠 찍어 간결하면서도 여운을남기는 리듬감, 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수줍은 사람들이 마치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박신양이 만들어내는 90년대식 멜로물이 얼마만한 공감대를 얻을지관심이 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