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우리 경제에 대해 희망적인 전망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에 드리우고 있는 먹구름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 경제가 「선순환」의 궤도에 진입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금리정책이 당장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만 「저금리-자산가격상승-인플레심리 확산-근로의욕 상실-비용상승 및 생산성저하-경제체질 약화-경기침체」의 악순환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차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더욱 심해진다.특히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향후 경제운용 전략을 짜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저금리정책을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인지, 투자와 소비촉진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둬야 할지, 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의 상호관계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정립해야 할지, 도처에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지표경기 얼마나 좋아지고 있나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1/4분기 국내총생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 GDP(95년 불변가격기준)는 96조8천9백여억원으로 작년 1/4분기보다 4.6%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97년 4/4분기이후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정정호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97년 1/4분기 규모를 1백으로 볼 때 올해 1/4분기는 100.9를 기록한 것』이라며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말했다. 이는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등 내수가 증가세로 돌아서고 수출도 증가세가 확대된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각종 지표들도 상승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1/4분기중 산업생산은 전년동기대비 12.3% 늘어났으며, 도소매판매도 6.0% 증가했다. 특히 3월중 산업생산지수는 1백21.1로 외환위기 전인 지난 97년 10월의 1백18.5에 비해 높게 나왔다. 향후 6∼7개월간 경기가 꾸준히 좋아질 것으로 나타난 경기선행지수도 경기낙관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건설투자나 기계수주관련 통계는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의 잇따른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에도 불구,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해외 시각은 어떤가한국은행이 국내총생산 통계를 발표하기 이틀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주목할만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작년말 0.5%로 제시했던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대폭 수정, 4.5%로 조정한 것이다. OECD는 우리나라가 아시아 외환위기 국가중에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정부가 경제회생을 위해 취하고 있는 재정 및 통화 확장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경기저점을 통과, 급속한 성장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모건 스탠리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기존 2.5%에서 4.8%로 수정했다. 최근 급격한 재고감소가 끝나고 기업들의 생산이 증가세를 보이면서 「V」자형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민간소비는 금리하락에 따른 소비심리의 회복으로 지난해 9.6% 감소에서 올해는 5.3%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IMF의 휴버트 나이스 아·태담당국장 역시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약 4%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혀 비슷한 전망을 하고 있다.◆ 체감경기도 좋아지고 있는가대체로 그렇다는 반응이 주류다. 그러나 아직 만족할 만큼의 회복은 아니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충남 아산에 공장을 두고 있는 세일철강의 권태혁사장. 2년전 세계 최초로 「연속분채코팅」 설비를 개발한 장본인이다. 권사장은 요즘 경기를 묻는 질문에 『내수가 살아난 것은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40%는 늘었다는 것이다.특히 고급 가전에 들어가는 열연코팅강판은 50%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하반기 경기전망을 물었더니 『조금 나아지긴 하겠지만 IMF사태가 터지기 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는 일반론을 피력했다.경기도 이천에 자리잡고 있는 완구업체 레코코리아의 이윤하 사장도 『올들어서는 지난해보다 한결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얼마전 백화점에서부터 소매점까지 다 돌아보았는데 판매가 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사장 역시 『IMF사태 전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도자기 그릇을 생산하는 행남자기의 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득춘 전무는 『적어도 물량기준으로는 IMF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말했다. 수출도 잘 되고 내수도 회복돼 지난해에 비해 판매량이 30% 가량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저가 신제품을 많이 개발한데다 할인판매 행사를 끊이지 않고 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수지면에서는 아직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올 가을에는 지금보다도 더 나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환율이 1천1백원대에 머문다면 수출에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또 전기압력솥을 생산하는 대웅전기의 김용진 사장은 경기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경기실사지수(BSI)가 좋게 나오는 데에 대해 『경영자들이 지난해 하도 험한 꼴을 겪어 단련된 것도 한 몫 했다』고 지적했다. 가동률이 IMF사태 이전 수준까지 올라간 것이 아닌데도 가슴을 조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빌딩자동화 시스템을 생산하는 나라계전의 문성주 사장에게서는 건설경기와 관련된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30~40%는 늘어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단됐던 고급 빌딩 건축이 하나씩 공사를 재개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격경쟁이 치열해 본격적인 수지호전까지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성장을 주도하는 축은?수출 및 내수가 호조를 보이고는 있지만 양측 모두 경기를 견인할 정도로 힘을 갖고있지 못한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소비부문의 경우 고실업상태의 지속으로 지속적인 플러스 증가율을 이어가기에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채창균 박사는 『90년대이후 외환위기를 겪었던 스웨덴 핀란드 멕시코등의 경우를 보더라도 소비증가는 경기회복이후에 시차를 두고 나타났다』고 말했다. 시간적으로 「선 경기부양-후 소비진작」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같은 시각에서 보면, 최근 주한 미상공회의소가 우리 정부에 『소비부문을 중심으로 경기를 살려나가야한다』고 건의한 것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셈이다. 고가 사치재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는 소비의 질도 재고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대형 컬러TV와 골프채등 사치성 소비재 수입이 크게 늘고 있으며 일부 소비재는 그 수입규모가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늘어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월중 해외여행객도 무려 5백56.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수출은 매월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 항상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출증가율은 올들어 지난 4월까지 단 한차례도 플러스 증가율을 기록한 적이 없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반도체 자동차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의 수출은 여전히 침체돼 있다』면서 『엔저가 지속되거나 미 주식시장의 버블이 붕괴될 경우 수출부진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설비투자 늘고 있나설비투자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산업은행의 올해 설비투자전망은 마이너스였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통계청의 투자관련 지표는 마이너스 일색이다. 생산 및 소비부문의 지표와 비교하면 극과 극을 달리는 수준이다. 이에따라 금융권의 자금수요도 예전수준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반은행의 예금가운데 대출로 운용하는 자금의 비율(예대율)은 최근 70%대 아래로 떨어졌다. 예대율은 96년말 86.9%, 97년말 90.3%, 98년초에는 95%를 각각 웃돌았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이와 관련, 『대기업은 부채비율 축소 때문에 오히려 빚을 갚고 있는 상황이고 대출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기업은 재무구조가 나빠 제외하다 보니 돈을 빌려줄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사실 자금수요자인 기업과 가계는 작년 이후 대출금을 갚는데 주력해 왔다. 여기에다 주 차입원이었던 5대그룹은 동일인 여신한도 축소, 재무구조 개선약정 이행등으로 거의 신규자금을 만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대기업 대출이 월중 2조원이나 줄어들 정도였다. 이러다보니 은행차입을 통해 신규투자나 신제품개발을 모색하는 기업들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기업들이 설비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또 있다. 최근의 호전추세가 「반짝 경기」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저금리에 의한 소비진작이 경기회복의 「진짜」 이유라면 구태여 모험을 걸 필요가 없다는게 대다수 기업들의 판단이다. 70%대 수준에 머물고있는 제조업 가동률도 걸림돌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체는 80%이상의 가동률을 유지해야 추가설비의 필요성을 느낀다.이에따라 전문가들은 금융·세제상의 지원을 통해 미시적인 투자유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설비확장은 아니더라도 생산성향상이나 연구개발쪽에는 신규투자 여지가 있으므로 이를 제도적으로 유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환으로 유한수 전경련 전무는 『5대그룹의 부채비율 축소도 선별적으로 완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성향상이나 R&D투자를 위해 빌린 자금은 부채비율 축소대상에서 제외시켜 줘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이수희 연구위원도 『기술개발 및 합리화투자등 꼭 필요한 투자까지 죽어서는 곤란하다』면서 『주력산업들이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적절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미국도 변수다최근 전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을 모은 것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 여부였다. 미국이 자국의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릴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아시아 증시들은 일제히 약세를 면치못 했다.다행히도(?), FRB는 지난 19일 금리인상을 결정하지 않았다. 숨죽여 「하회」를 기다리던 아시아 증시는 일단 한숨을 돌렸다. FRB는 그러나 자국의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면 언제라도 금리를 상향 조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어 주변국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미국 경제에의 이같은 동조화 현상은 경우에 따라 상당히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특히 미국 주가가 갑자기 폭락할 경우 일파만파의 충격파가 세계 경제에 밀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미국 증시의 호황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탈출에 상당한 보탬을 주고 있다. 증시호황으로 실물경기의 호조를 지속시키면서 소비지출이 늘어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입장에선 미국 주가가 계속 상승하는게 당장은 바람직해 보인다.그러나 언제까지나 미국 증시가 상승행진을 거듭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내에서도 자국의 증시활황이 장기호황 국면의 막바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버블이라는 우려가 나오고있는 실정이다. FRB가 이번에 금리인상설을 슬슬 흘린 것도 호황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자국 경제에 혹시 거품이 끼지는 않았나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실제로 IMF는 최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자료에서 『미국경제가 주식시장의 붕괴없이 연착륙한다면 99년에 3.3%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지만 금융시장의 버블붕괴로 주가가 30%가량 폭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경우 경제성장률은 1.4%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 경우 IMF는 단순히 미국경제의 성장률만 하향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 성장률 자체도 1.2%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가 역시 마찬가지다. LG경제연구원은 만약 미국 주가가 30% 하락한다면 국내 주가는 일주일 이내에 25%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우리나라의 경기회복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다. 특히 주가하락은 자산효과를 통해 점차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가계소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상황에서 모든 문제의 열쇠를 미국이 쥐고 있으니 우리같은 약소국(?)으로서는 별 방법이 없는게 사실이다. 그저 미 금융당국의 태도를 예의주시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 지속적으로 펀드멘탈을 확충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경제운용 어떻게 해야하나우선 금리문제와 관련, 당분간 저금리가 지속돼야 한다는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거품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저금리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 다만 금리나 환율은 국제금융의 흐름과 실물경제의 동향에 맞춰 적절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의 현오석 경제정책국장은 『미국의 금리가 상승한다고 해서 국내 금리마저 큰 폭으로 오르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우리 경제가 아직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인플레심리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현국장의 지적대로 5월들어 미국의 TB수익률이 0.3%포인트 오르자 국내 회사채 금리는 0.7%포인트 상승하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 결과 주가가 폭락하고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향후 경제운용은 현재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는 생산(재고감소)과 소비부문에 지나치게 치중하기 보다는 장차 수출과 투자부문에 활력을 불어넣는 쪽으로 다시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특히 설비투자의 경우 그 확장효과가 2~3년에 걸쳐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이라도 투자유인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설비투자의 확대는 국제경쟁력 확충이라는 큰 틀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는게 이들의 주문이다. LG경제연구원의 김주형 이사는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속에는 다국적 자본의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건실한 형태의 투자를 유도하는 한편 산업구조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고 말했다.전체적으로는 원론적인 얘기도 많았다. 소비나 투자를 통한 유효수요 이론식의 경기부양도 좋지만 금융시장의 안정을 바탕으로 한 저비용-고효율구조의 정착을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