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기 침체가 주요인 … 미일 금리격차 확대될 듯

앞으로 국제금융 시장은 일본 경제의 향방에 따라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최근 들어 일본경제가 갑자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달 8일 사키이야 다이치 경제기획청 장관이 “지난해 4/4분기도 상당 수준의 마이너스 성장률이 예상된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만약 다이치 장관의 발언대로 4/4분기 일본경제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나올 경우 3/4분기 마이너스 1.0%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다는 것은 경기가 침체국면에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이번에 경기가 침체되면 일본 경제는 90년대 이후 장기간 침체 과정에서 세번째 재둔화(triple-dip) 국면을 맞게 되는 셈이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이렇게 될 경우 일본 경제는 당분간 침체국면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일본 경제가 이렇게 된데에는 무엇보다 국민총생산(GDP)의 약 66%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소비가 회복되지 않는데 있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속된 달러당 1백5엔 이하의 엔화 강세도 수출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하면서 경기둔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물론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공공지출을 통해 경기부양을 모색했지만 이제는 그만큼 민간수요가 줄어드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 때문에 경기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 정부의 개혁정책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따라서 앞으로 일본 경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은 두가지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나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있는 민간소비가 회복돼야 한다. 다른 하나는 GDP의 1백28%에 이를 만큼 부채함정(debt trap)에 걸린 공공부문이 개선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낮은 상태이다.◆ 엔화강세 일본 수출경쟁력 약화 초래앞으로 일본경제가 회복되지 못한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엔화 가치의 약세국면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경제 부진, 미일간 금리격차 요인을 반영해 최근에 엔·달러 환율은 1백10엔대로 상승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9월 이후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물론 향후 엔·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금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연간 3천억달러가 넘어선 미국의 무역적자를 중시하는 견해들은 다시 엔화 가치가 1백엔 내외선으로 강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반면 미일간의 성장률과 금리차와 같은 경제기초여건(fundamentals)을 중시하는 견해들은 지금의 엔화 약세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제 외적인 측면에서 일본 정부는 침체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기회복을 위해서 현재 고평가된 엔화 가치를 시정해야 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현재 미일간의 협조관계를 감안할 때 일본이 미국의 금리인상을 용인해 줌으로써 경상거래 측면에서 기록한 대규모 무역적자를 자본거래 측면에서 흑자로 보전해 줄 경우 미국과 같은 경제대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미국도 일본의 엔화 약세를 용인해 줌으로써 경상거래 측면에서 일본이 누리고 있는 흑자기조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견해다. 결국 미일 양국이 협조해서 자본거래와 경상거래 측면에서 제각기 누리고 있는 세계 제일의 우위를 계속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각대로라면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는 앞으로 엔·달러 환율의 향방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현재 예측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향후 엔·달러 향방에 대해서는 당초 예상보다 엔화 약세를 점치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대체로 금년 연말에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백15∼1백20엔으로 예상하는 기관이 지배적이다.국제간 자금흐름 측면에서는 미국으로 재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일간의 금리격차(단기금리 기준)는 지난해 6월말 이후 네 차례에 걸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5.75% 포인트로 확대되고 있다.더욱이 현재 미국경제의 장기호황세와 주식시장의 여건을 감안하면 앞으로 미국은 금년내에 최소한 두 차례 이상의 추가 금리인상이 예상된다. 반면 일본은 경기가 다시 침체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제로금리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앞으로 미일간의 금리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에 미일간의 금리격차가 6%포인트를 넘을 경우 엔화 표시자산에 대한 투자메리트는 거의 상실될 우려가 있다. 이 경우 지난해 이후 일본으로 유입됐던 자금들이 미국의 국채시장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문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개도국들이다. 과거의 경우 최근과 같은 국제통화질서에서는 반사적인 측면에서 외국자금이 아시아를 비롯한 개도국으로 많이 유입된다. 이 과정에서 개도국 주가는 상승돼 경제 거품화를 초래하고 통화가치는 경제여건에 비해 지나치게 고평가되는 것이 관례이다.이 경우 개도국들은 거시경제 운영상에 있어서 균형감이 갑자기 흐트러질 우려가 있다. 특히 성장률, 실업률, 물가, 국제수지 등 4대 거시경제 목표중 국제수지 부문이 급속히 악화되는 것이 현안으로 대두된다. 그 결과 헤지펀드를 비롯한 국제 투기자금들에 좋은 투기처를 제공할 소지가 높아진다.이 문제는 지난 95년초 루빈이 미국의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이후 강한 달러화 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아시아 각국의 경제현황과 외환위기 과정을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으로 보인다.특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일시적이냐 기조적이냐 하는 점에 있어서는 논란이 있으나 1월 들어 이미 무역수지가 외환위기 이후 26개월 만에 4억달러 적자로 반전됐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15일까지 적자규모가 14억달러에 이르고 있다.더욱이 최근에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국제유가도 금년 4월 이후 원유비수기에 접어든다 하더라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합의가 유지되는 한 쉽게 누그러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들의 수입규제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요인을 감안하면 무역수지 적자추세는 기조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다.따라서 외환당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한 외환정책이 요구된다. 즉,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우리 경제여건과 관계없이 투기적인 외자유입으로 원화가 절상되는 현상은 당국이 시장조성적인 기능을 발휘해 방어해 줘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해외투자공사를 설립해 자본거래만을 특별히 관리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물론 이같은 견해에 대해 시장론자들은 97년 하반기 이후 어설픈 시장개입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사례를 들어 반대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환율이 시장에 맡겨져 자율적으로 결정되려면 외환수급이 우리의 정상적인 경제여건을 반영할 때에만 가능하다. 개도국들이 흔히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투기자금을 환율로 흡수할 경우 상황이 바뀌면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갑자기 증폭될 우려가 있다.혹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현 경제팀이 저금리 유지와 총선을 겨냥한 주가관리 차원에서 현재 누적된 인플레 요인을 원화 절상을 통해 흡수할려고 한다면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