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리전트 빌딩에 각종 편의·쇼핑·정보통신 시설 속속 입주, 역내 인터넷카페 등 승객 사로잡아

철도에 관한 한 일본은 세계 최강의 선진국이다. 최고 속도에서는 프랑스의 TGV에 뒤지지만 신칸센이라는 탄환열차가 구미 어느나라의 기차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리며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지켜준다.뿐만 아니다. 도쿄 일대의 수도권과 대도시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어지간한 중소도시와 시골에까지도 철로는 어김없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그리고 그 위를 형형색색의 각종 열차가 24시간 달리며 1억2천5백만 일본인들을 쉴새 없이 실어 나른다.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패전 잿더미 속에서 소리없이 챙겨둔 가장 소중한 국부중 하나가 바로 ‘철도’라고 자랑하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온다.하지만 지상에 깔려 있는 선로의 길이와 열차의 외형만을 보고 일본을 철도선진국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철도선진국 일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저력은 철도와 고객이 만나는 최초의 접점인 ‘역’에서 나온다.수십개의 대기업이 철저하게 수익과 서비스 개념에 입각해서 철도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에서 역은 승객이 그저 열차를 타고 내리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다. 웬만한 역에는 일류호텔에서 쇼핑가 식당 은행 세탁소 문구점 사진현상소 병원에 이르기까지 각종 편의시설이 고루 들어서거나 그 주위를 에워싸며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역에만 들리면 일상생활의 잡다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고객들을 열성적인 철도팬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이에 더해 일본의 역들은 최근 첨단 비즈니스 발신지를 표방하면서 한차원 수준 높은 변신을 추구하거나 섬세한 서비스 보강에 앞다투어 열을 올리고 있다.도쿄 일대의 수도권전철 운영회사중 하나인 JR동일본은 비즈니스맨들이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용할 수 있는 ‘데스캇트’라는 이름의 간이 사무실을 도쿄역에 개설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는 모뎀을 꽂을 수 있는 콘덴서부착 책상이 각 방마다 비치돼 있다. 요금은 30분에 1천1백엔부터. 이 회사는 또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카페 설치 작업을 진행중이다.◆ 미니편의점, 온-오프라인 연계 짭짤한 재미JR동일본은 자사가 운영하는 사이버쇼핑몰을 역구내의 미니편의점인 ‘JC’ ‘미니콘비’ 등과 연계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한가지 예가 인터넷 상에서 판매한 상품을 고객이 지정한 역 구내의 미니편의점에서 스스로 인수해 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고객은 별도의 배송료를 물지 않아도 돼 싼값에 상품을 살 수 있다.역구내의 미니편의점들은 JR동일본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일종의 ‘새끼점포’다. 따라서 JR동일본은 계열사를 통한 온라인-오프라인 결합으로 가격경쟁력 제고와 함께 또 다른 수익창출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주택가에 인접한 역들이 벌이고 있는 사업중 부쩍 시선을 끌고 있는 것이 탁아 서비스다.오다큐전철의 자회사인 오다큐상사는 지난 2월부터 도쿄의 세타가야구에 있는 기타미역에서 탁아, 개호 및 가사대행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고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나타나 “이같은 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기타미 역 부근으로 이사오고 싶다”는 고객들의 소리가 줄을 이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어린이들을 맡아주는 탁아소는 철로 고가선 밑에 설치돼 입지가 좋지 않다. 그런데도 아이를 맡기려는 부모가 많아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순서를 기다릴 정도가 돼 버렸다.탁아와 함께 가사대행 서비스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그러나 오다큐상사는 사업초기인만큼 큰 이익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연간 매출목표도 불과 6천7백만엔으로 잡혀 있다. 눈앞의 수익보다는 철도 주변의 주민들에 대한 서비스 향상이 1차적 목표라고 밝히고 있어 ‘언제나 함께 있는 이웃’이라는 친밀감을 통해 고객과 함께 커가는 공생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JR서일본이 오사카의 스미도 역에서 시작한 자전거 렌탈서비스는 철도 수익을 늘리면서 자전거 방치문제를 해결한 일석이조의 대표적 뉴 비즈니스로 꼽힌다.자전거가 서민의 발인 일본에서는 역 주변 어디에나 자전거가 수두룩히 널려 있고 자연 행정당국과 철도회사는 무단 방치된 자전거 처리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하지만 JR서일본은 ‘에키린쿤(역의 바퀴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통해 철도고객들의 이용편의를 높임은 물론 함부로 방치되는 자전거를 크게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이 회사는 스미도역 주변에 약 7천대를 동시에 세울 수 있는 자전거 주차장을 확보해 놓고 있다. 여기에서는 보증금 8천엔을 낸 회원에게 1개월에 2천엔만 내면 회사 소유의 자전거를 맘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객들로서는 비싼 돈을 주고 자기 자전거를 살 필요가 없어졌고 역은 역대로 무단방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일본 철도회사들의 비즈니스 감각은 도시계획을 앞서갈 정도로 초현대적 센스를 뽐내는 역사건물의 현대화 작업에서도 엿볼 수 있다.지난 5월에 완공돼 전면영업을 시작한 나고야 역사 JR센트럴타워즈가 대표적인 예다. 이 역사는 지상 53층의 높이에 연면적만도 41만6천6백㎡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정거장 건물이다. 지상 1~11층까지는 일류백화점인 다카시마야가 입점해 있고 그 위에는 매리어트호텔과 최첨단의 정보통신기능을 갖춘 사무실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야 말로 역 위에 세워진 입체도시다.◆ 쇼핑·교통편의 이점 맞물려 운임수입도 껑충이 역사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인텔리전트 빌딩이 없었던 나고야에서 단연 최고의 멋쟁이 빌딩으로 꼽힌다. 1만3천회선분의 광케이블이 깔린 이 역사 건물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과 최고의 교통여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어 히타치 도요타자동차 마쓰시타전기 기린맥주 등 일본의 초일류기업들이 앞다투어 입주, 오피스 빌딩으로도 성가가 높다.이 역사의 야마다 히로미 영업부장은 “빌딩의 집객효과와 교통편의 이점이 맞물리면서 승객이 크게 늘어나 운임수입도 오픈 전보다 10% 이상 늘어났다”고 털어놨다.JR홋카이도와 다이마루백화점 등 11개사가 손잡고 삿포로에 건립중인 새 역사는 도시개발과 함께 지역경제 부흥의 견인차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케이스다.연면적 27만4천㎡에 38층 높이로 세워질 삿포로 역사는 이 안에 들어설 백화점의 초년도 매출만도 6백억엔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다 항공사 호텔 일류회사 등 알짜배기 손님들이 줄지어 입주할 것으로 보여 지역주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JR홋카이도 관계자는 역사가 첨단 복합건물로 다시 태어나게 되면 유동인구도 크게 늘어나 현재 하루 33만여명에 불과한 철도이용 승객이 최소 20%는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철도 회사들은 최근 수년간 땅값이 크게 하락한데 힘입어 외곽으로 빠져 나갔던 인구의 도심회귀가 서서히 시작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도쿄등 일본의 수도권 일대 철도역은 도시인을 겨냥, 주거와 생활편의 기능을 갖춘 복합건물로 탈바꿈하면서 첨단 비즈니스센터로 더 빠르게 변모해 갈 것이 분명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