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유럽 등 수출 물꼬 터 … 영화 산업화 가능성 점화, ‘쉬리 이후’도 순항중

<쉬리 designtimesp=20439>는 99년 제작해 서울관객 2백43만명, 전국관객 5백79만명이란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언제적 쉬린데 아직도 쉬리?’ 아니다. <쉬리 designtimesp=20440>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제규필름은 지난 11월2일 막을 내린 이탈리아 밀라노 필름마켓에서 독일, 프랑스, 그리스, 터키, 폴란드 등 유럽 8개국에 39만달러 수출 계약을 맺고 돌아왔다. 한국 영화가 유럽 전역 극장에서 일반 개봉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많은 유럽인들에게 당분간 ‘한국영화=쉬리’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첫인상은 늘 강렬한 법이다.지난 99년 제작돼 서울관객 2백43만명, 전국관객 5백79만명이란 흥행 신기록을 세웠던 쉬리는 이제 해외에서 또다른 기록들을 끊임없이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 초 일본에서 개봉한 <쉬리 designtimesp=20443>는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개봉 당시 37개였던 상영관은 1백20여개까지 늘었고, 2000년 일본 흥행작 중 수위에 들것이 확실하다. ‘몸값’도 1백30만달러라는 한국 영화 사상 유례 없는 거금이었다. 게다가 판권비로 일정액을 받고, 흥행 결과에 따라 추가 수익을 다시 정해진 비율로 나눠 받는 미니멈 개런티 방식의 계약이기 때문에 실제 강제규 필름이 벌어들인 수입은 이보다 더 많다.당분간 ‘한국영화=쉬리’로 기억될 듯영화평론가 김유준씨는 올해 초 일본에서 쉬리가 개봉될 때의 분위기를 보고 ‘한국 영화 붐이 이제 국내 언론만 홀로 흥분하는 수준이 아니다’고 ‘증언’했다.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도쿄 시부야에서는 빌딩의 전광판에 한석규와 최민식이 총을 겨누는 화면이 곧잘 눈에 띄었고, 신주쿠나 긴자에서도 마찬가지였다.요즘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영화가 60년대에 누렸던 전성기를 다시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있게 단정하는 첫번째 이유가 바로 영화가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영화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한해 동안 5백만달러가 넘는 해외 수출고를 올렸다. 영화라는 상품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항상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국이었다. 거져 주다시피 헐값에 판권을 넘기던 한국 영화가 제값받는 문화 수출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이렇게 한국영화가 세계 시장에 나갈 수 있게 물꼬를 튼 일등공신이 <쉬리 designtimesp=20451>였던 것이다.쉬리가 어떻게 만들어진 영화이며, 성공 요인이 무엇이었는가는 더 이상 얘깃거리가 못된다.(171호 커버스토리 ‘오락산업 뜨는 이유’ 참조) 이제 관심사는 쉬리가 한국의 영화산업에 남긴 것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다.쉬리에 뒤이어 한국 영화들이 세계시장에서 상품 가능성을 보이면서,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해외 시장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됐다. 시네마 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강제규필름, 싸이더스, 명필름, 유니코리아 등 국내 유수의 제작사들은 국제 사업부를 신설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과거 영화사의 해외업무 부서들이 주로 외화수입을 해 왔던데 비해 새로 생긴 이들 부서는 한국 영화 해외 세일즈와 합작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명백히 구별된다. 미로비전, 씨네클릭 같은 민간 해외세일즈 에이전트들도 등장했다. 미로비전은 몇년전부터 우수한 단편영화를 꾸준히 유럽에 소개해왔다. 최근에는 시네마서비스의 한국영화 세계배급을 맡고 있는데 일이 늘면서 회사가 급성장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국제영화제도 적극적으로 한국 영화 판촉에 나서고 있다.한국영화가 영화의 산업적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하는데도 <쉬리 designtimesp=20458>가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내세웠던 이 작품 이후, 기획에서 제작과 배급에 이르는 전 영화제작과정의 혁신이 본격화됐다. 영화사 사장이 돈을 대고 감독을 고용해 영화를 만드는 ‘충무로식’ 제작에서 투자와 제작을 분리, 분업화와 전문화를 극대화시키는 프로듀서 시스템으로 전환이 이뤄졌다. 영화인들은 최선을 다해 양질의 제품을 만들고 거기서 얻은 수익을 다시 양질의 새 제품 생산에 재투자하는 생산 체계가 자체의 동력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영화제작·투자 분리 이끌어내또한 <쉬리 designtimesp=20464>는 문화상품의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름도 생소하던 물고기 쉬리는 서식지 동강이 몰려운 사람들로 몸살을 앓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쉬리 designtimesp=20465>의 흥행과 더불어 청계천 관상어 거리가 호황을 누렸고 캐릭터 상품도 쏟아져 나왔다. 영화의 지방홍보 효과도 새삼스럽게 부각됐다. 촬영지였던 제주신라호텔과 그린빌라제주에는 국내 뿐 아니라 일본 단체관광객이 몰려든다. 제주도에는 쉬리언덕도 있다. 최근 배우 김윤진은 일본 관광객 2백명과 함께 제주 신라호텔 앞 벤치를 찾았는데, 내년에도 일본 관광객과 함께 오기로 예약돼 있다.이 모두가 <쉬리 designtimesp=20468>만으로 인한 성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때 충무로에서 유행처럼 ‘한국영화, ‘쉬리 이전’과 ‘쉬리 이후’’ 라는 말이 쓰였듯이, 이 영화가 변화의 추동력이 됐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대형 오락물 일색의 기획, 소재의 단순화 등 이 영화의 성공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영화 산업 자체 동력이 마련되고 다양한 방식의 해외 시장 접근이 이뤄지는 등 일단 ‘쉬리이후’의 한국 영화는 순항중이다.★ <쉬리 designtimesp=20477> 이후 한국 영화‘안방 너무 좁아’ 밖에서 더 잘 논다일본의 유수 영화잡지 키네마 순보는 99년 영화계를 정리하는 기사에서 “99년 아시아 영화를 돌아볼 때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한국영화의 대약진일 것이다. 혹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영화의 현재’가 한꺼번에 인식된 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영화가 밖에서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99년에는 1백30만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일본 판권을 팔아치운 <쉬리 designtimesp=20482>가 홀로 독주했던데 비해 올해는 여러 작품이 고루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영화라는 문화상품의 수출 전망을 더 밝게 한다는 점. <텔미썸딩(사진 아래) designtimesp=20483>(50만달러), <단적비연수 designtimesp=20484>(70만달러), <유령 designtimesp=20485>(40만달러), <은행나무침대 designtimesp=20486>(30만달러), <섬 designtimesp=20487>(10만달러) 등이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춘향뎐(사진 위) designtimesp=20488>도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에 모두 1백만달러에 팔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designtimesp=20489>는 유럽 국가로는 사상 최고액인 22만달러에 프랑스 판권을 팔았다. 쉬리의 흥행신기록을 위협하며 올해 한국영화 최고 히트작이 된 <공동경비구역 JSA designtimesp=20490>는 본격 수출이 시작되면 상당한 판매고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외형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지난 5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designtimesp=20493>이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사상 처음으로 진출했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감독과 배우들은 세계 영화인들이 선망해마지 않는 ‘칸의 붉은 주단’ 위를 당당히 걷고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단편영화는 양과 질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생산량으로는 전세계 3, 4위권이다. 99년 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서 송일곤의 <소풍 designtimesp=20496> 심사위원 대상, 98년 클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 김진한 감독의 <햇빛 자르는 아이 designtimesp=20497>가 최우수 창작상을 받는 등 한국산 단편영화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합작영화 제작도 줄을 잇는다. 이재용 감독의 <순애보 designtimesp=20500>,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designtimesp=20501>는 한국 일본 홍콩 세 나라가 공동제작한다. 중국감독 장원의 <허삼관 매혈기 designtimesp=20502>, 홍콩 감독 유릭와이의 <부산이야기 designtimesp=20503>와 같이 외국 유명감독을 국내사가 고용해 만드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런 합작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이제 타깃 시장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기획 의도와 제작 시스템의 변화까지 몰고 온다. 중국서 촬영중인 <무사 designtimesp=20504>는 예산이 50억원짜리 대형물이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손익 분기점을 넘으려면 서울 7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대작이 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시장이 아시아 전역으로 넓어진다고 하면 부담감은 훨씬 줄어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