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4사 벌크형제품 생산향 늘리고 총공세 ··· 신문광고 · 전광판 사랑고백 등 손님끌기법 다양

2월9일 서울 신촌역 근처의 선물가게를 찾은 최정윤(이화여대 2년)씨는 밸런타인데이 때 남자친구에게 줄 초콜릿을 하트모양의 종이상자에 무심코 담다가 다시 한웅큼을 덜어내면서 입을 뗐다.“지난달 내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초콜릿 값으로 다 나가게 생겼어요.”항아리 모양의 투명 케이스에 구색을 다 갖춰 담다간 7만~8만원은 족히 나갈 판이라 최씨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처음부터 알뜰하게 종이상자를 택했던 터였다.그래도 최씨는 ‘진짜 남자친구’말고도 ‘관리’차원에서 챙기는 서너명의 친구들까지 합쳐 밸런타인 비용으로 20만원 정도를 잡았다.예년과 달리 불황속에 맞게 되는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는 어느 정도 특수가 일까. 매년 이맘 때가 되면 관련업체들은 ‘밸런타인 특수’를 잡기 위해 치열한 판촉전을 펼친다. 온라인 여론조사 기관인 나라리서치(www.nararesearch.com)가 최근 ‘밸런타인데이에 대한 여성네티즌의 생각’을 물은 결과 전체의 67.65%(1천1백52명)가 ‘소비를 증가시키긴 하지만 사랑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대신 선물비용은 1만원대가 27.71%(4백78명), 2만원대가 20.93%(3백61명)로 1만~2만원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선물 품목은 역시 ‘초콜릿’이 34.86%로 가장 많았다.‘골라만드는 벌크형 초콜릿’ 인기 급증강남역 사거리에 위치한 디자인상품전문체인인 아트박스 매장을 2년째 운영하는 이만식씨(43)는 “이번 밸런타인데이는 졸업식과 겹쳐선지 지난해보다 이틀 정도 이른 5일부터 손님들이 찾고 있다”며 “지난해 임시로 설치한 밸런타인 전문코너 대신 아예 매장전체를 초콜릿세트 제작을 위한 아이템들로 채워놓다시피 했다”고 말했다.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서 밸런타인데이 특수를 노리고 다른 곳보다 3일 정도 일찍 초콜릿세트 좌판을 펼친 김진표씨(39)도 “올해는 완제품을 사가는 손님이 없어 장사가 통 안된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완제품이 팔리지 않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신세대들의 취향에 맞는 초콜릿 재료들이 부쩍 늘었고 잘만 조합하면 비교적 싼 비용으로도 개성과 정성이 듬뿍 담긴 훌륭한 초콜릿 선물세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요즘엔 (초콜릿을) 제과점이나 백화점에선 잘 안사요. 팬시점이나 초콜릿 전문점에 가면 ‘골라 만드는 재미’가 있죠. 값도 내맘대로 맞출 수 있고요.” 친구들과 어울려 팬시점을 찾은 김선경양(17, 고2)의 말이다.초콜릿이 밸런타인데이의 주종목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가장 큰 특수를 누리는 곳은 초콜릿생산업체들이다.국내 초콜릿업계는 크게 롯데제과, 해태제과, 동양제과, 크라운제과 등 ‘빅 4사’와 로얄제과, 청우제과, 코롬방, 두남제과 등 선물용 ‘초콜릿 전문 4사’로 나눠져 있다. 이들의 초콜릿 연간 매출은 빅 4사 2천2백억원, 전문 4사 3백억원 등 모두 2천5백억원에 이른다.빅 4사의 경우 밸런타인 수요가 그리 크지 않지만 전문 4사는 총매출의 70%를 밸런타인데이에 올린다. 따라서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올수록 전문업체들의 움직임은 당연히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때를 놓쳤다간 그해 장사를 망치기 때문이다.최근 2~3년전부터 완제품보다 하나씩 낱개로 포장된 ‘벌크형’ 초콜릿 수요가 많아지면서 수공으로 다양한 아이템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선물용 초콜릿 전문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선물용 초콜릿 시장의 절반 정도를 점령한 로얄제과만 보더라도 지난해보다 벌크형 초콜릿 비중을 10%정도 더 늘렸다.로얄제과 영업팀 윤병돈 대리는 “지난 설 때도 이렇다할 재미를 못 봐 처음엔 생산량을 줄였지만 벌크형을 찾는 알뜰 고객들이 예상보다 많아 막바지까지 추가생산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반대로 손이 많이 가는 벌크형 초콜릿을 만드는게 손쉽지 않은 대형 제과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밸런타인데이용으로 특화한 초콜릿을 6종이나 내놓았지만, 수십가지씩 각양각색의 벌크형 초콜릿을 쏟아내는 선물용 초콜릿전문업체들의 반응생산 속도를 따라잡는게 역부족”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비용부담돼도 매출증대 기여 ‘이색 이벤트 봇물’여성포털사이트 여자와닷컴은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전광판 사랑고백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초콜릿 판촉과 함께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봇물을 터뜨리고 있다. 보험사 텔레마케터인 조은정씨(23)는 애인 정재홍씨(27)와 2월14일 오전 10시 5분쯤 서울 종각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맞은편 빌딩 위에 있는 광고용 전광판에 20초 동안 자신의 사랑고백 장면이 ‘방영’되는 걸 남자친구와 함께 지켜보기 위해서다. 당일 전광판에는 미리 작성해 보낸 ‘정재홍씨 보세요! 오빠, 변함없이 사랑해!’란 메시지가 뜬다.이런 이색 이벤트를 마련한 (주)우먼드림의 여성포털사이트 여자와닷컴(www.yeozawa.com)의 백선아 과장은 “쇼핑몰 이용고객중 1천명을 뽑아 전광판 사랑고백 이벤트에 참여하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며 “전광판을 임대하는 데 다소 비용부담이 있지만 쇼핑몰 상품거래로 3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원확보와 인지도 확산 효과를 감안하면 투자대비 수익은 상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코리아닷컴도 60명을 뽑아 14일자 신문 전면에 ‘프로포즈 CF’를 게재해 준다. 현대백화점도 구매 고객들을 대상으로 ‘전광판 사랑고백’ 이벤트를, 명동의 패션몰 유투존은 커플들에게 ‘스캔들 기사’를 써준다.인터파크 김재중 이벤트운영팀장은 “기업들이 밸런타인데이를 활용하는 양상이 보다 계획적이고 다양해졌다”며 “더구나 요즘의 경기위축은 이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