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약세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해외수출시장에서 경쟁상품이 많은 우리나라는 엔화 가치변화에 따라 수출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크다. 일본 엔화 가치는 지난 99년말 달러당 1백2엔대를 기록한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여 지금은 1백23엔대를 넘어섰다. 특히 최근 들어 그같은 엔화 가치하락이 가파르게 이뤄지고 있어 어디까지 추락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엔화 가치하락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금융불안에 근거하고 있다. 일본 경기불황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올들어 급속한 악화를 보이고 있는 것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문제가 표면화됐기 때문이다. 일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규모는 2000년말 현재 약 30조엔을 넘고있다. 또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분류여신’까지를 포함하면 64조엔을 넘는다고 한다. 일본은행들의 부실채권이 늘고 있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금융산업구조조정이 미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 증시 주가가 폭락하고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면서 은행들의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졌다.일본경제의 ‘3월 위기설’이 나돈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실 일본경제가 불경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기본적으로 경기를 회복시킬만한 정책수단이 없다는 점이 맨 먼저 꼽힐 수 있다. 일본은 지난 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이후 58조원의 재정자금과 60조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경기부양과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지만 별다른 효험을 보지못했다. 금리도 ‘제로(0)’를 유지했지만 소비가 늘기는 커녕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다. 결론적으로 쓸수 있는 정책은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경기부양을 위한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로 더욱 혼란스런 양상이 지속되자 경제불안이 가중되고 대외경제력을 나타내는 엔화가치가 떨어지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따라서 일본이 경기를 살리기 위한 처방으로 엔화 약세를 부추긴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3월1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당초에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회복을 위해 일본 엔화약세를 용인한다는데 합의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회담이 끝난뒤 발표된 공동성명에 명시적으로 표시되지는 않았지만 부시행정부의 정책기조 자체가 강한 달러인 만큼 어느 정도 엔화 약세를 용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게 국제금융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부에서는 달러당 1백40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는 연구기관들도 있다.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우리 수출업계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 수출물량의 3분의 1 가량이 외국시장에서 일본상품과 경합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엔화가 10% 평가절하될 경우 수출은 약 27억달러가 줄어든 반면 수입감소는 8억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나타났다.즉 19억달러의 무역적자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일본 엔화는 지난해 말 달러당 1백14엔대에서 지금은 1백23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약 8% 가까이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원화는 달러당 1천2백60원에서 지금은 1천3백10원 수준으로 약 3% 정도 평가절하된 상태다. 일본 엔화가치 하락이 훨씬 빠르게 떨어진 셈이다. 그만큼 우리 수출상품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