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용 빌딩은 유통업체 매출 동향과 함께 경기 흐름의 변화를 재는 잣대의 하나로 꼽힌다. 경기가 좋을 때는 어지간한 빌딩마다 만원사례를 이루기 일쑤지만 불황이 닥쳐 오면 상황은 급변한다. 경비 절감에 머리를 싸맨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뼘이라도 빈 공간을 줄이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한다. 사무 공간을 줄이거나 좀 더 싼 곳을 찾아 짐을 꾸리는 기업이 늘어나면 임대료가 비싸거나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자리잡은 빌딩은 싫든 좋든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름 값을 고집하는 빌딩들은 예외다. 경기가 고꾸라져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이들 빌딩은 문턱을 낮추지 않는다. 임대료를 깎아주기는 커녕 입주 회사를 입맛대로 가려 받는 관행을 불황 속에서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 입주를 희망하는 ‘손님’들이 줄지어 기다리다 보니 무명 중소기업은 이런 명문 빌딩에 명함조차 들이밀기 어렵다. 2~3명 정도가 사용할 초미니 사무공간을 확보하기란 더욱 더 힘들다.도쿄에서 최근 화제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서비스 오피스(비즈니스 오피스)는 이러한 현실을 역이용해 태어난 틈새 비즈니스다. 서비스 오피스의 기본 내용은 한 업체가 빌딩의 일정 공간을 잘게 쪼개 복수의 회사들에 빌려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서, 안내 등 업무 지원에 필요한 인력과 별도의 사무편의 공간도 제공한다.소규모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성행해 온 오피스 임대 비즈니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업방식이다.하지만 도쿄의 서비스 오피스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사무실이 들어 있는 빌딩의 지명도에 있다. 또 첨단 정보기술(IT) 환경과 일류호텔 못지 않은 편의 시설, 그리고 세분화된 요금체계도 서비스 오피스의 차별화를 돋보이게 하는 성공요인으로 꼽히고 있다.효율·편리성 No1 … 임대료는 비싼편도쿄에서도 가장 입주조건이 까다롭기는 가스마카세키 빌딩에 자리잡은 재팬 비즈니스 센터 사무실모습일본 매스컴이 서비스 오피스 시장의 선두주자로 꼽는 업체는 대그룹인 미쓰이(三井)와 미쓰비시(三菱)의 계열 회사들이다. 미쓰이그룹의 미쓰이부동산은 ‘재팬 비즈니스 센터-도쿄’를 설립하고 지난 96년부터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비스 오피스의 사업장은 올해로 건축 33년째를 맞는 도쿄 최고의 명문 ‘가스미카세키(안개라는 뜻의 일본어) 빌딩’.이 센터는 도쿄의 수많은 고층빌딩 중에서도 파이어니어격 존재로 꼽히면서 초일류기업들을 수두룩하게 끌어 안고 있는 이 빌딩의 맨 위층(35층) 일부를 서비스 오피스로 만들었다.가스미카세키 비즈니스 센터의 사무환경은 그야말로 특A급이다. 3.5~7.5평 크기의 미니 사무실 24개가 설치된 이 센터는 첨단 통신인프라는 물론 종합안내소와 회의실 등 편의시설도 완벽하게 갖췄다. 이용 요금은 5. 5평을 기준으로 매월 50만엔 정도를 받고 있어 평당 3만~9만엔의 일반 사무용 빌딩보다 다소 비싸지만 효율과 편리성 등에서 아예 비교가 안된다.장기계약을 해야 하는 일반 빌딩과 달리 이곳은 입주회사가 1개월 단위로 이용 기간을 정할 수 있다. 내장 및 통신설비 공사도 필요 없다. 컴퓨터와 자신들이 쓸 최소한의 사무기기만 가지고 들어가면 된다. 안내 담당 및 기타 업무 지원 인력들은 모두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사무능력도 뛰어난 엘리트로 채워져 있다. 회의실이나 응접실 등 평소에 자주 쓰지 않는 공간을 위해 임차료를 따로 물지 않아도 된다. 일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와 몸만 가지고 들어가면 될 정도의 철저한 실리주의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빌딩의 지명도와 입지여건 등에서 얻을 수 있는 플러스 ‘알파’ 효과는 금전으로 환산이 안된다.거래 당사자끼리 어느 곳에서 어떤 사업을 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초일류 빌딩에 사무실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후광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이 매력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가스미카세키의 비즈니스센터는 소규모 회사들로부터 인기 상한가를 달리고 있다. 특히 큰 사무실이 필요 없으면서도 빌딩의 브랜드를 중시하는 IT관련 기업, 일본 시장 상륙준비를 서두르는 외국기업의 선발대, 컨설팅 전문기업들에 미쓰이의 비즈니스 센터는 안성맞춤의 보금자리다.“앞으로 회사가 어느 정도 스피드로 성장할지, 인력은 얼마나 더 확충해야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큰 사무실을 덜컥 빌리는 것은 모험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휴대정보단말 메이커 ‘팜 컴퓨팅’의 그레이그 윌 사장은 “걸음마 단계의 사업가들에게 서비스 오피스는 미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판”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외국계 기업인 팜사는 지난 1월부터 도쿄 히비야의 데이코쿠호텔에 인접한 한 빌딩의 서비스 오피스에서 일본 시장 공략의 꿈을 키워 가고 있다. 이 빌딩의 서비스 오피스는 영국기업 리저스가 일본 법인을 설립해 ‘리저스 임페리얼 타워’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사무공간이다.이 서비스 오피스는 서구업체가 운영하는 곳 답게 내부 구조도 한결 효율적이다. 각 방의 벽들은 용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거나 떼어낼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용 요금은 4평 정도 방이 1개월에 약 90만엔으로 도쿄의 서비스 오피스 중 가장 비싸지만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 입주한 회사들은 직원이 세계 대도시를 여행할 때 해당 지역에 거미줄처럼 깔린 리저스의 서비스 오피스를 잠시나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주 회사 직원들은 모든 사무실에 설치돼 있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해외에 나가 있더라도 도쿄 본사와 상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전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일본 기업들의 서비스 오피스를 능가하는 또다른 매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초고속 통신망 완비, 외국계기업 잇따라 둥지리저스 임페리얼 타워의 명성과 인기는 입주 기업들의 면면만 훑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 유통시장에 가격전쟁의 태풍을 몰고 온 세계 제2위의 유통업체 ‘까르푸’와 미국의 에너지 회사 ‘엔론’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또 앞으로 일본 시장 공략을 본격화 할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 ‘월 마트’도 리저스의 지붕 아래서 열도 제패의 꿈을 키우고 있다.전문가들은 일본에서 서비스 오피스의 수요가 급증하는 또 하나의 원인을 통신인프라에서 찾고 있다. 통신망 정비가 상대적으로 구미 선진국보다 뒤진 일본에서 첨단 초고속 설비를 갖춘 사무실이야 말로 외국계 기업과 IT기업의 1차 선호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부동산 회사인 미쓰비시 지쇼는 2000년4월 도쿄 도심부 유락초 역앞의 유락초 빌딩 11층에 서비스 오피스인 ‘비즈니스 센터 유락초’를 개설했다. 여기에는 고속통신망을 깔아 놓은 것은 물론 입주 회사들이 초당 1.5 메가비트의 대용량회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쓰비시 지쇼의 계산이 적중했음은 물론이다. 이 회사의 이시카와 나오키 주사는 “2000년 여름까지는 공실률이 3분의 2에 육박했지만 입주 희망회사가 급증하면서 이제는 빈 공간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서비스 오피스의 고객은 소규모 회사나 외국계 기업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노무라 등 일본의 대형 증권 3사가 지난 1월 공동설립해 만든 국채전문거래 사이트 운영회사 ‘엔사이드 닷컴증권’은 도쿄 시부야의 한 서비스 오피스에 둥지를 틀었다. 서비스 오피스의 주인은 호주에 본사를 둔 ‘서브 코프’라는 회사로 현재 도쿄, 오사카에 11개의 사업장을 운영 중이다.서브 코프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대기업들도 단골 고객이 되기 시작했다”며 “특히 경쟁상대끼리 손잡고 공동회사를 설립하는 경우 정보 보안, 중립적인 장소확보 등을 위해 서비스 오피스를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서비스 오피스가 뉴 비즈니스로 주목의 대상이 됐지만 사업전망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부동산 시장 침체로 빈 사무실이 많이 남아도는 판에 사무실을 작게 쪼개서 빌려주는 사업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성공쪽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빌딩컨설팅 전문가 마쓰오카 도코마사씨는 “아웃소싱 바람이 거세지면 일본 기업들도 각종 업무를 외부에 위탁할 수밖에 없다”며 “사무환경이 효율적이면서 창업지원 기능까지 기대할 수 있는 서비스 오피스는 기업들의 신종 보금자리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