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진 눈썹 깜짝 컬링효과'특허기술에 여성들 '솔깃', 마스카라 시장석권

한때 ‘바비’ 인형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인형이 국내 여성들에게 준 영향력은 무엇보다 서양식 미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크고 선명한 눈에 오똑한 코, 특히 활처럼 둥글게 말려 올라간 길고 짙은 속눈썹은 ‘예쁜 얼굴’의 핵심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는 여학생들이 속눈썹에 성냥개비 많이 올리기 내기를 하고 많이 올린 쪽이 ‘예쁜 눈’의 주인공으로 낙점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이런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여학생들의 선망이 결집된 메이크업 화장품이 바로 마스카라다. 아래로 처진 속눈썹을 길고 짙어 보이게 하면서 위로 올려주는 마스카라가 요즘 메이크업 시장을 달구고 있다. 10~20대 여성들에게 마스카라가 화장의 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탓이다.그렇다면 요즘 시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마스카라는 무엇일까. (주)태평양의 라네즈 ‘클린앤컬업’ 마스카라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는 유난히 유통구조가 복잡한 화장품 시장의 특성상 공식 통계는 없지만 태평양의 자체 집계와 시중 화장품 판매점의 반응으로 미뤄 나온 결과다.태평양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출시된 라네즈 ‘클린앤컬업’ 마스카라의 판매량은 월 평균 10만개. 지금까지 50만개가 넘게 팔렸고 연말까지 1백20만여개 판매는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회사측은 내다보고 있다. 국내 마스카라 시장규모(방문판매 등을 제외한 시판시장 기준)가 올해 6백만개(5백억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클린앤컬업 한 품목이 20%의 시장을 점유하는 셈이다.태평양측은 “클린앤컬업의 히트는 바로 기술력의 승리”라고 강조한다. 태평양 마케팅실 권영소 부장(라네즈 브랜드PD)은 “마스카라는 가장 까다로운 기술을 요구하는 메이크업 제품”이라며 “화장품 회사가 마스카라에서 품질을 인정받으면 전체 메이크업 품질 및 기술력을 인정받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태평양이 새로운 마스카라 개발에 들어간 것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시장에서 마스카라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로레알 등 외국업체들이 백화점에 이어 화장품 전문점을 중심으로 한 시판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옴에 따라 ‘수성’의 필요성이 강해졌다. 게다가 마스카라의 소비 트렌드도 어느 정도 변해가고 있음이 감지됐다.이에 따라 태평양은 마케팅과 연구개발(R&D), 디자인실을 주축으로 한 태스크포스(Taskforce) 팀을 구성, 정확한 고객 니즈 파악을 위한 시장조사부터 착수했다. 30여년간 축적된 고객정보 데이터와 소비자 설문조사를 통해 태평양이 내린 결론은 ‘한국여성의 속눈썹 구조에 가장 적합한 마스카라를 만들자’는 것. 즉 한국여성은 일반적으로 속눈썹 숱이 적으면서 아래로 처진 구조를 하고 있는데 이런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처진 속눈썹을 효과적으로 올려주고(컬링) 풍성하게 해주는(볼륨) 마스카라를 가장 선호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자칫 뭉쳐지기 쉬운 볼륨효과보다 깨끗한 컬링효과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 소비자의 주된 트렌드로 나타났다.바이올린 선율로 표현한 컬링효과 CF도 화제사실상 속눈썹을 짙고 길어 보이게 하면서 올려주는 것은 마스카라의 3대 기본 기능에 속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올려주고 풍성하게 하느냐’는 것. 모든 화장품 회사가 추구하지만 실제로 달성하기 어려운 ‘숙제’라고나 할까.태평양이 풀어낸 해답의 비결은 ‘삼각형’의 브러시에 있다. 수십만 번의 실험 및 소비자 테스트를 통해 한국여성의 속눈썹 구조상 삼각형 브러시가 가장 뛰어난 컬링효과를 연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개발해 특허까지 냈다. 여기에다 마스카라의 원액인 내용물과 용기까지 이 효과를 강화할 수 있도록 고려됐다.일단 제품이 나온 상태에서 태평양이 다음으로 주력한 것은 제품을 알리기 위한 광고. 태평양 측은 CF의 컨셉을 정하기 위해 ‘이미지냐, 기능이냐’를 놓고 또 한차례 심각한 토론을 거쳐야 했다. 지금까지 화장품 CF는 이미지 광고가 주력이었음에 반해 태평양은 “이번만은 기능을 보여주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이렇게 해서 나온 ‘클린앤컬업’ 마스카라 CF는 컬링효과를 음향효과로 표현, 눈길을 끌었다. 전속모델 이나영이 “올려볼까”라는 멘트와 함께 오디오를 켜고는 바이올린 선율에 따라 “끝까지, 끝까지”를 되뇌이며 완벽하게 속눈썹을 올린다는 내용. 이때 카메라는 속눈썹이 올라가는 모습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삼각형 브러시의 기능을 강조하는 식이다.태평양측은 “출시 직후부터 올해 2월까지 집중적인 TV광고를 하다 3월부터 대폭 줄였는데도 월 판매량은 떨어지지 않았다”며 “단순한 광고효과가 아니라 써본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계속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어 ‘올해의 히트상품’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인터뷰 / 권영소 태평양 마케팅실 부장(라네즈 브랜드PD)‘써보니 좋더라’ 경험마케팅 적중‘브랜드 프로듀서(Brand PD)’란 이색 직책을 가진 (주)태평양 마케팅실 권영소(43) 부장은 특이하게도 마스카라의 ‘3박자 기술론’을 편다.마스카라는 다른 화장품과 달리 내용물, 용기, 브러시 등 3박자가 ‘딱딱’ 맞아야 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내용물이 아무리 뛰어나도 용기가 부실하면 굳어지기 쉽고 내용물과 용기가 우수해도 브러시가 좋지 않으면 잘 발라지지 않는다는 뜻에서다.이런 점에서 새로 나온 ‘클린앤컬업’ 마스카라는 태평양 메이크업 기술력의 총 결집체이자 개가라는 것이 그의 주장. 삼각형 브러시 뿐만 아니라 마스카라 내용물도 깨끗하고 친화성이 높은 케라틴 코팅안료를 사용, 특허를 받았다고 덧붙인다.그러나 그가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술력 자체보다 ‘해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그의 신념에 따라 고객의 니즈 파악을 제대로 했다는 데 있다. 83년 태평양에 공채로 입사한 권부장은 상품기획, 마케팅, 영업부서 등을 두루 거쳤다. 특히 3년간의 시판영업을 포함한 10여년의 영업현장 경험이 ‘현장의 목소리’를 중요시하는 그의 자산으로 남아있다.“아무리 광고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결국 ‘경험마케팅’입니다. ‘발라보니 좋더라’라는 소문이 나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전국 1만5천여 화장품 전문점에 전부 시제품을 뿌리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발라보게 하는 전략을 광고와 함께 병행했죠.” ‘브랜드 프로듀서’란 직책은 태평양이 기존의 ‘브랜드 매니저’란 직책을 바꿔 올해부터 도입한 직종의 하나. 브랜드 매니저가 ‘관리’에 치우친 개념이라면 브랜드 프로듀서는 하나의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를 하나의 브랜드 문화로 재연출하는 사명이 부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