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업본부’ 새명패 걸고 대한통운·삼성화재와 전략적 제휴 등 공격경영 나서

우체국이 변하고 있다. 편지나 소포 따위의 단순 배달업무를 보다 체계화시켜 택배사업에 진출하는가 하면 은행 보험 등 금융업무를 확대시키고 있다. 우체국의 네트워크 망은 전국 3천7백28곳(4만여명)으로 웬만한 지방의 면은 물론 섬까지 모세혈관처럼 이어져있다. 이는 최근 초대형은행으로 탄생한 한빛은행의 지점수(6백23개)보다 5배 가량 많은 수치다. 때문에 일반기업들은 우체국의 변신을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우체국은 지난해 7월 정보통신부 산하 우정국과 체신 금융국이 합쳐 우정사업본부가 되면서 변신의 기회를 마련했다. 이때 우체국은 우정사업본부장과 지방체신청장을 연봉계약직으로 공개 채용했다. 이들은 6개월마다 경영 평가를 받아 실적에 따라 2년 임기 후 재임용될 수도 있고 중간에 실적이 신통치 않으면 해고될 수 있도록 했다.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등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던 내부 구성원의 자세를 바꾸기 위한 작업도 시작됐다.예컨대 우체국은 마케팅 개념을 도입,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인데도 업무상 오류를 범했을때 가차없이 해고토록 한 것이다. 민간 기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우체국이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다.재계내 매출(2조5천2백여억원) 24위, 당기순이익 12위, 전체 직원 4만1천명의 대기업으로 새로 태어나는 우체국을 심층 취재했다.택배사업 진출우체국의 변신은 택배시장 진출에서 잘 나타난다. 우체국이 택배시장에 진출한 것은 택배 시장이 확대되면서 우체국 소포물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95년부터 99년까지 택배시장이 연평균 29.4% 성장한데 반해 우체국 소포물량은 1.1% 증가에 그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특히 민간 택배업체들의 서비스 강화와 새로운 택배업체들이 생기면서 우체국 소포 비즈니스는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 98년에는 소포물량이 전년대비 1.1% 감소했다. 이대로 있다간 앉아서 우편시장을 내주게 되는 사태에 이르자 우정사업본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에 99년8월 방문소포(택배) 서비스를 본격 도입하고 택배 시장에 본격 뛰어 들었다. 더 이상 기다리는 우체국으론 생존하기 어렵다고 판단, 찾아가는 우체국으로 변신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소포요금체계 개편 및 요금인하 계약요금제 시행근거를 마련하고 대한통운 등 민간택배업체와 업무제휴를 맺으면서 적극적인 시장 개척에 나섰다. 또 방문소포 고객을 유치하는 직원에겐 4%, 해당 우체국엔 2%의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도 만들어 고객 잡기에 열을 올렸다.방문소포 서비스는 우체국 직원들의 적극적인 영업 활동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우체국 안에선 모범케이스로 회자되는 부산우체국 직원들의 ‘자갈치 작전’이 대표적이다. 각 기업체에서 명절선물 대금을 시장 상인들에게 맡기면서 상인들이 건어물을 택배업체에 의뢰해 발송한다는 사실을 입수한 부산 우체국 마케팅팀 8명은 추석을 열흘 앞두고 자갈치 시장에 진출했다. 사흘동안 따끈한 커피를 나눠주면서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일도 도와주다가 4일째 되는 날 본격 작전에 들어갔다.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면 할인도 해주고 포장도 해주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그 결과 7천8백36건의 주문을 받아 2천8백5만원을 벌어들였다. 부산 우체국은 계속 고객관리를 해 올해 설 명절에는 1만8백건을 유치, 4천3백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또 하나의 소포라도 더 우체국에 가져오기 위해 아예 부인을 아파트 소포수거 전담요원으로 활용하는 직원도 나왔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달라’는 홍보 유인물을 배포한 뒤 부인이 소포를 수거해오면 남편이 출근하는 길에 우체국으로 가져와 발송하는 것이다.이런 우체국 직원들의 노력 결과로 98년 5.7%까지 떨어졌던 소포 수익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우체국의 전체 매출 1조1천4백58억원 가운데 소포매출이 7백43억원(2000년11월 기준)을 차지해 7.1%까지 올라갔다. 특히 방문소포(택배) 서비스 수익은 급성장했다. 99년말 전체 소포 매출액 6백41억원 가운데 방문소포 매출은 20억원이었으나 2000년말에는 7백43억원의 전체 소포 매출 가운데 1백11억원어치를 방문소포 서비스로 벌어들인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방문소포 서비스 매출 호조에 힘입어 올해는 소포 전체 매출 1천5백억원 가운데 5분의1에 해당하는 3백억원을 올린다는 목표다.우정사업본부는 택배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존 민간 택배업체와 제휴하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았다. 20㎏이상 소포 배달은 대한통운에 맡기는 대신 대한통운에 접수된 도서 택지로 가는 소포 우편물은 우체국에서 운송하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또 현대택배와는 기존 철도망 대신 육로망을 구축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올 3월부터 전국 12개 집중국으로 가는 모든 소포는 현대택배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 소포사업팀 양진수 담당은 “방문소포 서비스는 우체국의 주력 사업이 될 것”이라며 “우정사업본부에서도 주력 사업으로 보고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방문소포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올 3월 ‘우체국택배’란 이름으로 바꾸고 마케팅과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올 6월까지 전국 군·구 이상 지역에 위치한 2백25개 4·5급 우체국에 소포전담팀을 구성할 계획이다. 소포전담팀에는 차량과 TRS시스템이 제공되고 자체적으로 우체국 택배사업을 위한 마케팅, 고객관리 영업을 펼치게 된다. 우정사업본부의 변신은 택배사업에 그치지 않고 기존 집중국을 물류센터로 이용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물류 분야까지 확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까지 총 1조6백83억원을 투입해 현재 12개의 집중국을 22개로 늘리고 대전교환센터를 중심으로 우편자동화 네트워크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e비즈니스 확대‘우체국을 인터넷 속으로’. 우체국의 e비즈니스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시작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종래의 특산품 위주로 운영하던 우체국 전자상거래 사업을 올해부터 우편서비스까지 확대해 우체국의 모든 업무를 인터넷에 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이다. 지난 99년 7월부터 서비스를 개시한 우편주문판매, 꽃배달, 인터넷PC판매 등에 이어 소포방문접수, 국제특급우편접수, 주소이전신고 등 우편업무를 새롭게 추가로 업데이트한 것이다. 현재 우편주문판매는 특산품 위주로 3천1백82개 품목이 올라와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PC 사업이 시들해졌지만 우체국을 통한 PC 판매는 도서 벽지 등 서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우수 소프트웨어도 판매하고 있는 인터넷 우체국은 올 5월부터 전자상거래 업체들을 위한 EC호스팅 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하지만 쇼핑몰 중심의 인터넷 우체국은 아직 우정사업본부의 효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매출이 미미한데다 아직 인터넷우체국이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우체국이 올린 지난해 매출은 특산품과 인터넷PC 판매가 대부분이다. 주문건수 14만2천1백65건에 약 57억4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인터넷우체국에 등록된 회원은 15만명이며 서비스 이후 지난해말까지 3백47만명이 방문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쇼핑몰을 통해 약 1백50억원, 우편서비스로 3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전년대비 3배 가까이 올라간 목표다. 안효범 우정사업본부 사업개발과 사무관은 “올 설에는 지난해 설의 3배 규모가 넘는 20억원어치를 팔았다”며 “특산품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고 일본과 미국 등 해외 매출도 있어 자신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인터넷우체국이 체성회 등으로 업무가 분리돼 있어 효율이 떨어진다고 보고 향후 수년내에 독립 자회사로 분리할 계획이다.우정사업본부는 또 정부기관으론 최초로 인터넷 역경매를 도입해 관심을 끌었다. 사무기기와 가전제품 등 3천만원 이하의 물품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해 두달 동안 10억5천9백만원을 구매하면서 2억9천2백만원의 예산을 절약했다. 역경매를 전 우체국에 실시할 경우 연간 48억원의 예산 절감효과가 예상된다고 우정사업본부는 밝혔다. 우정사업본부는 각종 청구서나 고지서를 1개 전자고지서로 받고 지불할 수 있는 EBPP서비스도 준비중이다. 전국 2천8백여개 우체국을 이용한 정보화 교육사업도 우정사업본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정보화 사업 중 하나다.우체국 예금·보험우체국 예금과 보험은 지난해부터 특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금융기관 구조조정, 예금자 보호한도 등의 ‘외부효과’로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우체국으로 몰려왔던 것이다. 예금부문은 2000년 하반기에만 무려 7조원이 증가, 총 수신고가 27조5천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 예금과 이석중 사무관은 “영업점(우체국)별 인센티브제 도입 효과가 나타나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는 등 마인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어쨌든 직접 경쟁자인 은행 보험권 등 금융사들은 ‘금융 구조조정 와중에 우체국이 어부지리를 얻었다’며 우체국 금융의 팽창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체국측은 ‘민간금융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은 괜한 엄살’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무엇보다 우체국은 수익성 원칙에 위배된다 해도 공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방송된 우체국 TV 광고에서 껄렁한 남자손님은 1천원짜리 한 장을 갖고 와서 온갖 유세를 부리지만 이를 맞는 직원은 더할나위 없이 상냥하다. 수익에 도움이 안되는 소액 고객은 푸대접하는 요즘 시중은행들이 가고 있는 길과는 정 반대다. 이교용 사업본부장은 “소액예금자든, 서민이든, 농어촌 고객이든 우리에게는 똑같은 국민”이라고 강조했다.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우체국 금융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민간 금융사가 공략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틈새 시장을 우체국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수익 개념이라면 당연히 철수해야 하는 낙도나 오지의 점포를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그렇다고 수익성을 포기할 수도 없어 우체국은 타 금융기관과의 제휴라는 해법을 모색했다. 우체국은 수신 업무만 취급한다. 대출이 없으니 부실채권도 없어 안전성이 한층 더 보장되긴 하지만 예금자가 급히 돈이 필요해져도 예금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품 경쟁력은 일반 금융기관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다. 이같은 단점 또한 제휴기관과의 연계 대출로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현재 삼성화재와 제휴해 예금 연계 대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같은 ‘공격 경영’은 금융사 뿐 아니라 여러 모로 우체국과 경합 관계에 있는 농협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문제는 고객의 편의다. 이를 위해서는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우체국의 입장.우정사업본부의 보험 자산 규모는 14조4천억원, 대형 생명보험사인 삼성 교보 대한에 이어 4위다. 저축성 보험에 많은 돈이 몰려 지난해 수입보험료가 8조7천억원 증가했다. 이처럼 우체국 보험 상품이 인기를 끈 데는 방대한 네트워크 인프라가 크게 도움이 됐다. 일반 보험사에는 설계사들만 영업하지만 우체국은 창구에서 보험을 취급하기 때문에 유리하다. 또 우체국 직원이 예금과 보험 업무를 모두 겸하기 때문에 일반 보험사에 비해 사업비가 적게 든다. 절감된 사업비는 보험료 인하 요인으로 작용, 타사 상품보다 보험료가 10% 내외 싸다. 보험료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인 예정이율도 타사에 비해 5% 높았다. 주요 고객이 서민과 농어촌 주민, 고연령층임을 감안해 저가의 단순한 상품 위주로 구성한 것도 전략이다.이제는 크기보다 수익성에 비중을 두는 것이 우정사업본부 금융사업단의 계획이지만 아직 발목을 잡는 부분도 많다. 구조조정과 금융불안 때문에 규모가 급속히 커졌지만 이제는 이런 외부효과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자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고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운용에 있어 취약점도 자주 지적된다. 우수 전문인력을 유인할 만한 인센티브가 없어 운용의 효율성과 전문성이 떨어지며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마다 정부 등 외부에서 우체국 보험과 예금을 동원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수립한 장기운용계획이 무시되, 수익성과 안정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숙제다.인터뷰이교용 우정사업본부장“고객중심 마인드로 공공+수익성 확보”이교용(48) 우정사업본부장은 정보화의 중심지, 물류 기업으로의 변신, 디지털 시대에도 경쟁력있는 우편, 대형 금융기관으로서의 미래 등 많은 책임을 떠안고 있는 우정사업본부의 수장이다. 취임 당시부터 ‘최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우정기업’을 모토로 내걸었다. ‘변신’을 기대하는 시각을 의식하듯 그는 일관되게 고객 중심의 마인드를 강조한다. “국민들은 우정사업본부라는 게 있는지 본부장은 누가 됐는지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직접 대하는 창구 직원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느낄 때 우체국이 변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우체국 변화의 모든 방향은 궁극적으로 고객이 이런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족할 만큼 내부 직원들의 자세가 바뀌려면 멀었다는 것을 그도 인정한다. 택배 회사나 금융사 등 타 기업들과 적극적인 제휴를 추진하고 나설 때는 반발도 있었다. ‘생기는 것은 별로 없고 해야 할 업무는 많아지는데 왜 일을 벌이느냐’는 불만이었다. 이제는 상당히 동의를 얻었다고 이본부장은 자평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변화할 것을 요구하려면 이에 걸맞은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하는데 여전히 ‘쥐꼬리 공무원 월급’은 그대로다. 이본부장은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는 “기업성을 높여 흑자기조를 유지하면 ‘우정기업’에 대한 신뢰와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같은 흑자를 바탕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국민의 신뢰도 받을 수 있을 테니 궁극적으로는 기업성의 제고를 통해 공공성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우체국은 문민정부 시절 공사화를 추진했다가 무산되는 등 우여 곡절을 겪은 뒤 지금의 우정사업본부 형태가 됐다. 정치권과 행정부처간 문제, 조직원의 반발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여전히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 이 본부장은 “형태야 어떻든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약력: 53년생, 75년 연세대 행정학과, 88년 프랑스 파리 국제행정대학원. 16회 행정고시. 95년 충청체신청장, 96년 정보통신부 국제 협력관, 99년 우정사업본부 설치추진단장, 2000년7월 우정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