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는 지난2월부터 본생 브랜드로 발포주 제품을 내놓았으며 인기 몰이에 보격 나섰고, 기린, 산토리, 삿포로 등 발포주 선발업체들은 아사히 제품력과 인기에 신제품과 대규모 광고판촉으로 맞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여름 술의 왕자는 뭐니 뭐니 해도 맥주다. 격무와 씨름하고 난 여름날 저녁 동료들과 함께 걸치는 시원한 맥주 한잔의 맛은 샐러리맨들의 더 없는 낙이다. 일본도 사정은 한국과 비슷하다. 맥주에 대한 사랑은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뜨거울지 모른다.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몰려가 선술집에서 자리잡은 후 가장 먼저 시키는 술은 십중팔구 ‘생맥주’다. 맥주로 적당히 목을 적신 후 다음 술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 음주 습관이다.사정이 이러니 맥주 시장을 둘러싼 일본 주류회사들의 싸움은 말 그대로 불꽃을 튀긴다. 언제, 어디를 가도 맥주 광고가 소비자들의 눈을 붙들고 TV 화면에서는 술맛을 당기는 맥주 CF가 수시로 쏟아져 나온다.그러나 일본 맥주회사들의 올해 최대 관심사는 맥주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다. 맥주보다 더 화끈하게 싸움을 치르지 않으면 안될 상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형 맥주회사들이 사운을 걸고 전면 전쟁에 돌입한 술은 바로 발포주(發泡酒)다. 발포주는 한국에 아직 없는 상품이라 한국의 주당과 소비자들이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맥주와 내용물이 흡사한데다 포장 용기도 맥주 캔과 똑같은 것을 사용해 일본을 다녀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셔 보았거나 본 적이 상당히 많았을 상품이다. 판매하는 곳도 일반 주점이나 주류취급 면허를 갖고 있는 편의점이라 유통채널이 맥주와 똑같다. 산토리가 판매중인 ‘홉스(HOPS)’와 기린맥주의 ‘기린담려(淡麗)’ 등이 발포주의 대표적 브랜드들이다.맥주 저조, 발포주 날개돋힌 듯 팔려일본 맥주회사들이 발포주 시장을 여름 대목의 최대 승부처로 삼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맥주 판매는 죽을 쑤고 있는데 반해 맥주와 대체재 관계에 있는 발포주는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일본 정부는 맥아 함량이 67% 이상인 맥주에 대해 ℓ당 2백22엔의 주세를 거둬 들이고 있다. 그러나 발포주는 이 비율이 25% 미만이라 주세가 ℓ당 1백5엔 밖에 되지 않는다. 세금이 적으니 판매가격이 쌀 수밖에 없다. 맥주 값은 소매점을 기준으로 3백55㎖ 1캔이 2백20~2백30엔 정도인데 반해 발포주는 1백45엔이다. 줄잡아 3분의1 정도 싼 셈이다. 값이 싸면서도 발포주의 외관과 맛은 맥주와 큰 차이가 없다. 정통 맥주의 맛은 덜할지 몰라도 거품과 빛깔 등은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해내기 어려울 정도다. 따라서 맥주를 마시고 싶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 발포주는 ‘안성맞춤’의 상품이다.발포주는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맥주시장의 선발 메이커들에 눌려 만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산토리가 94년 슬럼프 탈출의 승부수로 내놓은 상품이었다. 맥주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로부터 한동안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데다 경쟁사들도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다며 제품 개발에 시큰둥한 자세를 보여 그대로 판매 일선에서 퇴장하는 것으로 보였었다. 그러나 회복세를 보이는 듯 했던 일본 경기가 97년부터 다시 고꾸라지고 맥주 소비가 눈에 띄게 줄자 상황이 급변했다. 맥주회사들이 발포주를 불황 타개의 기폭제로 삼고 개발과 판매 등에서 뒤늦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맥주의 대체 상품으로 등장했던 발포주는 이제 대체 차원을 넘어 맥주 회사들의 시름을 덜어줄 ‘효자상품’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일본 맥주 시장에서 발포주의 위상은 수치 몇가지만 들여다 봐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대형 맥주 5사의 2000년 출하량(과세기준)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94년에 비해 무려 22%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주력제품인 ‘슈퍼 드라이’가 단일 브랜드로 일본 맥주 시장의 43%를 차지하고 있는 아사히맥주는 타격이 덜했지만 다른 4개사는 맥주 장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죽을 쑤었다.그러나 발포주의 인기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였다. 소비 증가 속도에 갈수록 탄력이 붙으면서 시장 비중도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발포주는 맥주와 발포주를 합친 전체 시장의 약 35%를 점유했다. 2월 한달동안 일본에서 출하된 거품 술(맥주와 발포주) 3천3백17만4천상자(6백40㎖, 20병)를 놓고 보면 3병중 1병은 발포주였다는 계산이다. 시장에 첫선을 보인지 7년만에 달성한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성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증가 속도로 본 발포주의 파워는 더 위력적이다. 일본의 올 1분기 맥주 출하량은 작년 동기대비 14. 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발포주 출하량은 같은 기간동안 무려 45.6%가 늘어 극단적 대조를 보였다. 맥주 소비가 구멍 뚫린 배처럼 가라앉은 것과 달리 발포주는 막 바다 위에 띄워놓은 쾌속선처럼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맥주업계의 발포주 싸움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수개월간 두 차례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하나는 주세율과 관련된 재무성(구 대장성)과 맥주업계의 공방전이었고 또 하나는 아사히맥주의 신규참여였다. 일본 재무성은 지난해 말 발포주의 세금을 맥주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주세법 개정을 강력히 추진했었다. 발포주가 맥주와 맛과 효능이 별 차이가 없는데 세금을 절반 이상 덜 내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발포주는 세법의 허점을 틈타 태어난 제품이라는 것이 재무성의 주장이었다. 맥주업계는 하나로 똘똘 뭉쳐 재무성과 일전을 벌였다. 맥주 회사들은 주머니가 가벼운 주당들을 위해 발포주를 만들어 냈는데 정부가 세금을 올린다면 서민들의 낙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재무성을 몰아세웠다. 맥주 회사들의 연합전선에는 유권자들을 의식한 정치권도 가세했다. 재무성은 결국 발포주의 고유 상품성을 인정하고 세금인상을 포기하는 선으로 물러났다.주세율 싸움은 맥주업계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지만 아사히의 발포주 시장 참여는 선발 회사들을 바짝 긴장시키면서 기존 판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아사히는 발포주가 맥주 회사들이 만드는 제품의 판로를 잠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신규참여를 한사코 외면해 왔었다. 여기에는 일본 소비자들로부터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 셀러 ‘슈퍼 드라이’에 대한 자신감이 큰 배경으로 작용해 왔다. 발포주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전망도 한가지 원인이 됐었던 것으로 보인다.아사히의 발포주 시장 참여로 싸움 격화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부쩍 가시화된 맥주 시장 침체는 아사히의 발포주 참여를 재촉했고 아사히는 지난 2월부터 ‘본생(本生, 진짜 생맥주라는 뜻)’ 브랜드로 제품을 내놓으며 인기몰이에 본격 나서고 있다. 이 제품은 첫 출하물량 3백만 상자가 단숨에 동나면서 추가 주문이 쇄도, 선발업체들을 일제히 맞공세에 돌입하게 했다. 기린, 산토리, 삿포로 등 발포주 선발업체들은 아사히의 제품력과 인기에 신제품과 대규모 광고판촉으로 맞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삿포로가 사장을 광고모델로 등장시킨데 이어 기린과 산토리는 5~6월에 각각 신제품을 하나씩 투입, 다(多)브랜드로 아사히의 추격을 뿌리치기로 했다. 발포주 브랜드는 작년 말까지 6개에 불과했으나 지난 3월 삿포로가 선보인 ‘生시보리’를 포함해 올들어서만 상반기중 4개가 새로 나와 모두 10개로 급증했다.일본의 발포주 시장은 아사히의 참여가 몰고온 업체간 싸움 격화, 그리고 브랜드 증가에 따른 소비자들의 선택 폭 확대를 배경으로 올 여름이 판도 변화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휴대폰과 컴퓨터 문화 확산이 맥주 판매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주소비층인 20대 젊은이들이 통신비에 돈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맥주 소비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젊은 층에서는 앞으로 발포주의 인기가 맥주를 압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여름철 대목이 눈앞에 다가 왔어도 맥주 판매는 겨울잠을 자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본 맥주업체들이 펼칠 발포주 전쟁의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