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여에 걸친 리노베이션 '비즈니스호텔'변신 성공ㆍㆍ'남을 돕는' 경영 철학 앞장서 실천

‘어린이 날’ 전날이었던 지난 5월4일 저녁. 대부분의 호텔 식당들이 부모 손을 잡은 화사한 모습의 어린이들로 붐비고 있을 때 조선호텔 2층 오키드 룸에선 조금 색다른 광경이 연출됐다. 휠체어에 의지한 70여명의 중증장애인들이 노르웨이 그리스 페루 등 10여개국 대사부부와 호텔 직원들의 시중을 받아가며 식사를 하고 게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식사시중을 드는 ‘직원’들 중에는 지긋한 나이에 호텔 유니폼을 입지 않은 ‘신사’도 끼어 있었다.장경작 조선호텔 사장이 신사가 바로 조선호텔 장경작(58) 사장. 99년부터 매년 어린이날을 즈음해 고아나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호텔로 불러 ‘잔치’를 열어 주고 있는 장본인이다. 올해는 주몽재단에 속한 장애인 78명을 초청했다. 해마다 이맘때 또는 연말이면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의 ‘생색내기’ 행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대형 호텔 사장이 1년에 한차례 호텔 공간을 빌려 이런 행사를 하는 것 또한 ‘전시성’ 행사로 치부될 수도 있다.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몸에 배어 있어그러나 호텔직원들은 장사장의 평소 생활신조나 경영철학, 살아가는 방식을 미뤄 볼 때 이런 행사가 그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전국 35개 조선호텔 제빵점포를 통해 주변 불우시설에 2억원 상당의 제빵을 공급하고 개인적인 동창모임도 불우이웃돕기 모임으로 활용할 정도다. 조선호텔 행사 중에 불우이웃 돕기가 유난히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이런 장사장의 생활신조는 바로 ‘자리리타(自利利他)’, 즉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길이다’라는 뜻의 불교용어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장사장의 이 철학은 호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영인으로서 ‘고객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호텔을 살찌우는 것’이란 경영철학으로도 곧잘 애용된다. 요즘 흔히 말하는 ‘고객만족경영’이지만 그 뿌리가 좀더 깊다고나 할까.어쨌든 이 정신은 장사장이 94년 조선호텔 사장에 취임한 후 조선호텔을 키워온 원동력이자 나아갈 방향으로 꼽히고 있다.68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한 장사장이 조선호텔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83년 삼성그룹의 조선호텔 인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당시 관광공사에 속해있던 조선호텔은 호텔민영화 조치에 따라 삼성그룹에 인수됐고 이후 신세계가 삼성그룹에서 분리되면서 신세계 소속으로 넘어갔다.인수조건을 위한 실사작업을 한지 10여년 만에 신세계 백화점 이사 등을 두루 거치다 마침내 최고경영진으로 다시 돌아온 장사장은 그러나 “정말 아니었다”고 94년 당시의 조선호텔 모습을 설명한다. 겉으로는 특급호텔이었지만 인력이나 조직, 호텔시설이 국제수준의 특1급 호텔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 메스를 가한 곳은 지은지 30년이 넘었던 호텔시설, 특히 객실이다.취임 직후부터 지난해 6월까지 6년 넘게 대대적인 개보수(리노베이션) 작업에 착수, 4백50여개의 객실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적 요인은 물론 시내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국제 비즈니스맨을 주 타깃으로 ‘가장 비즈니스하기 좋은 호텔’로서의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비즈니스맨을 겨냥한 2백62개의 이그제큐티브룸에 고속인터넷과 컴퓨터, 인터넷TV, 복사기능을 겸한 팩스, 개인번호가 부여된 핸드폰 등을 갖춰 두고 있다. 최근에는 휴대용단말기(PDA)까지 비치했다. 장사장은 “‘사무실을 떠난 사무실(Office Away From Office)’을 슬로건으로 디지털시대에 맞춰 국내에 출장온 비즈니스맨들이 호텔에서 일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투자한 돈만 약 1천억원. 장사장은 “개보수작업 도중 IMF 경제위기가 터져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개보수 작업을 중단한 적은 하루도 없었다”고 전한다. 시설 개보수는 그만큼 호텔 ‘업그레이드’의 필수요소였던 셈이다.그러나 장사장이 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인력 및 조직 리노베이션. 바로 소프트웨어 개혁이었다. “아무리 하드웨어(시설)가 좋아도 소프트웨어(서비스)가 부실한 곳에 누가 오겠느냐”는 것이 장사장의 지적이다. 그래서 단행한 것이 구조조정. 즉 불필요한 인원을 줄이고 필요한 인원을 적재적소에 배치,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94년부터 96년 사이에 8백명이던 정규직을 5백50명으로 줄였다.여기서 장사장이 강조하는 것은 ‘직원만족 경영’이다. ‘만족할 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호텔직원이 어떻게 고객들을 만족시키겠느냐’는 것이다. 수십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권한 위임, 오픈경영, 공정한 승진시스템 등을 통해 일할 만한 분위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직원만족 경영의 핵심. 이를 위해 직원을 줄인 대신 직원 교육비는 5배나 늘렸으며 급여도 전국 호텔중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이렇게 하드웨어(시설)와 소프트웨어(인력, 서비스)에 걸친 대대적인 수술의 목적은 물론 생산성 향상 및 경영효율 제고다. 장사장은 그러나 “경영효율 자체에 집착하다 보면 서비스 저하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질 향상을 우선시하면 자연스럽게 경영효율 및 생산성향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투숙률, 국내 특1급 호텔중 최고수준조선호텔의 경우 장사장이 취임전이던 93년 약 3백억원이던 매출액이 올해는 6배가 늘어난 1천8백억원, 30억원이던 순이익도 4배가 늘어난 1백2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텔 수준 평가기준인 투숙률 및 객단가도 85%, 26만원으로 국내 특1급 호텔중 최고 수준이다(강북 평균은 70%, 21만원). 덕분에 전세계 5위권 우수호텔, 서울 최고 호텔(99년, 유로머니)로 선정됐고 장사장 자신도 한국호텔경영대상(1996년)을 수상하는 등 호텔 최고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 중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경영의 기본이죠. 다만 바탕에 얼마나 충실했냐가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제가 불우이웃을 돕는 것도 ‘나누며 살자’는 삶의 기본정신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고요. 우리가 혜택 받는 동안 어느 누군가는 우리 대신 희생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장사장은 한달에 3∼4번씩은 꼭 절에 들른다. 기본에 충실한 삶, 바탕을 다지는 삶을 목표로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한 일종의 수행과정이다. “도와주면 꼭 도움 받을 일이 생깁니다. 이게 곧 ‘남을 이롭게 하면 나도 이롭게 된다’는 뜻이지요.” 새겨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