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이 금융그룹으로의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올 초 동부의 6개 금융계열사를 총괄 지휘하는 ‘주식회사 동부’(이하 동부)를 은밀히 설립한 데 이어 최근 국내외 금융전문가들을 속속 영입하면서 공공연히 금융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올해 말 완공되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동부금융센터(사진)’는 그룹의 금융사업을 관장하는 헤드쿼터로서 역할을 준비 중이다.이렇듯 동부가 건설과 반도체 등 제조분야와 함께 금융분야에도 무게중심을 두자 재계와 금융업계는 동부의 사업 재편 프로젝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부의 실체와 역할 그리고 ‘금융그룹 재편’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행보에 대해 궁금증이 많다.우선 동부의 실체. 동부는 예전 동부건설의 계열사였던 삼락기업을 모태로 설립됐다. 삼락기업은 조경회사였으나 올 초 주식회사 동부로 사명을 바꾸면서 자본금 30억원의 컨설팅 업체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현재 17명의 직원이 21개 계열사의 업무를 조정하는 등 그룹구조조정본부의 역할을 담당한다.모태 삼락기업, 사명 동부로 바꾸고 컨설팅업체 변신그룹 기획실로 비춰질 수 있는 이 곳이 금융업계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최근 금융전문가들을 속속 영입하면서 금융컨설팅 조직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지난 7월 금융시스템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삼성데이타시스템 출신 이명환 사장과 CSFB 서울사무소장 출신인 조원구 부사장을 영입하는가 하면 외국계와 국내 금융기관의 전문가들을 이 곳으로 불러들이는 중이다.이들은 현재 동부 금융계열사의 테스크포스팀 직원들과 함께 금융그룹 재편 전략을 짜내고 있다. 계열사의 동부금융센터 이주 계획부터 각 계열사간 데이터베이스 공유문제까지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 중이다. 이를 토대로 은행 증권 보험 등 각종 금융서비스를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금융프라자를 금융센터 내에 설립할 예정이다.동부의 적극적인 행보는 이 뿐만이 아니다. 동부그룹의 홍보팀도 최근 소속을 동부화재에서 동부로 옮겼다. 이를 계기로 홍보를 총괄하는 한기호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발령, 금융그룹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 말 동부금융센터의 완공을 시작으로 동부는 언론매체에 거액의 광고예산을 집행하면서 금융전문그룹으로 위상을 높이는 데 이를 전액 사용할 계획이다. 동부 관계자는 “동부는 금융계열사의 마케팅과 기획을 총괄하는 회사”라고 말했다.동부의 실체와 아울러 동부그룹의 금융재편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사람들의 행보도 궁금한 점이다. 우선 6개 금융계열사의 브레인 기업으로 주식회사 동부를 설립한 김준기 그룹회장과 금융 보험을 총괄하는 강경식 회장이 있다. 김회장은 동부 설립을 주도하는 한편 6개 금융계열사의 금융데이터베이스를 총괄하는 ‘동부FIS’(자본금 5억원)를 지난 6월 설립했다. 이곳은 금융계열사의 전산관련 업무를 떼어내 개발 운영하는 회사로 김회장이 1백% 지분을 갖고 있다.외환위기 책임으로 정계와 관계를 떠났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8월 동부그룹으로 영입됐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선친 때부터 김회장과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온 강회장은 중구 초동 동부화재 본사 7층 임원사무실에서 김회장과 나란히 근무하고 있다. 강회장은 이 곳에서 금융사업의 브레인 역할을 하며 각종 금융 관련 회의의 의장역할을 담당한다. 때론 각 금융계열사의 PR전략 방안에 대해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영입, 금융회의 의장역할 담당김회장과 강회장을 도와 금융사업을 챙기고 있는 또 다른 임원은 손건래 부회장이다. 그는 동부화재와 한농화학의 사장을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그룹에 몸담아 왔으며 금융그룹 재편의 실무를 담당한다.금융그룹재편 작업과 함께 정작 궁금한 점은 왜 동부가 금융사업에 주력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금융부문이 반도체 사업을 지원하는 파이프라인이거나 김준기회장의 금융사업 장악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첫째, 반도체 지원건과 관련 업계에선 동부그룹이 지난해 충북 음성에 비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면서 반도체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자 금융사업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세워 이곳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에 동부 관계자는 “설립 초기엔 계열사들이 전자에 출자했지만 앞으로 추가 출자는 없을 것이며 외자유치 등을 통해 자구노력으로 자금을 조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둘째, 김준기 회장의 금융계열사 장악에 관한 건. 이미 김회장은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건설과 동부화재의 대주주로서 금융 계열사를 장악했다. 동부건설은 동부상호신용금고와 캐피탈의 대주주며 동부화재는 동부증권과 동부생명 그리고 동부투자신탁을 계열사로 갖고 있다. 이처럼 충분한 지분을 확보했음에도 김회장은 금융계열사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동부를 설립하고 계열사의 전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합 운영하는 동부FIS까지 개인 자금으로 세웠다.이러다보니 업계에서는 김회장이 지분방어를 목적으로 계열사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그룹의 핵심 회사를 물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동부 관계자는 “큰 딸은 시집가서 지금 미국 유학 중이고 아들은 군 복무를 하는 등 아직 어리기 때문에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복잡하게 지분을 분산 배치하는 것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어쨌든 동부그룹으로서는 금융계열사를 한 데 묶어 금융전문기업으로 승부수를 던지지 않고서는 금융계열사의 생존이 불투명하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화재를 제외한 나머지 금융계열사의 업계 위상이 낮기 때문이다. 국내 거대은행 출범과 외국계 금융기관의 국내 진출에 동부가 어떻게 금융 계열사의 생존 전략을 모색할 지 업계의 관심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