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8일 프랑스 칸느.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전시회인 밉컴(Mipcom)이 열린 이곳에서 이변이 생겼다. 애니메이션의 ‘애’자도 모를 줄 알았던 동양의 조그만 나라가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에 참가한 빅필름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앨리시움’을 50만달러에 수출키로 했고, SOME엔터테인먼트는 캐나다 제작유통사로부터 1백95만달러를 투자받기로 했다. 이 뿐이 아니다.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투자 주문이 밀려 들었다. 애니툰(1백60만달러) 레인버스(42만달러) 디지털오디(50만달러) 등 토종 애니메이션 전문업체들이 해외 자본을 유치했다.애니메이션 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16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적 음반 견본시장인 팝콤(Popkomm)에 참가한 SM엔터테인먼트 레볼루션넘버나인 뮤직팩토리 등은 약 1백70만달러의 수출 상담을 진행했다. 비록 금액은 적었지만 세계 최대 음반 박람회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이 관심을 모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업계는 경사로 받아들였다.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문화콘텐츠 중에서도 애니메이션 음악 게임 캐릭터 등 이른바 인터넷 시대 신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X’ 콘텐츠가 급부상하고 있다. X콘텐츠는 영화 방송 출판 등 이미 거대 산업으로 자리잡은 콘텐츠들과 비교되는 것으로 향후 한국 문화산업을 이끌어갈 전략적 콘텐츠를 말한다.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지난 99년 이들 4가지 X콘텐츠 시장은 총 4억7천7백14억원으로 문화콘텐츠 전체 시장의 22.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문별로는 게임이 9천1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음반(3천8백억원) 애니메이션(2천7백억원) 순으로 나왔다. 문광부는 2003년께에는 이들 X콘텐츠가 99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정부 육성 힘입어 성장가속화이같은 전망이 나오자 정부에선 본격적인 문화콘텐츠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우선 내년도 문화산업부문 예산을 올해보다 28.5% 올린 총 1천8백96억원으로 잡았다. 특히 예산 가운데 문화콘텐츠 창작기반 조성(1백70억원), 문화콘텐츠 국내외 마케팅과 수출활성화(1백87억원), 전략콘텐츠 분야 전문인력 양성(1백43억원) 등 문화콘텐츠 육성에 총 5백억원을 배정했다. 문광부가 문화콘텐츠 산업 육성에 이처럼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데는 김대중 대통령의 ‘힘’이 작용했다. 김대통령은 올 2월 문화관광부 연두보고 자리에서 “문화관광부가 중심이 돼 콘텐츠 산업에 국운을 걸고 관련 시책을 추진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정부가 문화콘텐츠 산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이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문화산업 시장은 지난해 8천5백억달러로 매년 7.2%씩 성장하고 있다. 이는 세계 연평균 GDP 증가율이 90년대 2.5%임을 감안하면 문화산업의 성장속도가 GDP의 3배를 넘는다는 얘기다.문화콘텐츠의 또 다른 잠재력은 콘텐츠 하나로 다양한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원-소스 멀티-유스(One-source Multi-use)’에 있다. 일례로 3D애니메이션 전문업체 디지털드림스튜디오는 3D 애니메이션 ‘런딤’을 제작해 비디오 만화 게임 캐릭터 등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이 회사는 런딤 제작비인 30억원을 연내에 회수하고 내년부턴 파생상품에 의한 매출이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그렇다면 현재 애니메이션 음악 게임 캐릭터 등 X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살펴보자. 지난 10월4일 MBC TV에서 방영된 프로덕션 그라미의 ‘기파이터 태랑’은 내년 4월 애니메이션 종주국 일본 NHK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또 지난 8월 미국 공중파 방송 키즈워너브러더스를 통해 방영돼 시청률 2위라는 성과를 거둔 씨네픽스는 3D 애니메이션 ‘큐빅스’로 미국인을 사로잡았다.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기존의 하청생산에서 자체 창작쪽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단적인 예로 지난해 애니메이션 해외수출 물량(6천5백33만 달러)이 99년(8천1백66만달러)에 비해 1천6백33만달러가 줄었다. 이는 하청제작 물량이 감소하고 창작물이 늘어났기 때문. 극장용 애니메이션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을 제작한 서울무비는 OEM을 줄이고 창작물에 무게중심을 둔 회사다. 지난해 1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서울무비는 매출의 40%를 창작물로 벌어들이고 있다. 이 회사 윤상연 마케팅 팀장은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하청제작이 줄었다고 하지만 매출 비중의 70% 이상이 하청인 업체가 많은 게 현실”이라며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기획력이 덧붙여지면서 창작물의 비중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음악 콘텐츠는 최근 ‘한류’ 열풍을 타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만 가수 안재욱을 비롯해 베이비복스 등 국내 대중가수 음반이 50여종이나 발매됐고 한류로 기획사나 음반 제작업체의 수익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음악 콘텐츠가 한류를 타고 유럽까지 진출하고 있다. 해외 음반 견본시장이나 페스티벌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콘텐츠 수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지난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적인 견본시장 팝콤에서는 ‘걸스 프럼 코리아’란 타이틀로 소찬휘 유리 다나 등이 공연했다. 팝콤에 참석했던 기획사 원뮤직의 김남국 과장은 “과거에는 참가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면 지금은 한국가수와 한국의 대중음악을 팔기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게임 콘텐츠는 이미 1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을 형성하면서 국내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 자리잡았다. 게임콘텐츠는 또 산업 부가가치율이 60.3%에 달해 제조업 평균 부가가치율(30%)의 두 배가 넘어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게임시장은 전년대비 30% 성장한 1조4천억원이 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게임 시장은 99년도 2천1백63억원에서 지난해 4천2백90억원으로 매년 배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대표적 업체가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성공한 엔씨소프트다. 이 회사는 리니지 게임 하나로 연매출이 1천억원에 육박하고 있고 코스닥 시장까지 입성하는 기염도 토했다. 엔씨소프트에 이어 CCR의 ‘포트리스2’ 넥슨의 ‘바람의 나라’ 등이 국내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엽기토끼 히트 … 국산 캐릭터 가능성 제시X콘텐츠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 국산 캐릭터 콘텐츠다. 그동안 외국 캐릭터 일색에 한 ‘엽기적인’ 토끼가 등장하면서 토종 캐릭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캐릭터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해까지 전체 캐릭터 시장의 20%도 되지 않던 국산 캐릭터를 70%까지 끌어 올린 주인공이 이 발칙한 ‘토끼’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캐릭터 전문업체 캐릭터인의 지혜선 과장은 “마시마로(엽기토끼)가 국산 캐릭터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하지만 캐릭터 전문가들에 의한 마케팅이 따라주지 못한 것이 아쉬운점”이라고 말했다.마시마로의 성공에 힘을 얻은 국내 캐릭터 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캐릭터인은 상품화를 목표로 토종 캐릭터 ‘두기’를 자체 개발했다. 현재 봉제인형 봉제필통 욕실용품 생활용품으로 상품화된 두기는 10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캐릭터인 지과장은 “올 9월 시장에 나왔는데 최근 열린 국제문구전시회 설문조사 결과 95%가 알고 있다고 대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해외 캐릭터 라이선스 판매가 대부분이던 캐릭터인은 내년에 두기판매로 전체매출의 3분의 1을 채운다는 목표다.문화콘텐츠 펀드1백억원 내외 펀드 속속 등장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화콘텐츠 관련 업체들의 자금난을 해소해줄 수 있는 펀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화콘텐츠 펀드의 등장으로 그동안 국내 문화산업 발전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던 영세성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최근까지 나온 문화콘텐츠 펀드는 문화산업 육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문화관광부를 중심으로 창업투자사들이 만든 것들이다.문광부가 주체가 된 문화콘텐츠 펀드로는 문화콘텐츠전문투자조합 1 2 3호가 나와 있다. 현재 모두 결성을 완료하고 투자업체 물색에 나선 상태다. 1호는 총 1백억원 규모로 IMM창업투자가 주관사가 돼 집행하며 주요 투자 분야는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 디자인 등이다. 2호는 1백8억원으로 한국투자기술이 주관사다. 이 펀드는 e북 멀티미디어 모바일 인터넷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 3호는 1백원 규모로 조성되며 문화콘텐츠 제작 유통 배급 및 연관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창업투자회사 가운데에선 무한기술투자와 한솔창업투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문화콘텐츠 펀드를 만들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무한기술투자는 TNT문화멀티미디어콘텐츠벤처투자조합(86억원 규모), 코리아디자인벤처투자조합 1호(60억원)를 조성해 게임 3D 등에 투자하고 있다. 무한은 특히 문광부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2백억원 규모의 음악엔터테인먼트투자조합도 만들고 있다. 이 음악펀드는 음악 공연 이벤트 분야에 집중한다. 무한기술투자 신백규 차장은 “문화콘텐츠 펀드는 프로젝트 투자로 진행돼 투자회수 기간이 짧은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한솔창업투자도 1백억원 규모의 한솔문화콘텐츠전문투자조합을 조성해 애니메이션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한솔창투는 이미 한솔게임전문투자조합 1호(1백50억원)와 2호(1백억원)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