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흥미 유발보다 공익성에 더 무게를 두기 마련인 공영방송은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다. 정해진 기준을 엄수하려다 보니 내용이 딱딱해질 뿐 아니라 연예 오락 등 시청자들이 즐겨 찾는 감성적 프로그램을 마음껏 집어 넣기가 쉽지 않아서다.일본의 공영방송은 정식명칭이 일본방송협회로 불리는 NHK다. 앞서 지적한 현상의 연장선에서 말한다면 NHK 역시 인기가 높을 수 없다. NHK가 내보내는 TV 프로그램도 푸대접 신세를 면치 못해야 한다.그러나 올 한햇 동안 이변이 하나 일어났다. 그것도 시청자들이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뜰 정도의 깜짝 현상이 벌어졌다. 이변의 주인공은 ‘프로젝트X’라는 다큐멘터리식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였지만 일본 사회에 돌풍을 일으킨 것은 올해 초부터였다. 다큐멘터리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별 주목 대상이 되지 못한다. 드라마와 같은 굴곡이 없고 무미건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프로젝트X는 방영 채널이 공영방송이어서 이중 악재를 한계로 안고 출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러나 매주 화요일 저녁에 전파를 타는 프로젝트X의 시청률은 방송국도 놀랄 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10% 밑으로 떨어진 법이 없을 뿐 아니라 20%에 육박할 때도 수없이 많았다. 방영이 끝난 후면 소감을 보내 오는 시청자들이 매회 4천~5천여명에 달할 만큼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다큐멘터리로서는 극히 이례적이라 할 정도의 환대를 시청자들로부터 받은 것이다.프로젝트X의 인기 비결은 한 마디로 ‘알맹이’에 있다는 게 일본 언론의 일치된 분석이다. 일본 최초의 국산 자동차 개발에 얽힌 비화, 목숨을 걸고 난공사에 도전한 사람들, VTR과 컵라면 등 일본이 세계적 발명품으로 꼽는 상품의 탄생 배경 등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고난과 맞서 싸우며 꿈과 신화를 만들어낸 무명인들의 뒷이야기에 카메라는 앵글을 맞추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일본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굶주림과 추위, 폭염을 참아가며 목표에 도전해 강국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던 사람들의 활약상을 비춰주는 데 프로그램은 힘을 쏟고 있다.이 프로그램이 일본 사회에 안겨 준 센세이션과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방송국은 등장인물들의 어록과 일화를 담은 책을 시리즈로 발간하면서 출판 불황 속에서도 이미 30만부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프로그램을 담은 12개짜리의 비디오 테이프는 개당 3천6백엔의 고가임에도 불구, 인기 상품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미래지향적 꿈 제시보다 ‘향수 자극’ 비판도중·장년층 세대에서는 ‘프로젝트X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부부가 함께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옛 시절을 회상하거나 대화에 열을 올리는 현상이 매스컴의 화제가 됐다. 나카시마 미유키라는 여가수가 부른 힘찬 리듬의 주제가는 유행가처럼 퍼지며 보통사람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방송에서는 연출기법에서 프로젝트X를 본딴 프로그램이 속출하기도 했다.프로젝트X의 인기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 경쟁력과 이미지가 실추된 데 대한 반발로 패기와 의욕으로 똘똘 뭉쳤던 과거에 기대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그것이다. 미래지향적 꿈보다는 옛향수에 젖어 있는 무기력한 일본인들의 오늘날 모습을 비춰주는 데 불과하다고 꼬집는 견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젝트X 돌풍이 전하는 메시지 중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한 의지와 인내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오늘의 명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