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두 CEO는 본사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통합법인의 향방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두 CEO 만큼이나 국내 IT 업계에선 벌써부터 통합지사장이 누가 될 것인지를 두고 많은 ‘설’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 규모를 떠나 두 사람 모두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경영자이기에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지난해 말 HP의 컴팩 인수합병 발표가 있자 국내 지사는 ‘노코멘트’로 즉각적인 반응은 자제하면서도 ‘올 것이 왔구나’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통합이)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공감대에서 나온 것이다.다국적기업의 인수합병 프로젝트는 이사회 의결을 거처 주주총회를 거치고 감독기관의 승인으로 완료된다. 이후 전세계에 퍼져 있는 지사를 대상으로 합병작업이 진행된다. 본사 - 아시아태평양 지역본사 작업을 거쳐 한국법인까지 합병절차를 완료하려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다.문제는 ‘누가 헤게모니를 쥐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한국HP가 연륜이나 규모면에서 컴팩코리아를 앞서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컴팩코리아도 만만치 않다.최사장과는 달리 해외 유학파로, 국내 네트워크가 부족한 강사장이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경영 실적을 본다면 한판 승부도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양사 한국법인 합병에 시너지 기대한국HP는 본사 합병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HP의 천부영 상무는 “컴팩과의 합병은 시스템통합 사업의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한국HP는 엔터프라이즈라고 일컫는 기업시장에서 일찌감치 맹주로 자리잡았고, 각계 각층에 두터운 세일즈망과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특히 컨설팅 시장과 시스템통합(SI) 부문에서는 컴팩코리아를 압도하고 있다. 최근까지 슈퍼돔이라는 유닉스 컴퓨터로 시장을 압도하고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IT 아웃소싱 분야에 박차를 가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페어차일드코리아, 산업은행 부문에 전산위탁사업에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한국HP는 아시아지역의 지사들 중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여기에 삼성그룹과의 오랜 합작을 통한 국내 영업망을 장악한 한국HP의 최사장이 통합지사장으로 유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출신으로 조직관리에 강하고 탄탄한 인맥이 최사장을 받치고 있는 배경이다.양 CEO는 국내파(최사장)와 해외파(강사장)라는 출신말고도 경영스타일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최사장은 굉장히 침착하다. 페어웨이에 놓인 골프공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흔들림이 없다. 마치 표적을 겨냥하고 어드레스 자세까지 그리고 스윙에 이르는 동작에 한치의 군더더기가 없는 프로골퍼와 같다. 최사장이 휘두르는 샷의 페어웨이 안착률은 100%에 가깝다.한국HP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사장의 골프스타일은 그대로 경영에 적용된다.군더더기 없는 그의 경영은 몸가짐과 어투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사무실은 3평 반. 여의도 HP사옥 19층의 삼각형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창가에 붙어 있는 월테이블과 본인의 책상 하나가 2000년 매출 1조 5,190억원을 기록한 회사의 CEO 방이다. HP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 사장실의 문도 없다.회사 매출은 98년 8,320억원, 99년 8,971억원에 이어 해마다 성장을 거듭해 왔다. 2000년에는 1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계측기 사업부문인 에질런트를 분사하면서 거둔 성적이다.최사장은 몇 해 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10~20km에 도전해 몇 차례 완주기록도 유지했다. 최사장은 이제 긴 승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군살없는 경영 vs 스피드 경영강사장은 “합병을 지지하고 또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양사의 합병이 컴팩코리아에게 확실한 ‘플러스’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한국디지탈과 통합(98년) 이후 주력해온 SI(시스템통합) 사업을 ‘빠르고 쉽게’ 안착시킬 수 있다는 점 △우위에 있는 HP의 IT서비스는 컴팩 서비스 사업에 가속도를 붙게 할 것이고 △전국에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HP의 프린터 유통망도 컴팩코리아에겐 비상할 수 있는 ‘날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90년 MIT에서 MBA를 취득한 후 미국 대형컴퓨터 판매업체인 탠덤컴퓨터에 입사한 강사장은 ‘올해의 영업상’을 휩쓸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강사장이 국내 시장에 알려진 것은 97년 탠덤컴퓨터가 컴팩에 인수될 때인 아태지역 대표를 맡고 있던 강사장이 주위의 예상을 뒤엎고 컴팩코리아 통합지사장이 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이듬해인 98년 7월 컴팩과 디지털 합병에 따른 한국내 통합지사장이 되면서 강사장은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강사장의 저력은 이질적인 3개 회사의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점이다. 강사장이 이끄는 컴팩코리아는 본사에서도 성공적인 통합지사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다. 매출면에서도 합병에 따른 효과도 있었지만 강사장 특유의 저돌적인 영업으로 급성장을 했다.한국디지털 합병 원년인 98년에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컴팩코리아는 99년에 3배에 가까운 3,500억원을 기록했다. 또 2000년엔 두 배쯤 늘어난 6,500억원을 올렸다. 하지만 2001년에는 경기상황 악화에 맞물려 전년 수준인 6,500억원에 머물렀다. 강사장은 “IT 전체 시장이 17% 마이너스 성장인 상황에 비하면 선방한 것”이라며 “2000년은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었다고 본다. 시장 여건에 상관없이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강사장은 저돌적이다. 세계 PC시장 ‘넘버원’ 기업 컴팩의 문화와 일치한다. 일단 목표가 설정되면 돌진한다. 그는 “컴팩코리아는 근성이 있는 조직이고 목표가 세워지면 끝장을 볼려고 한다”고 말할 정도로 전투적이다. 강사장은 또한 스피드 경영 즉 빠른 의사결정을 강조한다.그의 대표적인 스피드 경영은 한국디지탈 통합에 따른 조직 정비가 대표적인 예다. 98년 7월 초 공식적으로 통합지사장을 맡은 강사장은 2주 만에 통합회사의 조직을 발표하기도 했다. “통합과정이 길어질수록 손해이다. 가능한 그 갭을 줄이는 것이 통합지사장의 역할이며 능력이다” 강사장의 스피드 경영론이다.어쨌든 한국HP와 컴팩코리아가 합치면 연매출 2조원대의 거대 회사가 한국에서도 생긴다. 그렇게 되면 매출면에서 최대 경쟁자인 한국IBM을 따돌리게 된다. 미국에선 공공연하게 이번 합병을 ‘아이비엠을 넘어(Beyond the IBM)’로 외칠 정도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물리적인 통합만으로 국내 IT 업계 최강자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HP - 컴팩 출신 IT 경영인국내 IT산업 선도 “우리도 잘 나갑니다”한국HP와 컴팩코리아 출신들은 통합을 추진하는 친정기업과 마찬가지로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정보통신이라는 업계 생리가 그렇듯이 경쟁할 때는 치열하지만 승리를 위해 단합하는 비즈니스맨십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특히 국내 정보통신 사업을 선도하고 선진기술을 소개해온 선구자로서 양사 출신의 멤버들은 어느 기업을 가든지 대우를 받고 있으며, 본인들 또한 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쉼없이 뛰고 있다.한국HP와 컴팩코리아는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인재를 육성 배출했다. 이들 HP, 컴팩 출신기업인 즉 ‘ex맨’들은 정보통신 전 분야에 걸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국제적 영업감각으로 시장 개척 탁월먼저 HP 출신 기업인 가운데 김윤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사장(52)이 돋보인다. 2000년 11월 시스코코리아에 합류, 비즈니스 총괄을 담당하다 지난해 시스코코리아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시스코코리아의 현지화에 좀더 많은 기여가 예상되고 있다.김사장은 시스코코리아 합류 전까지 한국HP에서 16년간 근무했다. 한국HP의 시스템 사업 부사장을 역임한 그는 한국HP 시스템 사업의 근간을 완성하고 제조 금융 통신 분야의 탄탄한 세일즈망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90년대에 HP영업을 주도하며 해마다 최우수 세일즈로 CSO 성취상을 받아 두각을 나타냈다.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김사장은 한국정보처리협회 이사, 한국정보전문가협회 이사도 맡고 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최고위 과정(Executive Program)을 수료했다HP마케팅 출신인 김근 한글과컴퓨터 사장(42)도 돋보이는 인물.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시카고 MBA를 취득했다. 이후 HP코리아 영업 담당입사 국내 사업은 물론 HP아시아태평양지역 사업을 벌이며 국제사업도 추진했다. 특히 HP에서 마케팅 이사를 역임하며 HP의 브랜드이미지를 제고했다. 97년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올초 한글과컴퓨터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해외기업에서 국내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한글과컴퓨터 사장으로 말을 바꿔탄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수익성 우선, 투명 경영, 선도 벤처의 모범 제시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며 올해 승부수를 던졌다.박기헌 한국트렌드마이크로 사장(40)도 빼놓을 수 없다. 박사장은 HP의 시스템모니터링 소프트웨어인 오픈뷰 국내 영업을 총괄했다. HP 재직시 소프트웨어에 관한 한 달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케팅 전략 부문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시스템용 백신 및 보안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트렌드마이크로로 자리를 옮긴 박사장은 최근 일반 PC용 시장에도 진출을 꾀하고 있다.하만정 이네트 사장(39)은 탁월한 영업으로 유명한 HP 출신의 경영인이다. 하사장은 HP, 한국CA의 지사장을 거쳐 지난해 이네트로 옮겼다. 63년생으로 87년 연세대 전기과를 졸업한 그는 빠른 시간에 한국CA를 본사의 국제적 명성에 걸맞도록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CA가 80명의 직원만으로 1인당 4억원 이상의 높은 생산성을 이뤄낸 것으로 유명하다.강원일 MIB 사장 성능관리SW 국내 소개컴팩코리아 출신으로 국내 IT업계 임원급 이상으로 자리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일단 다른 외국계 회사보다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 이유다. 정식 법인이 설립된 95년부터라고 해도 이제 7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다.컴팩코리아 또는 통합된 한국디지탈 출신으로 임원급 이상 CEO로 일하는 사람은 정수영 와우리눅스 사장, 강원일 MIB 사장, 손영진 BMC소프트웨어코리아 사장, 이규형 캡스 상무, 차인덕 도시바디지털미디어코리아 사장, 이수현 어바이어코리아 사장 등이다.와우리눅스 정수영 사장(37)은 컴팩코리아 출신 가운데 몇 안 되는 창업 케이스. 정사장은 2000년 8월 컴팩코리아를 나오면서 리눅스 솔루션 전문업체인 와우리눅스를 설립했다. 96년 한국디지탈에 입사한 정사장은 98년 컴팩코리아와의 합병 후 마케팅 부서에서 전자상거래 관련 마케팅 활동을 해왔다. 정사장은 “한국디지탈과의 합병 후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주력한 것이 컴팩성공의 한 요인이었다”며 “이후 기업시장에서 컨슈머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와우리눅스는 현재 컴팩코리아 솔루션 파트너로 있으면서 컴팩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2001년엔 컴팩 제품을 20억원어치 팔아 솔루션 파트너 가운데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려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다.강원일 MIB테크놀로지 사장(40)은 컴팩에서 세일즈로 이름을 날리던 인물. 유통망과 서비스가 부족했던 90년대 초 컴팩에 입사해 탁월한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성능 관리(Performance Tuning)’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때 미국 프리사이즈(Precise)사의 성능관리 소프트웨어와 컨설팅을 국내에 공급하며 국내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 LG 현대 등의 대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최근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인 BMC소프트웨어코리아 손영진 사장(48)은 94년 10월에서 12월까지 가장 짧게 근무한 컴팩코리아 엑스맨이다. 한국IBM에서 컴팩코리아로 영업이사로 영입된 케이스인 손사장은 컴팩을 나온 후 굽타, 데이터제너럴 등을 거쳐 99년 현재의 BMC소프트웨어코리아 사장으로 왔다.보안경비 업체 (주)캡스의 인사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규형 상무(45)는 95년 컴팩코리아에 합류해 98년 한국디지탈 통합 작업을 완료하고 컴팩을 떠난 케이스. 다국적 IT기업에 있으면서 인사관리에 관한 베테랑인 이상무는 컴팩코리아와 한국디지탈과의 조직통합작업에도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이밖에 지난해 12월 초 도시바디지털미디어코리아(TDMK) 지사장으로 영입된 차인덕 전 한국디지탈 마케팅 차장(46)과 루슨트테크놀로지의 네트워크 부문이 분사해 만든 어바이어 국내 법인인 어바이어코리아의 이수현 사장(50)도 컴팩코리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