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334호 (2002년 04월 29일)

낮엔 학원·독서실, 밤엔 유흥가로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5

문대현씨(30)는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행정고시 준비를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 거주 중이다. 99년 처음 신림동에 발을 디딘 후 지금까지 고시생활을 하고 있는 고시촌 생활 3년차.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새벽 1시까지 고시촌에서 활동하지만 아직까지 신림동을 벗어나는 경우는 3개월에 한 번 정도다. 그와 보낸 24시간을 통해 신림동 고시촌의 전반적인 경제흐름을 짚어봤다.

07 : 00 식당

고시촌의 아침 분위기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은 고시촌 일대의 식당들이다. 고시생들 대부분이 근처 식당에서 월식을 하거나 식권을 사서 먹고 있기 때문에 아침 6시 반부터 고시촌 일대 식당들은 고시생들로 북적거린다.

식당에 들어서면 밑반찬 6가지와 달걀 프라이, 국, 과일 등이 뷔페식으로 제공되고, 가격은 한 끼당 2,000원 안팎이다.

고시촌에서 나도는 유머 중 ‘월우수돈금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고시식당에선 월요일엔 소고기, 수요일엔 돼지고기, 금요일엔 닭고기를 제공한다.

문씨는 “아침은 비교적 여유롭지만 점심과 저녁 시간대에는 한참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며 “월식 식당을 운영해 번 돈으로 지난달 원룸과 식당을 갖춘 신축 건물을 지은 사람도 있다”며 귀띔했다.

고시촌내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그 건물의 시가를 30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09 : 00 독서실

식당을 나선 고시생들은 대부분 고시원으로 가지 않고 독서실로 자리를 옮긴다. 고시촌 근처 학원의 아침수업은 대부분 어학특강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어학을 듣지 않는 고시생들은 오전에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특히 고시촌에서 독서실이 인기를 끄는 것은 고시원보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고시생들이 선호하기 때문. 문씨는 “하루 종일 고시원에 있는 고시생들은 없다”며 “대부분 독서실에 자리를 하나씩 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문씨와 함께 찾은 독서실은 한 달 12만원에 독서실 좌석 하나를 잡을 수 있다. 독서실 내부의 휴게실은 시내의 유명 헬스클럽들과 다를 게 없었다. 휴게실엔 러닝머신이 네 개나 있고, 지하엔 현재 사우나가 보수 건축 중이다.

독서실 직원에 따르면 좌석 수가 600석이지만 현재 ‘고시 비시즌’임에도 불구하고 500석 안팎의 좌석들이 찬 상태라고 한다.

학원 13 : 00

200석짜리 강의실 두 개를 뚫은 T학원 대형 강의실. 고시 준비생 400명이 빼곡히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실 내부는 쥐죽은 듯 조용하다. 뒷좌석에 앉아서 칠판이 안 보이는 학생들을 위해서 강의실 중간에는 대형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학원들의 인기는 무엇보다 그 학원이 자랑하는 스타강사에 따라 달렸다. 스타강사의 경우는 한 번 강의에 400명의 수강생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자리잡기 경쟁도 치열해 앞좌석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1시간 이전부터 입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

따라서 이들 인기강사들의 몸값은 하늘을 찌른다. C학원에서 헌법을 가르치는 H씨의 경우 ‘고시 성수기’인 방학 때는 하루 2번 강의를 한다. 한 번 수업에 몰리는 수강생은 400명 정도로 하루에 800명의 고시생들을 가르치는 셈.

한 달 수강료가 25만원이라고 한다면 헌법수업만으로 한 달에 약 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문씨는 “고시생들이 인기강사들에게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며 “강사들의 개인 실력을 떠나서라도 다른 고시생들이 들어본 수업은 한 번쯤 들어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말했다.

PC방 20 : 00

신림동 모 PC방. 문씨를 따라 들어간 PC방은 다른 여타 PC방들과 다를 바 없었다. 손님 모두가 고시생이라는 외관상의 차이뿐.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모니터를 잠시 쳐다보게 되면서 순간 낯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게임을 하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성인물을 보고 있는 것. 문씨는 “여

긴 성인물 관람 전용 PC방이라고 할 수 있다”며 “저녁 7시 이후에는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라고 밝혔다. 모두가 다 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죄의식을 느낄 수가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물론 고시촌내 모든 PC방이 이런 것은 아니다. 많은 고시생들이 수험정보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PC방을 찾는다. 학원에서 보는 모의고사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고, 고시촌 소식과 수험 정보들을 제공하는 사이트들도 등장했기 때문. 문씨의 경우 일주일에 두 번 꼴로 한 번에 2시간씩 PC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녹두거리 23 : 00

신림동 고시촌의 밤은 여느 시내의 환락가 못지않게 불야성이다.

밤이 되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시생들로 고시원 거리는 북적거리고, 녹두거리의 술집들은 고시생들의 회한을 나누는 장소로 탈바꿈한다. 특히 주말엔 주변 유흥업소들은 거의 만원을 이룬다. 문씨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은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평일에도 신림동 고시촌에선 치킨집, 술집, 만화방 등 대부분의 업소들이 24시간 영업을 한다. 이른바 야행성 고시생들을 잡기 위해서다. 밤 12시가 넘었지만 인근 편의점 앞에서도 컵라면 등 야참을 먹는 고시생들로 북적거린다.

얼마 전 신림동 고시촌에서 낙성대로 방을 옮겼다는 김규형씨는 “솔직히 고시촌에서는 하루 밤을 새우기가 너무 편리하게 돼 있다”며 “밤에 가끔씩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몇 시간씩 PC방이나 만화방에서 지새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인터뷰 왕명오 태학관 원장

“지금 이곳은 세대교체 중입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전문학원인 태학관을 운영하는 왕명오 원장은 14년째 고시촌을 지키고 있다. 왕원장은 “지난해부터 사법고시 1차 시험의 출제유형이 바뀌고, 사법고시 합격자들을 엄청나게 늘었다”며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장 고시생’들이 고시촌을 떠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젊은 고시생들이 학원으로 몰리면서 무엇보다 상업주의에 물든 고시촌 학원가의 세태를 꼬집었다. 왕원장은 “이젠 고시촌 주변 학원가들도 상업주의로 물들고 있다”며 “인기강사들을 끌어오기 위해 5,000만원이나 1억원을 선금으로 주는 경우도 흔하다”고 밝혔다.

대형 고시학원들끼리 ‘인기강사 모시기’ 전쟁이 결국은 수험생들에겐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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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