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게임큐브2“새로운 즐거움을 제안하는 회사라면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같이 손잡고 일하고 싶습니다.”일본 매스컴의 월드컵 취재경쟁이 한창 뜨겁게 불붙은 지난 6월6일. 도쿄 도심의 한 호텔에선 40대 초반의 신임사장과 기자들의 상견례를 겸한 사업설명회가 열렸다.“게임을 이용해 오락(상품과 서비스)의 유통을 지배하려는 세력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살이 제법 오른 퉁퉁한 얼굴에 머리 한가운데 가르마를 타 멋을 낸 신임사장이 입을 열 때마다 설명회장을 가득 메운 기자들의 눈빛은 더욱 강하게 빛났다.이와다 사토루(岩田聰). 1960년생, 도쿄이과대학 졸업, 소규모 게임소프트회사 근무… 2000년 닌텐도(任天堂) 입사, 2002년 5월31일 닌텐도 4대 사장 취임.기자들의 표정에는 ‘신임사장이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떤 재주를 갖고 있고, 얼마나 실력이 있기에 40대 초반에 일류기업의 사장자리에 올랐을까?’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일본언론의 호기심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신임사장의 등장배경과 그가 지휘봉을 잡은 닌텐도의 앞날, 그리고 닌텐도가 한축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게임산업의 내일을 읽을 수 있는 단서가 모두 이날 윤곽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이와다 사장의 등장은 5월 한 달만 놓고 볼 때 일본 재계 최고의 ‘깜짝쇼’였다. 일본 게임산업의 원조격인 회사이며 알짜 우량기업으로 손꼽히는 닌텐도가 평이사(理事)에 불과한 그를 수많은 부사장과 전무 등을 제치고 어느날 갑자기 신임사장으로 발표한 것부터가 그랬다.더구나 물러난 야마우치 히로시 전 사장(75)은 닌텐도 창업패밀리의 3대손이었다.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이던 22세 때 사장이었던 조부가 병으로 드러눕는 바람에 야마우치 전 사장이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중단하고 청년실업인으로 변신해 키워 온 회사였다.1889년 화투를 만드는 교토의 한 영세기업에서 출발했지만 게임기사업에 뛰어든 77년부터 초대형 홈런을 잇달아 터뜨리며 게임시장의 황제로 군림하기도 했던 업체였다.닌텐도의 사장교체는 ‘젊은 피’ 수혈과 창업패밀리의 기득권 포기, 그리고 회사설립후 100여 년 만의 첫 번째 외부인사 사장영입 등 극적인 요소를 고루 갖춘 빅뉴스였다.따라서 게임산업의 카리스마로 불린 야마우치 전 사장의 퇴임발표 후 신임사장 설명회가 열릴 때까지 일본언론이 닌텐도에 관심을 쏟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그러나 일본언론의 더 큰 관심은 사장교체가 게임산업의 시장판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이냐에 있었다. 소니의 고속질주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대공세로 지각변동에 휘말린 게임시장에서 닌텐도가 제시할 생존해법, 나아가 패권탈환의 전략은 무엇이냐에 시선이 깊숙이 꽂혀 있었던 것이다.일본언론과 전문가들은 2001년 봄 세가가 게임기사업에서 손들고 물러난 후부터 소니와 닌텐도의 컬러가 부쩍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세가의 탈락을 계기로 경쟁자가 둘로 좁혀진 상태에서 시장을 양분하면서도 두 회사는 각자의 마이웨이를 고집했다는 분석이다.전문가들은 일단 94년부터 후발주자로 참여한 소니의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가 군웅할거 상태의 시장을 평정했다는 데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세가의 철수 후 ‘Xbox’를 앞세운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산업의 다크호스로 등장했지만 소프트웨어의 양과 질, 가격경쟁에서 소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5월21일 미국에서 열린 한 게임산업전시회에서 SCE 미국법인의 히라이 가즈오 사장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승부는 끝났다’며 호언장담을 서슴지 않은 데에서도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1, 2를 합쳐 지금까지 모두 1억대 이상의 게임기를 팔았으며 특히 차세대 게임기전쟁의 주력무기인 플레이스테이션2는 3,100만여 대를 판매했다.이에 따라 지난 3월 말 결산에서 소니는 게임사업에서만 1조37억엔의 매출과 829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 게임이 앞으로 소니를 끌고 갈 최고 수익사업으로 뿌리내렸음을 입증했다.전문가들은 소니의 강점과 컬러로 게임기 기술을 좌우할 하드 부문의 탄탄한 기반과 뛰어난 첨단 기술력, 그리고 네트워크 게임시대를 리드하는 발 빠른 선행투자를 들고 있다. 하드웨어의 경우 게임기용 반도체의 개발, 생산설비를 자체 보유하고 있어 이것이 게임기 가격싸움의 압도적 경쟁우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쉽고 즐거운 게임’원칙 일관되게 고수소니와 달리 닌텐도는 ‘쉽고 즐거운 게임’을 일관되게 내세워 왔다. ‘게임은 우선 즐거워야 한다’는 야마우치 전 사장의 신념에 걸맞게 청소년, 성인을 겨냥한 첨단 고기능 제품 외에 어린이들이 간편하게 갖고 놀 단순 휴대형 게임기시장에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휴대형 미니게임기 ‘게임보이’의 후속모델로 2001년 시장에 투입된 ‘게임보이 어드밴스’가 1년간 무려 1,816만대나 팔린 점이 닌텐도의 뛰어난 장사수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닌텐도는 플레이스테이션2의 경쟁제품인 ‘게임큐브’의 발매시기가 늦어진 탓에 380여 만대를 파는 데 그쳤지만 게임사업 전체 성적에선 소니를 능가하고 있다. 2001년 매출이 5,549억엔으로 소니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은 1,192억엔으로 무려 263억엔이나 더 많다.닌텐도는 게임시장의 진짜 승부는 게임기 본체보다 소프트웨어의 내용에 달렸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을 하나라도 더 끌어안고 연합전선을 구축해 소프트웨어 싸움으로 게임시장의 패권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출신인 데다 부도로 쓰러진 업체를 재건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 그의 발탁도 소프트웨어 중시 전략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닌텐도는 사장교체에 앞서 지난 2월 나무코, 세가 등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업체들과 잇달아 제휴계약을 체결했다. 또 3월에는 한때 불편한 관계로 소문났던 스퀘어계의 소프트웨어 회사와도 극적으로 화해하고 손잡기도 했다.이와타 사장은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게임큐브 보급대수를 2005년 3월 말까지 5,000만대로 늘리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안에 들어갈 내용물만 좋다면 플레이스테이션2가 장악한 시장을 얼마든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자신이다.화투에서 트럼프를 거쳐 게임기 업체로 계속 변신해 온 닌텐도는 고객들의 연령과 눈높이에 맞춘 놀이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최고의 경쟁력과 센스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59년 어른들의 놀이도구인 트럼프에 디즈니 캐릭터를 넣어 어린이시장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 것을 비롯해 각 세대의 취향에 맞춘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낸 지금까지의 발자취가 이를 입증한다.일본 최고의 기술력을 뽐내며 게임시장의 천하통일을 이뤘다고 호령하는 소니와 눈높이 게임으로 시장을 소리 없이 넓혀가고 있는 닌텐도. 길은 다르지만 ‘패권’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라이벌 간의 싸움이 어떻게 결판날지 일본 게임시장과 세계 게임산업계의 눈은 두 업체에 집중돼 있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