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가 안돼 문 닫은 백화점이 할인점이나 다른 업종 기업들의 손에 넘어 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 경우 백화점을 인수한 업체들이 새로 시작하는 업종의 상당수는 중저가 상품을 취급하는 염가형 비즈니스다.입지가 좋지 않아 주변 경쟁업체들의 공세를 못 이기고 주저앉은 백화점일수록 특히 할인점이나 전문점 등 새 업종에서 활로를 찾는다. 일본도 사정은 다를 바 없지만 이 같은 현상은 한국 유통업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일본 유통업계에 나타난 최근의 두드러진 사례 중 하나는 백화점들이 중고품사업에 부쩍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적잖은 수의 백화점들이 매장 한가운데 중고품코너를 버젓이 설치해 놓는가 하면 일부 백화점들은 아예 신상품 장사를 걷어치우고 중고품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꿔 단 후 성공궤도를 달리고 있다.취급 품목도 다양하다. 한 벌에 수만엔을 호가하는 기모노(일본 전통 여성의류)가 나와 있는가 하면 어린이 유모차, 완구, 레코드, 책에서 시계, 귀금속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중고품전문점으로 변신한 후 히트를 친 대표적 사례는 도쿄 시나가와구의 오이초역 앞에 자리잡은 옛 오이초한큐백화점이다. 역 앞에 현대식 유통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궁지에 몰리게 된 이 백화점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2년 전 중고품전문점으로 돌아섰다.완구, 아동복에서 여성복, 귀금속, 컴퓨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일반 백화점이 판매하는 상품을 대부분 갖추고 있는 이곳은 ‘알뜰살림 지킴이’로 소문나면서 하루 종일 고객들로 북적인다.완구, 유모차 등 젊은 주부 고객들의 수요가 특히 많은 상품을 신제품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물론 아동복은 100엔에 판매하는 것도 있어 뜨거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매장은 대부분 임대로 운영하고 있지만 소비자들로부터 탄탄한 신뢰를 얻는 곳이라는 평판이 퍼지자 입점을 원하는 업체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8월부터는 일본 주부들이 꼭 갖고 싶어 하면서도 한 벌에 수십만엔을 호가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기모노의 중고매장을 개설, 집객력을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중고품 장사에 소매를 걷어붙인 백화점은 이곳만이 아니다. 도큐, 다이마루 등 도쿄의 내로라하는 대형 백화점들은 품목의 차이는 있어도 가구와 의류, 인테리어 제품 등을 중심으로 리사이클 상품을 판매,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유통업 중 가격경쟁력이 가장 뒤처지는 것으로 꼽히는 백화점들의 중고품 장사는 일본 소비자들의 기호와 소비패턴 변화를 정확히 대변하는 거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경제산업성 상업통계에 따르면 일본 전역의 중고품 소매점수는 2000년 말 기준 1만500개 점을 상회, 4년 전보다 약 40%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업종별로 본 각종 소매점들의 증가세 중 단연 톱에 해당되는 것이며, 그만큼 폭발적인 성장에너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경제산업성은 소비패턴 변화와 함께 상업시설의 신개축 및 불황여파로 각지에서 빈 점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중고품 전성시대를 연 기폭제가 됐다고 밝히고 있다.전문가들은 핵가족화와 경제적 풍요에 밀려 사라지고만 ‘대물려 쓰기’의 미덕을 중고품 비즈니스가 되살려주고 있다고 지적, 백화점들의 중고품 장사를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경제평론가 이시나베 히토미씨는 “수익성 여부를 떠나 백화점의 중고품 판매는 과거의 지혜와 발상을 되살려 생활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중고품 비즈니스의 성장은 장기 불황에 지친 소비자들의 어깨를 펴주고, 마음을 치유해주는 생활 르네상스적 효과를 안겨주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