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348호 (2002년 08월 05일)

두 도시 이야기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5

미국 증권시장의 함몰을 두고 지난 1929년 주가대폭락 사태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태진행의 경과나 당시의 경제계 사정들을 회고해 보면 ‘실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망기업의 몰락, 지도급 인사들이 관련된 추문, 주가폭락, 정치권 동향, 심지어 경제상황을 돌아보더라도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당시에도 ‘신경제’라는 말이 등장했고 증권시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 마치 주문처럼 유행했다.

오늘의 주제는 당시 뉴욕을 송두리째 쥐고 흔들었던 부정부패 스캔들에 관해서다. 1920년대 10년간을 대폭등으로 치달았던 뉴욕증권시장이었으니 주가조작과 회계부정, 내부자거래와 책동전(주식투자자들이 매도와 매수그룹로 나뉘어 매매공방전을 벌이는 것)이 횡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저명인사들과 대형 증권사들은 모조리 부정부패에 말려들어 철창신세를 졌고 결국에는 금융황제 JP모건조차 상원 은행위원회에 불려가 모욕적인 대접을 받아야 했다.

큰 줄기는 역시 워싱턴과 뉴욕의 전쟁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워싱턴이, 온갖 투기의 대명사요 부정부패의 본산이며 사기와 횡령, 주가조작에, 벼락부자들이 설쳐대는 ‘천박한 뉴욕’을 어떻게 청소하고 접수할 것인가 하는 치열한 전쟁이 1930년 벽두부터 미국증권시장을 흔들었다.

유명한 1933년 증권거래법이 증권거래를 감독할 SEC를 창설키로 했을 때 뉴욕의 반발은 극에 달했었다. “워싱턴이 뉴욕을 점령하려 한다”는 격한 규탄들이 월스트리트를 메웠다.

5명의 증권거래위원들이 처음으로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했을 때는 경찰이 삼엄한 경호에 나서야 했을 정도라니 뉴욕시장의 반발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전쟁은 결국 JP모건의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증권거래소 이사장이었던 리처드 휘트니가 횡령혐의로 구속되면서 1937년에 가서야막을 내렸다.

휘트니의 범죄는 자신의 증권투자손실을 메워보려는 가련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었지만 그의 구속으로 뉴욕인사들에 대한 워싱턴의 대공세는 막을 내렸다.

지금 아더 앤더슨이 걸려들고, 그때의 JP모건과 시티가 다시 청문회에 서고, 잇단 내부자거래와 분식회계, 부정대출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것이 1930년대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회계위원회가 창설되고 SEC에 증권 문외한이 위원장에 취임하는 모습도 뉴욕을 점령했던 워싱턴의 당시 모습과 흡사하다. 휘트니가 워싱턴의 뉴욕장악에 결사반대하는 깃발을 들고 투쟁한 이야기는 “부시와 딕 체니 역시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역공을 감행하는 새로운 이야기로 버전업돼 있을 뿐이다. 딕 체니 부통령이 관련된 스캔들이 <뉴욕타임스 designtimesp=22638>에서 불거져 나온 것부터가 정말이지 흥미진진한 사태전개다.

누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느냐는 것은 언제나 정치권력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다. 클린턴 시절 후반부의 막강한 재무부장관은 골드만삭스 회장이었던 로버트 루빈이었다. 그는 우리가 다 알 듯이 강한 달러를 추구하면서 월스트리트를 옹호했고, 신경제 호황이며 나스닥 5,000포인트 시대를 만들어냈었다. 말하자면 워싱턴이 아닌 뉴욕의 논리가 관철되고 뉴욕 금융인들이 위싱턴을 장악했던 셈이다.

지금 미국의 재무장관은 뉴욕과는 거리가 먼 기업가 출신이다. SEC조차 금융과 관련 없는 기업가가 차지했고 부시 경제고문 린지는 1990년대 전체를 ‘증권과잉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시류에도 걸맞게 “1990년대는 전염성 탐욕(Infectious greed)의 시대였다“며 부시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의 전쟁이 70년 만에 다시 불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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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