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메밀꽃이 피는 계절에는 먼저 강원도 평창군 봉평의 이효석 생가를 찾아가는 것이 제격이다. 소설가 이효석의 생가로 가기 전 들르게 되는 곳은 가산공원. 안경을 걸친 이효석의 흉상이 1993년 조성된 공원 한가운데 서 있다. 작은 규모이지만 가산공원은 섬세하고 이지적이었던 이효석의 성품을 닮은 듯 제법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이효석 생가로 가기 전 남안교를 건너면 이 마을이 ‘이효석 문학의 터’임을 알리는 기념비와 물레방앗간이 있다. 1991년 문화부에서 이효석의 생가가 있는 남안동마을을 전국 최초로 문화마을 제1호로 지정하며 세운 기념물들이다.물레방앗간에는 디딜방아와 독이 몇 개 있고 방앗간 오른쪽으로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이효석 문학의 터 기념비에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 designtimesp=22756> 중에서 허생원이 물레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를 만나는 장면이 쓰여 있다.‘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이효석은 1907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에서 태어났다. 1930년 경성제대 영문학부를 졸업했고, 1931년 결혼한 뒤 경성농업학교에서 영어교사를 지냈다. 초년 작가시절에는 정치색 짙은 소설을 썼으나 결혼 후에는 서정성 짙은 소설을 많이 썼다. 1940년 아내와 둘째아이를 잃고 극심한 실의에 빠져 만주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건강을 잃은 그는 끝내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고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시원스럽게 물줄기가 떨어지는 물레방아에서 약 마을 안으로 1.4㎞ 들어가면 이효석의 생가가 나온다. 이효석은 초등학교시절 지천으로 깔린 메밀밭을 사이에 두고 평창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등교했다고 한다. 현재 이효석의 생가는 구조는 변함이 없으나 초가지붕이 함석지붕으로 변해 있다. 생가 바로 옆으로는 메밀음식을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이 들어서서 문인의 생가를 방문한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생가 뒤로는 해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대개 8월 말부터 9월 중순에 걸쳐 하얗게 메밀꽃이 피어난다. 봉평 창동리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는 올해 9월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효석문화제가 개최된다. 문의 가산문학선양회(033-335-2323).효석문화마을을 둘러보는 코스는 가산공원을 출발, 제주의 유채꽃밭처럼 메밀꽃이 가득 피어나 기념사진을 찍기에 좋은 핀 포토존 → 물레방앗간 → 효석문학관 → 생가터 순이다.백색의 순결미가 돋보이는 메밀꽃. 그 꽃밭 앞에서 자연스레 멈춰지는 발걸음. 파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메밀꽃은 눈이 시리도록 하얀 빛을 발한다. 메밀은 죽어서는 구휼먹거리로 태어나 가난한 여행객들의 배를 따스하게 채워주고 살아서는 비록 꽃향기 없어도 마음이 외로운 자들의 영혼을 부드럽게 애무해준다. 누가 그 꽃밭에서 가벼이 눈길을 뗄 수 있으랴. 메밀꽃밭 풍경은 생가의 앞뒤뿐만 아니라 물레방앗간 주변에서도 만날 수 있다.한 소설가의 생가를 답사하고 봉평읍내로 다시 나왔다가 보광휘닉스파크 스키장 방면으로 가자면 흥정계곡 입구가 나온다. 차 두 대가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좁은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허브나라농원(033-335-2902)이라는 이색지대에 닿는다. 찻길 옆으로는 회령봉(1,309m)에서 발원한 흥정천 물이 흘러간다.허브란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는 향기로운 식물들을 통칭하는 말. 농원은 각종 허브식물이 심겨져 있으며 야외전시장을 비롯해 차와 식사를 파는 식당, 기념품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상쾌한 맛과 향기로 피로회복에 좋은 페퍼민트, 육류요리에 필수라는 세이지, 매콤한 맛이 일품인 한련화 등 120여종의 허브들이 이곳에서 자란다. 농장의 총면적은 3만평, 허브 재배면적은 7,000평 정도. 1993년 농사를 관광자원화시키기 위해서 이고순, 이두희씨 부부가 가꾼 것이다.한편 봉평에 가면 메밀 막국수를 맛보아야 온전한 여행을 한 것이다. 봉평 메밀은 수입산 메밀에 비해 값이 다섯 배나 비싸지만 순수성을 지키고자 이곳 막국수집들은 국산만을 고집한다. 미식가들은 순 메밀을 좋아하나 대개 메밀 80%에 밀가루를 20% 정도 섞어야 끈기가 있고 맛도 좋다고 한다. 메밀은 쌀이나 밀가루보다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단백가가 높은 곡물로 소화가 잘되고 변비와 고혈압에도 효과가 좋다.효석문화마을과 허브나라에 이어 또 한 군데 들러볼 곳은 휘닉스파크 방면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평창무이예술관이다. 이곳은 7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던 무이초등학교가 폐교되자 그 터를 활용한 예술관으로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은 메밀꽃과 조화를 이룬 조각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도자기, 서예, 조각, 서양화 등의 작품을 창조하는 미술가들의 작업실 또한 개방돼 있어 여행객들에게 잠시나마 창작의 혼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