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354호 (2002년 09월 16일)

한반도 자생식물서 ‘신약’ 캔다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5

지난해 러시아는 ‘가시오가피’란 약초를 미국에 8억달러어치나 수출했다. 가시오가피는 일명 ‘시베리아 진생’으로 불리는 인삼의 일종. 스트레스 해소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등지로 수출이 계속 늘고 있다. 이 가시오가피는 요즘 국내에서도 인기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가시오가피가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한다는 것이다. 더욱 놀랍게도 그 약효가 러시아산에 비해 월등하다는 게 입증됐다. 독일 약학계의 대부 와그너 박사는 “한국산 가시오가피가 시베리아 진생보다 네 배나 많은 효능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고려인삼을 다량 수입해 갔다. 이를 원료로 화이자의 비아그라와 비슷한 ‘타이그라’라는 성기능 개선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재 이 제품은 유럽지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독일 역시 한국산 은행잎을 수입해 혈액순환제를 만들어 연간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노믹스보다 성공 가능성 높아

이런 사례들은 한반도 자생식물이 훌륭한 신약의 원료가 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가시오가피, 인삼, 은행잎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약 원료가 될 수 있는 한국 토종식물들은 무궁무진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은 현재 신약개발에 쓰이는 자생식물만 100여종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이미 국내에서도 인삼추출물을 이용한 비만치료체, 가시오가피를 이용한 성장촉진제 등이 나왔다. 이들 제품들은 일단 건강보조식품으로서의 기능을 인정받고 있으며 1조원대의 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해석해 맞춤의약을 가능하게 한다는 이른바 지노믹스는 불행하게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기능유전체 정보를 완전히 분석하기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진단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개발 역시 천연물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는 주장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지노믹스 분야의 인프라가 취약한 경우에는 이런 방향 전환이 유리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얘기다.

국내 바이오벤처기업인 싸이제닉의 이희설 사장은 “자본과 연구인력 인프라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는 미국 등과 대적하려면 중ㆍ단기적으로 자생식물을 이용한 신약개발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노믹스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신약은 식물 같은 천연물에서 나온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해열제 ‘아스피린’과 항암제 ‘탁솔’이다. 각각 버드나무와 주목에서 추출한 원료로 개발된 신약들이다. 이런 식물신약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천문학적. 미국 머크사의 식물신약 단일품목이 국내 대형 제약사의 연간매출보다 훨씬 더 크다는 통계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자생식물 신약은 생산성이 매우 높다. 단순히 식물에서 약효성분을 추출해 생약을 만드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효가 뛰어난 식물체의 유전체 구조를 분석한 다음 구조를 변형해 합성신약을 개발하는 단계에까지 왔다.

소재ㆍ솔루션 모두 경쟁력 최고

‘사람말고는 자원이 없는 나라.’ 오랫동안 이런 푸념이 있었다. 한반도는 아랍처럼 유전이 있는 것도, 미국처럼 대단위 농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후 또한 결코 좋은 게 아니다. 강수량은 1,500㎜를 넘지 못하고, 계절도 네 번씩 변덕스럽게 바뀐다. 토양의 유기물함량도 2.5%로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척박한 환경이 식물의 자생력과 약효를 키우게 했다.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을 맡고 있는 정혁 박사는 “수만년 전부터 한반도 자생식물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생력을 키워왔다”며 “이는 좋은 환경에서 서식하는 식물보다 훨씬 더 많은 2차 대사산물을 내놓도록 진화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척박한 자연환경이 신약의 밑거름이 되는 약효를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에서 자생식물로 특허를 신청한 미스킴 라일락 역시 사실은 한국에서 가져간 것이다. 한국 토종인 참당귀의 경우 추출물의 약효가 중국 당귀보다 6배, 일본 당귀보다 4배가 많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자생식물의 약효와 함께 우리나라가 신약강국이 될 수 있는 강점은 또 있다. 바로 천년 전통의 한의학이다. 한방은 약초를 사람에게 직접 먹여 효과를 관찰한 ‘임상’의 결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중국과 일본이 문화혁명과 메이지유신을 겪으며 한방의 맥이 끊긴 것과 달리 한국의 한방이 명맥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일단 경쟁력이 있다.

우리나라는 동의보감 등 수많은 한의서에 올라와 있는 식물 등 생약처방이 무궁무진한데도 이를 제품화할 수 있는 길이 없어 엄청난 자원을 사장시켜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내의 경우 많은 생약의 사용경험과 한의학계에 내려오는 비방 또는 많은 기성 한약서가 있는데도 화학약품 위주의 의약품허가 제도 때문에 고귀한 자원이 무용지물이 됐던 것이다.

한방 접목하면 신약개발 승산 있어

한반도 자생식물에서 신약을 캐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가 자생식물 연구 프로젝트를 궤도에 올렸다. 학계는 이미 50여건의 자생식물 신약개발 연구의 막바지 단계에 있다. 바이오벤처들은 완성단계에 있는 식물신약을 찾아냈다.

동아제약ㆍ제일약품 등 제약사들도 연구의 방향을 잡았고, LG생명과학ㆍSK주식회사ㆍ제일제당을 중심으로 대기업들도 합세했다. 정부는 8,600여억원, 민간 1,300억원 등 총 1조원의 예산을 천연물신약연구에 투자해 2010년까지 적어도 5종의 천연물신약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식물에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증돼 왔다. 1803년 양귀비에서 아편의 환각성 진통물질인 모르핀이 발견되면서 식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그후 여러 식물들에서 유기화합물질이 분리됐다. 호미카에서 중추신경흥분제인 스트리크닌, 키나에서 말라리아 치료제인 퀸닌, 벨레돈나에서 내장의 통증을 억제하는 오시아민 등이 발견된 것이다.

상지대 응용식물과학과 박희준 교수는 “현재 동양의학에서 사용되는 약물들은 모두 자생식물들을 오랜 기간 임상적으로 적용해본 결과”라며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신약들도 거의 대부분 자생식물 같은 천연물을 모델로 개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1세기는 유전자원을 먼저 확보하는 국가가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일하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에서 인간에게 유용한 유전자를 효과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양식물에서도 신약 개발 가능

자생식물은 육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해양천연물을 이용한 연구개발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해양식물은 자원이 풍부함에도 아직까지 이들로부터 약리 물질 개발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 연구조차 없었다. 이에 해양생물로부터 새로운 기능성물질을 채취, 국제적인 물질특허를 신청하거나 건강보조식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다시마 등 해조류로부터 면역활성 및 천연항생물질 탐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물질을 찾아 인체에 적합한 물질로 변환, 상품화하는 데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신약 또는 기능성 의약품에 못지않게 천연물 의약품 품질관리 및 체계유지도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천연물 신약의 최종 제품화 단계에서 심사 및 허가를 총괄하는 식약청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천연물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 등의 관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즉 한약제제는 물론 생약을 이용한 신의약품 개발시 통상 일반적 의약품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건강보조식품의 경우 신약과 다른 관리체계를 갖고 있다. 유럽도 천연물 특성에 맞는 의약품 허가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자생식물 또는 천연물을 응용한 제제에 대해서는 신약과는 다른 관리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업계에서는 요구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자생식물을 통해 신약강국 비전을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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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