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354호 (2002년 09월 16일)

미국·세계경제는 ‘지금도 전시체제’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5

2001년 9월11일(현지시간) 세계는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붕괴되는 엄청난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9ㆍ11테러는 여러 분야에 걸쳐 지금까지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그 어느 분야보다 컸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엇보다 경제성과에 미친 영향이다. 가장 관심이 됐던 것은 이 테러가 미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에도 과연 독(毒)이 될 것인가 약(藥)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 우문은 9ㆍ11테러가 발생한 직후 세계적인 논쟁거리가 될 만큼 경제현안이었다.

과거 전쟁과 테러가 발생할 경우 경제에 독이 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약이 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80년대 후반 일본의 제조업경쟁력에 밀려 경제후진국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구출하고, 그후 10년이라는 장기호황을 가져다준 것은 걸프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물론 평가 기간을 어디까지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으나 9ㆍ11테러도 대체로 미국 경제에 약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9ㆍ11테러가 발생했던 지난해 3/4분기에 미국 경제 성장률은 -1.3%까지 떨어졌으나 지난해 4/4분기 0.2%, 올해 1/4분기에는 5.1%로 꾸준히 상승했다.

올 2/4분기 성장률이 1.1%로 다시 떨어지면서 미국 경제가 이중침체(Double Dip·더블딥)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는 있으나 전적으로 9ㆍ11테러의 영향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해 12월 중순 엔론사 사태를 계기로 확산된 미국 기업들의 분식회계 파동이 올 2/4분기 이후 미 증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나타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인식이다.

미국경제, 쌍둥이 적자로 ‘빨간불’

9ㆍ11테러가 경제성과에 약이 된 이면에는 그만큼 비용도 많이 치렀다. 대표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들의 재정사정이 크게 악화된 점이다. 각국의 금리도 너무 많이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도 9ㆍ11테러에 따른 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

올 회계연도에 미국의 재정적자는 약 1,65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미 의회예산국). 90년대 초에 이어 쌍둥이 적자(Twin Deficit)를 맞게 됐다. 테러 복구를 위한 재정지출이 많았던데다 경기부양 차원에서 세금감면책(Tax Cut)을 추진한 결과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도 재정사정이 테러 이전에 비해 악화됐다.

미 연방기금 금리도 이제는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연방기금 금리 1.75%는 한 나라의 적정금리 수준을 따지는 테일러 준칙(Tayler’s Rule)을 통해 볼 때 미국 경제 여건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일본을 포함한 여타 국가들도 금리가 낮다. 결국 증시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것도 미 테러에 따른 기회비용인 셈이다.

경제시스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최소한 미국 경제시스템을 지난 1년간 계속된 추가 테러 위협과 이에 대응과정에서 경제정책, 기업활동, 미 국민들의 일상생활, 주가, 미 달러화 가치 등에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한 마디로 테러 이후 지금까지 미국 경제는 ‘테러ㆍ전시경제체제’라고 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들의 경제체제도 이 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만큼 미국 경제의 위상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테러방지를 위해 암묵적으로 세계경제를 전시체제를 몰고 간 것도 이런 체제의 특성을 부추겼다.

백업시스템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줬던 것도 중요한 영향이다. 9ㆍ11테러 이후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은 국가 혹은 금융기관의 신용등급 평가시 백업시스템의 확보 여부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았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9ㆍ11테러를 계기로 경제시스템이 붕괴될 경우 우려되는 엄청난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백업시스템을 구축하기에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 결과 9ㆍ11테러가 발생한 지 1주년이 되는 현시점에서 최소한 국가기간망에 대해서는 백업시스템이 갖춰진 것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금융기관들도 백업시스템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민간기업 차원에서도 백업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이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는 테러와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경제시스템의 백업시스템을 갖춰 놓는 일은 계속해서 국가 혹은 민간과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실성 여부와 관계없이 국제기구의 역할은 더욱 중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간의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도 중요한 변화다. 어떻게 보면 냉전 종식 이후 국제관계는 각국의 경제적 이익이 중시되는 경제이기주의가 지속돼 왔다. 그 과정에서 각국간의 마찰이 증대되고 환경오염, 기상재해, 에이즈, 빈곤문제 등 세계적 현안에 대한 대처가 지연되면서 개도국과 비정부기구(NGO)를 중심으로 선진국에 대항하는 반세계화 물결이 거세졌다.

다행히 9ㆍ11사태를 계기로 테러와 세계경기 동반침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각국간의 협력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테러집단을 이 지구상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는 조세회피지역(Tax Haven Area) 등을 통한 돈세탁 자금이 테러집단에 유입되는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각국간의 협력이 불가피했다.

문제는 각국간의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기는 했으나 테러방지와 세계경제에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국의 일방주의와 일본, 유로랜드 회원국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갈수록 각국간 협력의 정도가 약화되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테러 이후‘큰 정부론’지지 얻어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정부의 역할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다시 말해 정부가 경제에 될 수 있는 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작은 정부론’(Small Government)에서 테러와 같은 국가비상사태를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큰 정부론’(Big Government)이 국민들로부터 힘을 얻었다.

자연스럽게 경제정책의 구심점도 바뀌었다. 이론적으로 작은 정부론에 부합되는 경제정책은 통화정책인 반면, 큰 정부론에 맞는 정책은 재정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9ㆍ11사태 이후 ‘재정정책의 동조화’라고 부를 만큼 세계 각국들이 경기부양책으로 재정지출과 조세감면을 일제히 추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미 테러에 따라 금리정책의 효과는 반감됐다. 통상적으로 금리정책의 효과(금리인하시 가정)는 ‘통화공급 확대→ 금리인하→ 민간소비 등 총수요 증대→ 국민소득 증가’의 경로를 거친다. 이른바 유명한 ‘케인스의 통화정책 전달경로’(Keynsian’s Transmission Mechanism)다.

이때 금리인하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금리인하에 따라 민간소비든 기업의 설비투자든 간에 경제주체들이 민감(Elastic)하게 반응해야 한다. 문제는 미 테러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기 때문에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소비나 투자가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 테러 이후 ‘금리인하 무용론’ 혹은 ‘금리인하 반감론’이 꾸준히 제기된 것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이런 전달경로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과정에서 각국의 금리가 경제여건에 비해 너무 낮게 떨어졌다는 것

이다. 물론 시장금리는 더욱 떨어졌다. 미 테러에 따라 투자자들이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경향(Resort to Risk)에서 채권과 같은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Flight to Quality)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 테러 이후 한동안 투자대상으로 채권이 선호되면서 ‘채권투자 증대→ 채권가격 상승→ 채권수익률 하락’을 통해 시장금리가 더욱 떨어졌다. 그 결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금융부채를 이용해 부동산, 금, 원유와 같은 실물투자를 하는 것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이른바 ‘부채-디플레 신드롬’(Debt-Deflation Syndrome)이 확산됐다.

종전과 달리 이번에는 경기침체기에 부동산가격이 전세계적으로 오른 것도 이 같은 저금리에 따른 실물선호 경향이 가장 큰 요인이다. 결국 부동산 경기가 활황을 보임에 따라 미 테러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기가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될 수 있는 힘이 됐다.

마지막으로 미 국민을 포함한 세계 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9ㆍ11테러에 따른 영향이 파고들었다. 테러 직후 정부의 경기부양대책과 보조를 맞춰 애국소비운동이 전개됐다. 한동안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국가 혹은 국기에 대한 애국심이 고조돼 테러 이후 오랫동안 미국의 각 가정에는 성조기가 꼽힌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고용행태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높은 연봉을 중시해 회사를 택하고 평가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취업의 최우선 덕목이 됐다. 친족이나 자국민들에 대한 연계도 강화된 것이 테러 이후 일상생활의 커다란 변화다.

결국 9ㆍ11테러는 불과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미국 경제와 세계경제는 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앞으로 이런 변화들이 어떻게 굳어져 21세기 세계경제질서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는 9ㆍ11테러 1주년을 맞는 현시점에서 한동안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돋보기 / 9·11 테러 & 초고층 건물 신축

“테러는 테러고…” 초고층 건물 신축 ‘꿈틀꿈틀’

미국 9ㆍ11 비행기 테러 이후 국내에서도 초고층 건축물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반인들은 초고층 건물이 테러집단의 타깃이 될 수 있는데다 교통에도 적잖은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보는 반면, 기업과 학계 인사들은 고층 건축에 찬성표를 던진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지난 98년 완공된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로 88층 규모로 높이가 무려 452m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삼성, 대우, 현대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세계에서 손꼽히는 높이의 건축물을 지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주민 반발 등에 밀려 무산되곤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삼성의 경우 페트로나스타워를 시공한 업체라는 것. 다시 말해 국내에 세계 최고 규모의 건축물이 없는 것은 기술력 때문이 아니라 주변 여건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는 방증이다.

일반적으로 120층 높이의 건물은 40층 건물을 3개 짓는 것에 비해 적어도 두 배 이상의 자금이 든다. 안정성을 높이는 데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는 까닭은 바로 ‘상징성’ 때문이다.

최근 업계 관계자들은 롯데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이 ‘세계 최고 높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건축물을 지을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앞에서 거론한 대로 롯데는 서울 잠실 제2 롯데월드를 지상 112층, 높이 524m로 만들겠다고 발표했지만 항공안전을 이유로 공군의 반대에 부딪친 상태다.

롯데 외에 초고층 건축에 애착을 보여 온 기업으로는 삼성을 꼽을 수 있다. 삼성은 한때 서울 도곡동에 102층짜리 제2사옥을 짓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았지만 교통난과 조망권을 이유로 주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학계에서도 초고층 빌딩에 대해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6월 발족한 ‘한국 초고층건축 포럼’의 부의장인 여영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는 “국내 초고층 업계의 화두는 오히려 초고층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우리나라 초고층 건축에 있어 학계와 업계의 화두는 ‘테러’가 아닌 ‘추진’인 셈이다.

배성환 기자 rakises@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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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