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일본 등 선진국 상품화한 뒤 마케팅 '한창'...국내 완구업체 개발수준 '미미'

인천에 살고 있는 이일범씨(30)는 수십마리의 ‘애완동물’을 키운다. 종류도 5㎝ 크기의 금붕어에서 30㎝가 넘는 강아지까지 다양하다. 여러 종류를 한꺼번에 키우고 있지만 따로 손이 가지 않을뿐더러 기르는 애완동물들 때문에 집안청소를 별도로 할 필요도 없다. 이름도 종류별로 제각각 특이하다. 아이로보, 디티, 뮤츠, 후치, 워킹푸치, 슈퍼푸치, 마이크로팻 등. 이씨가 키우는 애완동물은 바로 첨단로봇장난감이다.첨단완구는 일반적으로 음성인식. 인공지능, 바이오 등 하이테크 기술을 접목한 ‘똑똑한 장난감’을 말한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미 첨단완구시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장난감제조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토이’ 분야가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만 98% 성장했고, 시장규모도 1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어린이와 상호작용하는 장난감 인기99년 출시된 소니의 로봇강아지 ‘아이보’의 경우 70만~200만원대의 고가이지만 현재 일본에서만 한 달에 5만대가 팔리고 있다. 소니 아이보가 알린 로봇장난감의 광고효과를 노리고 일본 세가사가 출시한 소형 애완견 로봇 ‘후치’는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5,000만개 가량이 팔렸다.이렇게 장난감이 첨단화되면서 일부 전문가들은 미래장난감산업을 이끌 만한 기업으로 세계적 반도체회사인 인텔을 지목하고 나설 정도다. 실제 인텔은 99년 가상의 컴퓨터 게임에 실제 사용자의 모습이 투영되는 PC카메라 등 지속적으로 첨단완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로봇장난감 중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첨단강아지 ‘아이로보’. 이 제품은 미국 완구업체 타이거일렉트로닉스가 개발, 국내에서는 인츠토이가 라이선스를 체결해 지난해 말부터 판매하고 있다. 50만원대의 고가이지만 국내에서만 1만여대가 팔렸다.실제 강아지 크기로 걷거나 앉는 것은 물론 팔굽혀펴기, 물구나무서기 등 수백가지 동작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심심하면 혼자서 ‘낑낑’거리기도 하고 학습능력까지 있어 실제 애완견을 키우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낄 수가 있다.이런 고가의 로봇장난감 외에도 사람의 행동이나 말에 따라 즉각 반응하는 소형 로봇도 인기를 끌고 있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크기의 마이크로팻은 가격은 1만원대이지만 주인의 음성이나 자극에 따라 여러 가지 반응을 한다. 전원을 켜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스스로 20가지 행동을 보이고, 때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토이트론이 출시한 ‘테리’와 ‘포포’는 감성디지털완구로 불린다. 일반 소형 첨단장난감처럼 인공지능, 성장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겉모습은 일반 봉제인형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인츠토이가 로보티즈와 공동개발한 지능형 완구 ‘디디와 티티’는 인터넷과 연동되는 성장형 로봇이다. 인터넷에서 성장에 필요한 ‘먹이’와 ‘약’을 내려받아 오프라인에서 키우는 방식이다. 디디와 티티는 노래를 부르고 장애물을 피하며 1∼6살까지 자란다.IT 기술이 아닌 바이오나 물리학 등 자연과학 기술들이 접목된 장난감도 눈에 띈다.에코스피어사 선보여 화제가 된 장난감은 ‘밀폐된 어항’. 완전히 밀폐된 어항이지만 그 안에는 새우 3마리가 여유롭게 헤엄을 치고 다닌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이 작은 어항 속에는 붉은새우 3마리와 조약돌, 해조류, 조개껍데기, 바닷물이 들어 있다.어항 안에는 나름대로의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약간의 햇볕만 쪼여주면 생존조건은 충분하다. 이런 균형 잡힌 먹이사슬체계를 에코시스템이라 부른다. 이 시스템은 원래 미국 미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팀이 만든 것으로, 이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밀폐된 우주선에서 생물체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 연구했다고 한다.토이매니아몰에서 선보이고 있는 공기압축 비행기도 첨단완구라 할 수 있다. 이 비행기는 펌프를 통해 주입된 압축공기로 초등학교 운동장 한 바퀴 정도는 너끈히 돌 수 있는 비행을 자랑한다. 이런 ‘압축공기 원리’는 최근 영국의 한 자동차회사가 압축공기엔진을 만들면서 실제 자동차 엔진에 적용될 예정이다.이렇게 첨단 장난감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먼저 장난감은 첨단 과학기술의 시연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화상탐사에 쓰이는 ‘패스파인더 기술’은 과거 NASA에서 개발된 최첨단 기술. 탐사로봇을 멀리서 작동하고 자체에 달린 카메라로 기록한다.이 기술은 얼마 전 레고의 ‘마인드스톰’에 적용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국내 일부 대학의 기계공학 수업시간에 기자재로 쓰일 정도로 널리 퍼졌다. 과거 고도의 첨단기술이 장난감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셈이다.첨단장난감은 침체된 IT산업의 촉매제로도 작용한다. 일례로 음성인식 기술의 경우 첨단완구에 적용되면서 떠오르는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이스웨어와 센서리코리아, 팍스브이알 등 국내외 음성정보기술업체들은 최근 국내 완구개발업체들과 손잡고 첨단로봇완구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보이스웨어의 경우 영어학습용 음성인식 완구 ‘토미’를 개발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영어교육용 로봇 ‘지니컴로봇’을 개발했다. 이제는 첨단장난감이 기존 완구업체뿐만 아니라 IT벤처업계에서도 ‘돌파구’로 각광받고 있는 셈이다.하지만 국내 개발수준은 여전히 일천하다. IT업체들 역시 장난감시장의 잠재력에 눈뜨지 못하고 있는 실정. 국내 완구업체들 역시 첨단장난감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영세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창의적인 기획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은 학계에서도 드러난다. 한양대학교 기계공학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성중씨는 “첨단장난감들은 대부분 만들 수 있지만 이는 실제 자동차나 산업로봇을 만들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한 가지 희소식이라면 최근 산업자원부가 완구공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2005년까지 27억원을 완구업계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지원은 침체된 완구업체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IT업체들과 기존 장난감 업체들과 보다 더 강한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돋보기/ 레고코리아블록완구 버리고 디지털 제품 양산중2000년 3월. 미국 상장사들이 일제히 1999년 실적을 발표하던 당시 세계적인 완구회사 레고가 애널리스트들의 도마에 올랐다.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회사가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이에 애널리스트들은 “비디오게임, 컴퓨터 등으로 이미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며 “급변하는 디지털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날로그 장난감들은 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혹평을 퍼부었다. 하지만 레고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핵심사업인 플라스틱 빌딩 블록과 조립완구에 주력하기 위해 의류와 출판 부문은 과감히 포기하고 컴퓨터와 멀티미디어 게임 업체와 제휴를 맺었다. 최첨단 IT기술이 적용된 디지털 제품군을 강화하고, 70여년을 고수한 블록완구 이미지를 던져버린 캐릭터 장난감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노력으로 레고는 1억2,000만달러의 적자에서 이듬해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다.최근 레고가 선보이고 있는 제품들에서 ‘디지털 레고’의 의지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99년 선보인 ‘마인드스톰’은 레고가 MIT공대와 10년 동안 손잡고 개발한 첨단기술의 복합체. 사용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짜 제품에 다운로드하면 이 장난감은 프로그래밍한 대로 움직인다.NASA의 화성탐사에 쓰였는가 하면 국내 공대에서는 실습기자재로 이용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스파이보틱스’라는 첨단자동차장난감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무선리모콘으로 제품을 조정할 수 있고, 두 대 이상의 제품끼리는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컴퓨터와 연결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받아 여러 가지 게임을 사용 환경에 따라 즐길 수 있다.레고코리아의 노정훈 대리는 “스파이보틱스의 경우 단순히 조립에서 끝나지 않고 컴퓨터게임과 마찬가지로 실감나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첨단장난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