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술중독에 빠진 사람을 ‘알코홀릭’(Alcoholic)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무언가 한 가지에 광적인 사람들에게 홀릭(Holic)이란 단어를 뒤에 붙이는 경향이 있다.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초코홀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요즘 미국에 ‘홀릭’이 붙은 단어가 또 하나 생겨났다. 바로 카탈로가홀릭(Catalog-aholic). 백화점이나 유명소매업체에서 보내주는 카탈로그를 보고 상품을 구매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텍사스주 우드랜드에 사는 다이앤 파커씨(45)는 스스로 카탈로가홀릭으로 부른다. “집에서 쇼핑하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는 그녀는 “쇼핑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언제나 쇼핑할 수 있으며, 쇼핑하기 전에 상품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며 편리성을 장점으로 꼽는다.매장 종업원이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백화점을 찾지 않겠다고 결심한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의 메릴 사키스씨(36)도 “카탈로그 쇼핑은 불친절한 종업원을 상대하지 않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녀는 매장에는 거의 가지 않지만 카탈로그를 통해 정기적으로 구매한다.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카탈로그 구매는 매력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낙후된 주 중 하나인 네브래스카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베키 심슨씨(53)도 “카탈로그를 통해 상품을 사면 각종 최신 유행제품이나 특이하고 색다른 것들을 그때그때 살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이렇게 카탈로그를 통해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전체 미국인의 60%에 달한다. 카탈로그를 통한 매출이 지난 89년에는 2,72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 6,000만달러를 넘어섰고, 2006년에는 1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백화점들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놓칠 리 만무하다. 각종 새로운 기법개발이나 할인공세를 퍼부으면서 카탈로그를 통한 판매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11월 추수감사절, 12월 크리스마스, 1월 새해’로 이어지는 3개월간의 황금쇼핑시즌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카탈로그 판매에 나서고 있다. 3개월간의 연말연시 시즌은 미국 전체소매매출의 40%와 각종 선물의 70% 이상이 팔리는 시즌이다.8월부터 카탈로그 우송하며 마케팅 돌입백화점들은 지난여름부터 연말연시 시즌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JC페니는 이미 지난 8월 크리스마스용 카탈로그를 각 가정에 배달했고, L L 빈은 연말연시 시즌 카탈로그 1호를 9월 초에 발송했다. 봄베이와 닐란버논스의 카탈로그는 9월 말에 메일박스에 들어 있었으며, 고급 백화점인 니먼 마르크스도 이달 초 카탈로그 발송을 마쳤다.올해 백화점 카탈로그의 가장 큰 특징은 양적인 확대. 업체들이 어느 정도 적극적인지는 카탈로그의 양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오랫동안 카탈로그영업을 통해 재미를 보아온 JC페니는 사상 최대 분량인 532페이지짜리 카탈로그를 제작했다.여기에 소개된 상품은 무려 2,000개를 넘는다. 절반이 50달러 이하의 중저가이지만 2,500달러짜리 전동스쿠터도 포함돼 있다. JC페니의 매장 및 카탈로그 담당 CEO인 바네사 카스타그나는 “카탈로그 판매는 경기상황에 관계없이 꾸준히 늘어나는 부문”이라며 “우리는 그동안 이 부문에서 예상치 못한 장외홈런을 쳤다”고 전했다.니먼 마르크스는 명성에 맞게 고가품 일색이다. 160페이지의 카탈로그에는 앤디 워홀의 300만달러짜리 그림 컬렉션과 7,500달러짜리 초상화 등 고급 예술품 등도 포함돼 있다. 191페이지짜리 크리스마스판 카탈로그를 만든 L L 빈의 경우 39달러짜리 애완용 담요에서부터 260달러짜리 고급 장난감세트 등 다양한 상품을 수록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양적인 확대보다 질적인 변화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원가절감 노력들. 많은 기업들이 훨씬 효율적인 재고ㆍ주문ㆍ운송ㆍ반송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예를 들어 탈보트 같은 회사들은 카탈로그를 본 고객들이 인터넷상에서 모든 주문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주문을 더욱 빠르게 하는 것은 물론 원가를 크게 낮출 것이란 판단에서다.또 한 가지는 과감한 인센티브. 일정금액 이상을 구입하면 무료운송과 할인혜택을 주는 게 일반화되고 있다. 연말연시에 가장 잘나가는 선물 중 하나인 고급 초콜릿을 파는 고디바는 카탈로그에 나오는 상품을 600달러 이상 구입하면 5% 할인해주고 6,000달러 이상 사면 20% 깎아준다. 또 11월5일까지 구입할 경우 여기에 5% 더 할인해주는 전략을 쓰고 있다.일부 회사들은 카탈로그를 보고 메일이나 온라인으로 구매를 하는 대신 직접 매장에 와서 구입하는 고객들을 위해 새로운 매장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 L L 빈, 오마하스테이크 등이 이런 차원에서 소매영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시어스백화점의 새로운 브랜드 ‘랜드스엔드’는 올해 안에 전국 200개 매장에 선보일 예정이다.물론 올해 카탈로그 판매가 신장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많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소비자의 지출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얘기가 많아지면서 유가상승을 걱정해야 하는데다 주식시장이 계속 악화되고 있어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지적이다.시라큐스대학에서 소비자동향을 연구하는 아만다 니콜슨 교수는 “이라크와의 전쟁 가능성과 시장이 계속 침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경제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오는 연말연시에는 소비자들이 돈을 적게 쓸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우편요금이 평균 6% 인상돼 올해 카달로그 발송건수가 지난해와 비슷한 166억건에 그치는 등 발송이 늘어나지 못한 것도 불안요인이다.물론 카탈로그 판매업자들은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전망하고 있다. 카탈로그 트레이드그룹인 직접판매협회(DMA)의 에이미 브랭켄 회장은 “9ㆍ11테러가 있었던 지난해에도 정치ㆍ경제상황이 모두 좋지 않았지만 전체소매매출이 720억달러로 전년도보다 7.5%가 늘었다”면서 “올해도 최소한 7%는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카탈로그 판매가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다.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