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제품이 봇물을 이루는 일본시장에서 ‘메이드 인 재팬’을 만들어내는 일본 제조업체들은 숨이 턱까지 차 있다. 자신들의 것과 품질, 기능에서 거의 차이가 없는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언제, 어떤 형태로 저가격을 앞세워 안방에까지 융단폭격을 퍼부을지 몰라서다.‘중국이 독자적으로 만든 자동차를 수출하는 날이야말로 일본 제조업은 끝장’이라는 자동차메이커들의 탄식이 보여주듯 일본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하이테크와 고품질로 무장하는 중국산 저가 공산품에 기가 질려 있다. 혼다가 중국에서 생산, 지난해 8월부터 일본에 들여오기 시작한 염가 스쿠터는 자동차, 오토바이 시장에도 중국돌풍이 불어닥칠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고한 대표적 사건이었다.그러나 최근 경차메이커 ‘스즈키’가 탄생시킨 배기량 50㏄의 초미니 스쿠터는 일본 기업들이 중국발 염가돌풍에 맞서기 위해 얼마나 지독하게 머리를 짜내고 있는가를 보여준 본보기가 됐다.스즈키가 ‘초이노리’(사진)라는 모델명으로 내놓은 이 미니스쿠터는 가격, 성능, 경제성에서 경쟁제품들과 뚜렷한 차별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스쿠터 시장에 저가 바람을 몰고 온 혼다의 ‘투데이’가 9만8,000엔에 팔리고 있는 데 반해 초이노리는 5만9,800엔까지 값을 낮췄다.2월20일부터 시판 예정인 야마하의 대만산 스쿠터 ‘조그’(13만9,000엔)에 비하면 절반 값도 안된다. 가격 한계에 도전한 듯한 인상마저 줄 정도다. 중량은 39㎏으로 투데이의 71㎏보다 40% 이상 가볍다. 경제성에서도 초이노리는 두 경쟁제품을 압도한다.휘발유 1ℓ로 달릴 수 있는 거리에서 초이노리는 76㎞로 투데이와 조그를 20% 이상 앞선다.가격거품을 최대한 빼고, 경제성을 극대화한 까닭에 초이노리의 외관은 수수하면서도 너무 간단해 보여 ‘볼품없다’는 느낌마저 준다.일본언론은 그러나 일본 본바닥에서 만든 제품으로도 중국산 저가공세를 잠재울 수 있다는 각오가 초이노리 탄생의 원동력이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스쿠터를 오토바이의 한 부류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전차’에 엔진 등 필요한 기능을 부착한다는 생각으로 거꾸로 뒤집어본 것이 초염가 스쿠터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분석하고 있다.오토바이의 아래 단계 탈 것으로 생각을 고정시켜 놓고 본다면 오토바이 기능을 단순화하는 쪽으로 제품이 만들어졌겠지만 ‘자전차’에 여러 가지를 결합시킨다는 의식을 갖자 램프, 계기판, 시동방식 등 모든 것의 발상이 제로(0)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보다 가볍고, 싸게 만들기 위해 스즈키는 제작과정에서 재료비와 작업시간, 그리고 인건비를 최대한 압축했다. 예컨대 계기판의 경우 초이노리는 스피드계 하나밖에 달지 않았다. 연료계량기와 경고등마저 없앴다. 연료탱크는 용량이 3ℓ짜리지만 한 번 채우면 200㎞ 이상을 갈 수 있는데다 연료가 바닥나도 예비용 탱크로 간단히 갈아 끼울 수 있어 연료재고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도록 돼 있다.엔진 부분의 핵심부품인 실린더의 내면에는 도금액을 고속으로 흘려보내고 니켈, 인, 실리콘 카바이드 분산 도금을 입혔다. 고성능 차량에 이용됐던 방식의 도금보다 소요시간을 5분의 1로 줄여 생산 스피드를 높였다. 머플러는 촉매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소형화해 엔진 부분에서만 중량을 9.3㎏이나 줄였다. 로봇을 이용한 자동용접률을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 설계과정에서부터 철저한 자동화를 전제로 밑그림을 만들어냈다.가격을 최대 무기로 내세운 초이노리가 스쿠터 시장을 얼마나 신바람나게 질주할지는 미지수다. 회사 임원진 사이에서조차 ‘너무 원가절감에만 매달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선 판매점들로부터는 벌써 2~3개월분의 물량 발주가 잇따르고 있어 스즈키의 실험이 일단 합격점을 따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이 회사의 스즈키 오사무 회장은 “메이드 인 재팬도 저가전쟁에서 중국산과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미니 스쿠터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념을 바꿔놓겠다”고 말하고 있다. yangsd@hankyung.com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