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차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가 열린 지난 1월 말 스위스 다보스 콩그레스센터. 일본정부 대표단과 노부유키 이데이 소니 회장과 카를로스 곤 닛산 최고경영자가 참석한 올해 세계경제포럼(WEF) 기업 전략 특별분과회의장에서는 일본경제의 책임성을 두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간에 설전이 벌어졌다.기업인들은 일본정부를 ‘꽁꽁 언 냉장고’에 비유하며 “기업이 비대하고 관료적인 냉장고 정부에 깔려 가쁜 호흡을 내쉬고 있다”고 정부대표단에 독설을 퍼부었다. 양측의 공방전이 극에 달하자 세계경제포럼(WEF) 전문위원 김위찬 교수가 장내 분위기 정리에 나섰다.그는 “지난 8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디트로이트에서 일본 자동차를 불태우며 일본이 미국 산업을 죽인다는 시위가 발생할 정도로 일본기업이 잘나가던 그때는 정부 시스템이 지금보다 효과적이었냐”고 묻고 “정부에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기업도 자신의 경영전략을 한 번 검토해 볼 때”라고 말했다.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김교수에게 다가와 일본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젊은 기업인은 일본기업의 경영전략 부제를 “단일문화(Mono-Cultural) 전통에서 다양한 문화(Multi-Cultural)로 넘어가는 과도기 현상에 따른 부작용”이라며 장외토론을 계속했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일본기업의 성장원동력이었던 경쟁전략이 이제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시대환경에 맞는 새로운 기업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며칠 후 세계경제포럼의 ‘21세기 기업의 새로운 전략’ 세미나에서 김위찬 교수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이 회의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전략 분야 전문위원 자격으로 르네 마보안 교수와 함께 지난 150년간의 기업 경영전략 유형 연구를 발표하고 미래전략으로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최근 들어서는 가치혁신 전략이 공공 부분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경제인 출신인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취임 즉시 가치혁신을 뉴욕경찰청(NYPD)에 적용, 큰 효과를 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가을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릴 세계경영전략 연례회의에는 뉴욕경찰청의 가치혁신 경영이 우수사례로 발표될 예정이다.빡빡한 일정으로 잠시의 여유도 없는 가치혁신이론 공동창시자 김교수와 마보안 교수를 다보스 포럼 폐막 후 어렵게 만났다. 이들 교수는 이구동성으로 “한국은 일본을 답습해서는 안된다”며 “한국기업은 하루바삐 일본을 모델로 한 경쟁전략에서 벗어나 가치혁신 전략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기업이 가치혁신으로 전략사고를 전환할 경우 “이는 기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일본기업의 국제경영 전략 문제를 지적했는데, 근본적으로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김위찬 교수) 일본기업이 80년대 들어 세계적 리더기업군으로 진입한 것은 경쟁전략 덕분입니다. 경쟁전략은 서구기업 전략과 문화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일종의 따라잡기 전략(Catch-Up Game)입니다. 일본은 목표 모델을 설정하고 추진했으며 이를 달성했지요.현재 일본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경쟁전략이 더 이상 약효를 발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쟁전략은 어떤 목표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경쟁전략 덕분에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오른 일본은 이제 벤치마킹할 모델이 없어 전략방향을 잃고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기업도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거듭되는 성장을 하고 있는 한국기업도 이 같은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까요.(르네 마보안 교수)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그간 경쟁전략으로 빠른 성장을 해왔습니다. 목표달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세는 일본과 한국의 공통적 사회문화라고 봅니다. 그래서 경쟁전략은 일본과 한국에서 큰 효과를 거두었습니다.하지만 오늘날 한국기업의 기술력이나 해외시장 경쟁력을 볼 때 한국기업의 위치는 남을 따라 해야 하는 개도국 수준이 아닙니다. 머지않아 목표를 달성하면 벤치마킹할 할 모델이 없어 허둥지둥 당황할 수 있지요. 일본의 선례를 교훈으로 삼아 한국기업의 국제전략 방향도 경쟁전략에서 가치혁신으로 전환해야 합니다.일본은 더 이상 한국의 벤치마킹이 모델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앞으로 거대 중국시장과 세계시장에서 선진국들과 당당히 대결을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한국기업의 성장엔진이었던 경쟁전략에서 벗어나 가치혁신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최근 2~3년 전부터 세계적 톱 비즈니스스쿨에서는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을 전략과정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치혁신이론의 창시자로서 가치혁신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김교수) 가치혁신은 지식경제의 경영학(Management in the knowledge)입니다. 흔히 가치혁신을 기술혁신과 혼동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경쟁전략의 한계를 느낀 일본기업들이 최근 몇 년 전부터 신기술 연구개발(R&D)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경쟁전략을 대체할 새로운 전략이 없으니 기술로 도전하겠다는 생각이지만 불확실한 미래전략입니다.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던 IBM을 기사회생시킨 루이스 거스너 전 회장이 구조조정 첫 단계로 착수한 것은 바로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삭감이었습니다. 당시 IBM은 컴퓨터업계 선두주자 자리를 지키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신기술 개발 드라이브 전략에 너무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치혁신 같은 전략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지요.그렇다면 기술혁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인가요.(마보안 교수) 그런 뜻이 아니라 개발한 기술이 시장에서 팔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첨단기술 개발을 통한 시장우위 점령도 중요합니다만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첨단기술을 개발만 해놓고 시장과 접목을 시키지 못한다면 기업의 중요한 자산인 인력과 재정적 측면에서 커다란 낭비입니다.그리고 큰 R&D 예산 투입 없이 기존 기술에 새로운 컨셉을 응용해 시장이 놀랄 만한 신상품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존의 A와 B라는 기술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접목해 세상이 놀랄 만한 C라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가치혁신 전략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80년대 세계시장을 휩쓴 소니의 ‘워크맨’입니다. ‘워크맨’은 사실 첨단기술 혁신 제품이 아닙니다.그냥 들고 다니기 편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음질이 좋은 하이파이 붐박스를 결합한 것이지요. 오늘날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소니의 경우 이미 그때 가치혁신 전략을 실시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일본기업들이 전통적 경쟁전략의 대안책을 발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소니 역시 전략 오류 몇 가지가 눈에 띕니다.일본의 소니는 어떤 기업보다 먼저 시대에 앞선 미래전략을 도입했습니다. 그런 소니가 지금 겪고 있는 경영전략의 문제는 무엇입니까.(김교수) 소니의 문제는 가치전략이 소수의 선구자적 경영인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실시됐을 뿐 미래전략으로 사내 전체에 도입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경쟁전략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소니 역시 미래전략으로 신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특정분야에만 치우쳐 사업에 따라 기술 차가 큽니다. 그래서 같은 그룹이 생산한 상품간에도 인터페이스가 잘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소니의 오류는 가치혁신 전략을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실시하지 못한 것이라고 봅니다. 경쟁전략에서 가치혁신 전략으로의 전환이란 시장이 이끄는 전략에서 시장을 주도하는 전략으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마보안 교수) 시장의 소비 트렌드만 따를 게 아니라 ‘워크맨’처럼 새로운 상품으로 시장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경쟁사를 이기냐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고객에게 새롭고 뛰어난 고성능 가치상품을 제공할 것인가로 전략적 사고 전환을 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가치혁신이 절대 필요하며 가치혁신 경영으로 시장을 리드할 수 있습니다. 가치혁신 전략은 한국기업의 세계무대 진출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도 아주 효과적일 것이라고 봅니다. 소니는 ‘워크맨’ 성공을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었습니다.‘워크맨’의 성공은 그후 소니가 출시하는 모든 제품에 신뢰감을 심어줬고 다른 일본기업 제품에 대한 전체 이미지 개선으로 발전했습니다. 소니는 일본이 높아진 국가 이미지로 미국 및 유럽 선진국들과 동등한 기술로 경쟁하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한국기업이 가치혁신이란 미래전략을 통해 80년대 소니와 같은 시장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이는 그 기업은 물론 한국산업 전체, 나아가 국가 브랜드 이미지까지 단시간에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김위찬 교수 & 르네 마보안 교수 누구인가쌍둥이 국제경영 전문가김위찬 교수(사진 오른쪽)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이론 공동창시자이자 유럽 최고 비즈니스스쿨로 손꼽히는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전략과 국제경영학’ 교수이다. 김교수는 지난 94년 인시아드(INSEAD)로 오기 전에는 미국의 미시간대학 비즈니스스쿨 교수로 재직했었다.최근 기업 미래전략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치혁신(Value Innovation)이론은 미국의 하버드 비즈니스스쿨과 워튼스쿨, 프랑스의 유럽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 등 세계적 유명 비즈니스스쿨의 전략 필수과목으로 채택됐다.지난 1월 김교수와 마보안 교수의 가치혁신 논문은 경영전문 학술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designtimesp=23605>(HBRㆍ2003년 1월호)가 발표한 ‘주옥같은 베스트 파이버 명작’에 뽑혔다. 이번 베스트 파이버 명작은 HBR 발행 이후 최고의 논문 5편을 선정한 것으로 경영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모티베이션 이론의 창시자 허츠버거, 피그밀리언, 리빙스톤 등 대가의 이론이 포함됐다.HBR는 1997년 김교수와 마보안 교수가 공동발표한 가치혁신이론 ‘공정한 절차’(일명 지식경영)를 80년대 이후 최고의 경영전략 논문으로 선정했다. 두 교수는 5년 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의 국제경영전략 분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 designtimesp=23610> 등 세계 유력 신문 고정기고가이기도 한 두 교수는 18년째 팀워크로 일하는 절친한 동료이다. 학계에서는 경영 전문 학술지 논문을 비롯해 연구 프로젝트도 함께하는 이들을 ‘쌍둥이 국제경영전문가’라고 부른다.김교수와 마보안 교수의 미디어 괴벽도 유명하다. 세계 유력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쓴 논문 기고 외에는 잘 응하지 않는다. 그나마 어쩌다 인터뷰를 수락해도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 고정기고지인 <파이낸셜 타임스 designtimesp=23613>를 비롯한 여러 신문들도 미디어 괴벽을 아는지라 칼럼니스트의 사진을 캐리커처로 대신하거나 오래된 흑백 증명사진을 쓴다.경영전문지들은 아예 사진 없이 기사만 내보낸다.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김교수는 “<한경BUSINESS designtimesp=23616>도 유력 경제전문지인데 포장(사진)보다 품질(기사)을 중요시하지 않으냐”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한국언론과 단독 대담을 하는 가치혁신 공동창시자의 얼굴을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김교수 비서 스타 티파니씨를 통해 두 사람의 사진을 단독으로 입수했다.노무현 대통령 경제정책 제대로 읽기동북아 중심국가 계획과 외국기업 유치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발전의 장기비전으로 제시한 ‘동북아 중심국’의 단초는 “왜 우리나라에는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가 없는가”라는 문제의식이었다. 2001년 말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자 당시 진념 경제부총리는 흔쾌히 받아들였다.동북아 플랜은 이후 고비마다 첨삭(添削)당하며 변신했다. 외국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나 판매거점을 유치하기 위한 세제지원은 국제규약에서 금지한 유해조세경쟁(Harmful Tax Competition)에 해당된다는 재경부 세제실의 유권해석이 나왔다. (2002년 3월)재경부는 물류ㆍ관광 첨단산업의 외국기업들을 끌어들이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그러자 이번에는 노동부와 교육부가 반대했다. 노동법 예외적용과 의료ㆍ교육 시장 개방이 문제가 됐다. 결국 파견근로자 채용과 외국인학교 설립자격 등이 원안보다 엄격해졌다. (2002년 8월)외국기업 국내 유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으로 노동자에게 분명 유리한데도 노동권 침해라는 부정적 측면만 부각된 데는 정부의 잘못도 컸다.국회에서는 경제특구법이 지역특혜법으로 전락될 뻔했다. 재경위 소속 의원들은 경제특구법안 심의과정에서 국제공항이나 국제항만을 갖춘 인천, 부산, 광양 이외에 자기 지역구에도 경제특구를 만들 수 있도록 법안을 수정했다.이에 대해 언론이 “누더기법, 지역이기주의법으로 전락했다”고 호되게 비판하자 국회는 당초안으로 되돌려 놓았지만 ‘경제특구’라는 특혜성 이름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지 ‘경제자유구역법’으로 바꿔버렸다. (2002년 11월)지정학으로 보면 한반도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과 ‘세계의 생산기지’로 불리는 중국 사이에 있어 물류중심지의 기본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리적인 이점은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엄태훈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캐나다)교수팀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북아 물류센터 소재지로 가장 유망한 곳은 상하이(중국)였고, 다음으로 홍콩, 서울ㆍ인천 순이었다. 서울ㆍ인천은 시장규모와 성장가능성, 노사평화 등에서 상하이에 뒤졌다.이창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동북아연구개발센터 소장은 “문제는 한국이 다수의 동북아 물류센터를 유치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중국과 일본 어느 나라와도 관세동맹은커녕 자유무역협정(FTA)조차 체결하지 못한 상태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둔 물류센터 유치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때마침 세계적인 특송물류기업인 미국 DHL그룹이 우베 돌켄 사장 등을 지난 2월 한국으로 보내 인천에 새로운 물류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원대한 구상을 실현시키려면 이런 기업들에 보조금을 줘서라도 반드시 유치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자동차 엔진을 가동시키려면 보조장치(배터리)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