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379호 (2003년 03월 10일)

검찰의 전쟁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4

신문기자는 좋은 직업이다. 경제기자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좋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언제나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들만 만나고 다닌다는 면에서 다른 어떤 직업도 이를 능가할 것이 없다. 직업의 세계를 평가하는 기준은 수도 없이 많지만 약점만을 따지고 든다면 사실 ‘좋은 직업’이라고 할 만한 것도 흔치는 않다. 의사는 피고름 흘리는 병자들과 생활을 같이해야 하고 검ㆍ판사들은 온갖 범죄인들과 얼굴을 맞대면서 일생을 살게 된다.

오진과 오판, 오심이 언제나 마음을 어지럽히고 끝내는 자신의 능력보다 더욱 크나큰 책임을 져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책임이 큰 만큼 권한도 큰 것이어서 타인의 신체와 생명이 모두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니 절벽으로 난 길을 걷는 것이며 언제나 번뇌 속에 자신을 밀어넣지 않고서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정말이지 엉뚱하게도 조사실에서 깡패가 죽게 되고 젊은 검사가 거꾸로 쇠고랑을 차게 되는, 말로 형언키 어려운 억울한 상황을 맞기도 한다. 살아서 이미 저승문을 지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직업을 꾸려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지만 구치소며 가막소를 들락거려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사실 저승사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요즘 검찰이 다시 바빠졌다. 한동안 일거리가 없는가 싶더니 돌연 최태원 SK 회장을 구속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현대 건도 처리불능이며, 대북송금 문제는 처음부터 소관 밖이라던 얼마전의 모습을 떠올리면 놀랄 만큼 적극적인 자세다. SK에 이어 한화그룹 임원들도 분명 죄가 있으니 잡아 가둬야 하고 다른 그룹들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서슬이 퍼런 검찰이요, 사천왕들의 부활이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재벌개혁에 발을 맞추는 것이라고도 한다. “죄가 있으면 잡아넣어야지”라는 찬성의 목소리와 “정권 초기에는 으레 그런 것”이라는 식의 냉소가 교차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마도 이번 사건은 ‘검찰의 나홀로 전쟁’이 아닌가 싶다.

정치사건은 특검에 다 빼앗기게 생겼고 경제사건은 공정위와 금감위가 준사법권이나마 훔쳐가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검찰로서는 말 그대로 밥그릇을 다 빼앗기게 생겨먹었다. 가만있다가는 사기꾼과 창녀와 포주와 깡패 같은 잡범들만 상대하게 생겼으니 검찰로서는 위신이 땅에 떨어질 만도 했다.

부당내부거래(SK 건)는 공정위 소관이고 분식회계(한화 건)는 금감위 소관이지만 이들 행정조직이 검찰을 마치 하수인 부리듯 하는 것을 어떻게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공정위와 금감위가 먼저 조사하고 자기들이 다 알아서 판단한 다음 검찰에는 기소하고 유죄를 다투는 뒤치다꺼리만 떠넘기는 것도 공익의 수호자요, 대변자인 검찰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니 부당내부거래를 규정한 공정거래법 따위는 너희(공정위)들이 알아서 할 것이고 우리는 다만 형사상 배임으로 걸면 된다는 것이 검찰의 선언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서울청 형사9부의 날렵한 검사들은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

검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조직’이 지금의 검찰이다. 문제는 검찰이 칼을 휘두르고 공정위와 금감위가 뒤질세라 경쟁적으로 기업들을 조사하고 겁주자고 나설 경우 죽어나는 것은 기업가들이요, 경제라는 점이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인지, 하인(Public servant)들 싸움에 주인의 등이 터지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죄를 짓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한다면 너무도 간단하다. 그러나 30평짜리 단독주택조차 법을 모두 지키고는 지을 수 없다는 나라에서의 기업활동이다. 더구나 SK나 한화로서는 할말이 너무도 많은 사안들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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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