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379호 (2003년 03월 10일)

주식시장의 ‘보이는 손’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4

“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 때 다짐한 말이다. 시장과 제도를 세계 기준에 맞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개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한편으로는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이처럼 ‘공정성과 투명성’이 한국경제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개인투자자를 대표하는 시민단체, 기관투자가 등 주식시장의 ‘보이는 손’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투명성은 이미 성장성과 안정성 못지않게 중요한 투자지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침묵해왔던 투신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도 기업의 투명성을 감시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에 발벗고 나섰다.

게다가 최근 증시에서는 일부 대기업들이 참여연대의 끈질긴 노력으로 드러난 투명하지 않은 경영행태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대주주와 관련된 미심쩍은 내부거래나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를 받으면 바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주가하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 참여연대의 고발로 최태원 (주)SK 회장의 부당내부거래가 불거지면서 관련회사의 주가는 단기간에 타격을 받았다. (주)SK 주가는 검찰조사가 시작되면서 이전까지 실적호전 기대감에 공격적으로 사들이던 외국인들이 매도세로 돌아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런 상황은 비단 SK그룹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당내부거래 등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경영으로 참여연대 등으로부터 의혹이 거론되고 있는 기업들의 주가도 진위여부를 떠나 벌써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직접 수사대상으로 지목한 한화, LGCI가 지배주주 일가에게 LG석유화학 주식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LG, 아남전자 인수시 금융기관의 자산을 편법 이용한 의혹이 있는 동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에 따른 증여세 부과 논란이 있는 삼성 등의 그룹관련주 주가는 진행과정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사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있기 전에도 주식시장에서는 기업의 투명성 문제가 한국 주가 저평가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가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등 증권업계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국내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답했다.

저평가의 주된 요인으로 국내 자본의 단기성(32%)과 기업지배구조 개선미흡(29%) 등을 비슷한 비중으로 꼽았다. 저평가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개선사항으로는 장기수요기반 확충(42%), 기업투명성 강화(29%), 국내투자자 신뢰회복(11%) 등이 제시됐다. 응답자의 83%가 이러한 저평가 요인이 없어지면 주가가 1000 이상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 투명해야 주주가치 향상

이런 비슷한 지적과 전망을 노무현 대통령도 대선기간 중 언급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7일 TV 연설에서 그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우리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인정받는다면 주가는 지금보다 2∼3배 더 뛸 수 있다”면서 “종합주가지수 1500∼2000 시대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기업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특히 회계와 공시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하며, 불성실 공시와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엄격히 감시하고 처벌도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노대통령이 기업투명성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기업투명성 개선 관련 정책들이 조기에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새정부의 경제정책 밑그림에 따르면 법안이 계류 중인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는 연내 국회통과와 도입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규제의 큰 축인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개선은 일단 현행 제도의 틀을 유지하면서 실태를 파악한 후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또 대기업집단 지배시스템 개선의 일환으로 대주주 지분 공개를 강화하는 방안도 조속히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일련의 정책과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고강도 재벌개혁에 따라 해당기업들이 투자를 유보하거나 줄여, 경제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또한 박재성 전경련 기업경영팀 과장은 기업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국회에서도 집단소송제에 대해 여러 차례 부작용에 대한 우려들이 지적됐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한국지사장도 “환자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과도하게 치료하다 환자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개혁속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기업투명성 관련 의지가 주식시장에는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동원증권 김세중 책임연구원은 “집단소송제 도입, 대주주의 투명성 확보, 주총에서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강화 등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주주가치가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송학 교보증권 투자전략팀장 역시 “노동, 대북 등 다른 정책과 어떻게 맞물려갈지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주식시장의 건전성을 강화시킨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외국인투자가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원기 메릴리치 전무는 “외국인들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시장의 투명성이 점차 개선되고 있고, 앞으로 더 투명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단기적인 진통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오히려 이번 기회에 좀더 확실하게 투명성이 제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승훈 UBS워버그증권 상무도 “만일 새정부의 증시 및 기업투명성 강화정책이 후퇴한다면 외국인들은 한국시장을 외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경영투명성은 기업의 자금조달비용 증가와 주가하락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자본시장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확인할 수 있었다. ‘10년 장기호황’을 누려온 미국경제가 분식회계로 흔들렸고,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버블붕괴와 함께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면서 시작됐다.

우리의 외환위기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투명하지 못한 경영이 원인이었다. 투명하지 못한 경영은 해당기업을 쓰러뜨리고 국가경제까지 흔들어 놓는다. 투명경영이 뿌리내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개인투자자를 대표한 시민단체와 기관투자가 등 주식시장의 ‘보이는 손’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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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