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379호 (2003년 03월 10일)

‘성추행후 살인적인 고리 강요’ 폭로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4

소비자금융(대금업) 피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일본의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2002년 9월과 12월, 모두 3,000여명의 대금업자를 무더기로 형사고발해 일본언론의 큰 화제가 됐다. 일본언론이 우쓰노미야 변호사의 형사고발에 비상한 관심을 쏟은 것은 크게 봐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전국적으로 3,000여명에 이르는 막대한 숫자의 고발 대상이었다. 숫자도 숫자거니와 모두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챙기는 대금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또 하나는 대금업자들의 수법이었다.

언론은 우쓰노미야 변호사가 고발한 이들을 ‘야미’(闇을 일본식으로 부른 용어: 어둠 속에 숨어서 장사한다는 뜻으로 불법, 탈법의 뜻을 담고 있음)금융업자로 부르면서 지금까지 실상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악질적 장사수법에 경악했다. 이와 함께 야미금융 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독버섯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며 경찰과 국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한편 취재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50만엔까지는 그 자리에서 빌려준다는 선전을 믿고 찾아갔어요.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의 설명도 친절했고요. 그런데….”

우쓰노미야 변호사의 고발장에 나타난 한 젊은 여성(26)의 피해담은 야미금융의 ‘막가파식’ 장사수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발장에 따르면 이 여성은 야미금융업체가 밀집한 도쿄의 간다역 앞 한 업소를 찾아갔다.

야미금융업체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 이 여성은 이미 대형대금업체에서 돈을 빌려 쓰고 있었으나 연체로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올라 있던 상태였다. 사무실 직원들의 태도는 친절하고 이상한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차용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혹시 각성제 같은 것을 복용하지나 않느냐며 노골적으로 겁을 주더니 강제로 팔을 잡고 웃옷을 벗겨 버렸다. 막 건네준 돈 1만엔권 10장을 양손에 쥐게 한 후 사진을 찍었다. 직원들이 가르쳐 준 대출이자는 단 10일에 3만엔. 법률(출자법)로 정한 상한선 연 29.2%를 까마득히 웃도는 살인적 고리였다.

겁에 질려 사무실 문을 황급히 나선 여성의 등 뒤로 “돈을 제때 갚지 않으면 그 즉시 빚독촉에 들어갈 테니 그리 알라”는 엄포가 떨어졌다. (갚지 않으면) 벗고 찍은 사진을 성인 잡지에 뿌려 버리겠다는 협박도 뒤따랐다.

악랄하고도 비인간적인 장사수법이 고발장을 통해 드러났지만 일본 사회와 경찰이 ‘야미금융’ 때문에 앓고 있는 고민은 영업방식 하나 때문만이 아니다. 수법이 갈수록 교활해지고 지능화되는 것뿐만 아니라 업자들의 수 자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피해 가능성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어서다.

‘야미금융’ 문제를 연구하는 법조계 인사들은 야미금융업체의 수가 일본 전체로 볼 때 1만2,000개를 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만 영업을 하거나 광고선전 활동을 하는 업체수가 6,000여개를 헤아리고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실제 숫자는 거의 두 배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이들은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사무실을 수시로 옮기거나 아예 소재지를 밝히지도 않고 영업을 하는 ‘야미’금융업체가 수두룩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야미금융업체’의 대다수는 주택가와 사무실을 가리지 않고 전단지를 무더기로 뿌리면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은행 계좌에 멋대로 돈을 보낸 후 강제로 원리금을 받아내는 억지 영업까지 등장했다.

변호사들은 특히 휴대전화로 메일이나 안내전화를 보내는 ‘090(일본은 휴대전화의 앞 식별번호가 090으로 시작)금융’이 무차별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이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일본경찰 ‘야미금융’ 피해자 80만명 추산

‘야미금융업체’의 지역별 분포에서는 도쿄 간다역 일대가 2001년 말 현재 391개 업체가 몰려 있는 것으로 추산되면서 일본 최대의 온상지로 꼽히고 있다. 간다는 ‘야미금융업체’수가 지난 99년만 해도 약 200개에 불과했으나 샐러리맨 유동인구가 많아 고객잡기에 편하다는 지역적 특성이 돋보이며 황금텃밭으로 부상한 상태다.

‘야미금융업체’들은 신주쿠, 이케부크로 등 도심 번화가뿐만 아니라 청소년 밀집 지역인 시부야 일대까지도 빠른 속도로 파고들고 있어 피해 연령층이 더 내려갈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경찰과 소비자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야미금융’ 피해자수가 줄잡아 8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1만2,000여개의 이들 업체와 거래한 사람이 업체당 약 2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을 근거로 한 수치다. 한 사람이 평균 3개 업체를 이용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1만2,000개사×200명÷3개사=약 80만명이 된다는 계산이다.

경찰과 소비자금융업계 관계자들은 피해액수도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고객들이 빌린 돈은 평균 18만엔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이 피해자에게 물리는 이율이 보통 10일에 3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들은 이자만으로도 1년에 최소 180만엔을 뜯겼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짐작이다.

전체피해자로 따진다면 무려 1조4,400억엔 규모의 돈이 ‘야미금융업체’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며. 이중 필요경비(원금 및 제경비) 20%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80%가 이들 업체의 알짜소득이 됐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이 적자수렁에서 허덕이는 것과 달리 ‘야미금융업체’들은 세금 한 푼도 내지 않는 1조엔대 이상의 수익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야미금융업체’들이 기승을 부리게 된 원인을 경제상황 변화와 단속 법규의 허점에서 찾고 있다. 감독법규인 출자법은 소비자금융의 금리 상한선을 지난 2000년 연간 40.004%에서 29.2%로 깎아내렸다. 지나친 고금리에 대한 사회적 반발과 고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70년대 말 109.5%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40%대의 이율은 현저히 낮아진 것이 분명하지만 소비자금융의 주고객이던 중소상공인들로부터 도저히 못견디겠다는 원성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리 상한선의 조정은 자금조달력과 영업규모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영세업체들의 도태를 가져 왔다. 수익성이 악화되자 대형업체들은 대출심사를 대폭 강화하며 고객선별에 박차를 가했다. 신용도가 낮거나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고객명단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대형업체로부터 외면당한 고객들은 비싼 이자를 내고서라도 돈을 빌려 쓰겠다며 또 다른 소비자금융 창구를 두드렸다. 자금조달 노하우와 심사기법, 고객정보 관리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하위 소형업체들은 높은 위험을 부담하는 대신 정상 영업을 포기했다. 그리고 음지로 숨어든 후 탈ㆍ불법의 매력에 갈수록 깊숙이 빠져 들어갔다.

‘야미금융’이 지하경제의 온상으로 확대되자 일본경찰은 칼을 본격적으로 빼들었다. 경시청에 2002년 9월 악질금융사범단속본부를 설치하는 한편 올해는 이를 특별수사본부로 격상시키고 전담인원도 증원하는 등 민생을 위협하는 사범의 뿌리를 뽑아버리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야미금융업체’의 상당수 배후가 폭력단과 닿아 있는 것으로 보고 폭력단 수사를 전담해 온 형사들을 특수부로 배치시켜 놓고 있다.

하지만 일본언론과 금융전문가들은 크게 기대를 걸지 않는 인상이다. 무엇보다 장기 디플레이션이 서민 생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경제여건이 호전되지 않는 한 ‘야미금융업체’를 향한 발걸음은 끊어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처벌이 경미하다는 것도 이들 업체의 확산을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야미금융업체’들은 지금까지 유죄판결을 받아도 실형선고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미금융업체’들을 솎아내려 해도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이들 업체를 찾는 한, 그리고 처벌규정이 강화되지 않는 한 ‘야미금융’은 두고두고 일본사회와 서민들을 괴롭히는 고질병이 되고 말 것이라는 진단이다. yangs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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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