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광화문에서 이렇게 산다스티브 유 노무라증권 조사부 부장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교육도 미국에서 받았고 MBA를 마친 후에는 리먼브러더스증권의 뉴욕, 홍콩 등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한국 노무라증권의 텔레콤담당 애널리스트. 서울에 온 지는 1년쯤 됐다.증권사 리서치 부서의 특성상 그는 아침 7시 반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아침을 거르고, 또 하루 이틀은 빌딩 바로 옆의 카페형 베이커리 ‘오봉팽’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나 베이글을 사먹는다.모닝미팅으로 하루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오전이 지나고 돌아오는 점심시간.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을 이용해 명동에 있는 ‘캘리포니아 휘트니스’로 운동하러 간다. 점심은 돌아오는 길에 김밥을 사와서 사무실에서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퇴근은 8시께. 미혼인 그는 저녁 역시 점심과 비슷하게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는데, 종로 삼성증권빌딩 꼭대기의 ‘탑 클라우드’나 패밀리레스토랑인 ‘토니로마스’ 등에 가끔 들른다.‘뉴욕에는 있고, 여기에는 없어서 아쉬운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뉴욕식 델리샌드위치’를 꼽았다. 요즘 도심에 샌드위치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긴 했지만, ‘제맛’의 델리샌드위치는 거의 없다고 했다.서울라이트, 광화문에서 이렇게 산다종로1가에 있는 외국계 M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김혜경 과장(가명ㆍ31)은 자신을 ‘에스프레소 커피 중독자’라고 불렀다. 김과장은 아침마다 출근길에 회사 건너편에 있는 ‘커피빈’에 꼭 들러 ‘카푸치노’ 커피를 사들고 회사에 들어간다.점심 먹고 나서도 같은 커피를 한 잔씩 마신다. “한 1년쯤 됐어요. 처음에는 다 같은 커피지 싶었는데 한두 번 마시다 보니 이 맛이 아니면 안되겠더라고요.” 점심은 대중없이 먹는다. 근처의 밥집에서 찌개를 먹을 때도 있고, 패스트푸드점도 자주 이용한다. 요즘은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일도 잦다.사회생활 2년차 됐을 때 1년간 캐나다로 영어연수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외국에서 산 경험이 없는 토종 한국인, 서울라이트(Seoulite·서울에 사는 사람을 표현하는 영어단어)이다. 이화여대 재학시절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아 꾸준히 공부했고, 몇 군데의 광고회사를 거친 끝에 외국계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김과장은 이런 얘기도 했다.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상사가 샌드위치를 사다 달라고 가끔 부탁한 적이 있는데, 상사는 꼭 특정호텔의 1만원이 넘는 샌드위치만 고집했다. 그런 그를 보고 처음에는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몇 번 먹어 보니 확실히 맛이 다르긴 하더라”면서 “값이 너무 비싸서 자주는 어렵지만 지금은 가끔 사다 먹는다”고 말했다.업종 특성상 야근이 잦고 퇴근이 늦지만, 주말만은 철저히 사생활을 지키려는 편이다.누가 도심 직장인들의 생활을 바꾸나미국의 유명 베이커리 카페체인인 ‘오봉팽’을 들여와 최근 점포를 낸 제이슨 리 사장은 1호점으로 종각역 부근을 택했다.그는 ‘신문물’ 수용이 빠르기로 유명한 강남을 놔두고 종로에 문을 연 이유에 대해 “꼭 대형빌딩의 1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외국인과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직장인, 서구문화 수용에 거부감이 없고 구매력 있는 젊은층을 타깃 고객으로 설정했다”면서 “이들이 몰려 있는 곳이 바로 광화문과 종로였다”고 말했다. 이곳은 개점 이래 최근의 불황과는 무관한 듯 연일 성업 중이다.광화문 종로권의 거리풍경과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는 것은 ‘건물 등 부동산 소유주가 바뀌어 → 리모델링 등을 통해 빌딩의 면모가 달라지며 → 외국계 금융사 등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임차인들이 건물에 입주하고 → 그들의 입맛에 맞는 서구식 음식점이나 커피점, 피트니스센터 등이 들어서며 → 근처 직장인의 식문화 등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진다’ 등의 단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거꾸로 취향이 바뀌면서 서구식 점포들이 들어선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비슷한 문제이기도 하다.이 일대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개조’하는 선두주자는 물론 근방을 ‘점령’하다시피 한 외국계 커피전문점들이다. 그중에서도 최전선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스타벅스는 커피를 판다기보다 문화와 브랜드를 파는 기업, 미국식 대중문화의 전도사다.2001년 국내에 진출한 스타벅스는 서울 요지의 대형빌딩 1층에 점포를 내는 전략으로 국내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1층에 이런 커피점을 들이면 임대수익뿐만 아니라 건물 이미지나 빌딩이 접해 있는 거리 모습도 확 달라지게 된다.뒤이어 국내에 들어온 미국의 커피체인점 ‘커피빈’ 역시 비슷한 점포입지 전략을 구사했다. 한편 이들의 뒤에는 빌딩을 소유한 외국자본과 외국계 자산관리회사들이 있다. (72쪽 기사 참조)오봉팽 제이슨리 사장은 “대형빌딩의 1층에 개점하기 위해 여러 곳을 물색했으나 그 빌딩 소유자가 국내 기업일 경우에는 생각이 달라서 설득이 쉽지 않았다”면서 “외국자본이 빌딩을 소유한 곳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하지만 최근에는 국내 자본들도 사고를 전환하고 있다. 최근 조흥은행 명동점은 리모델링을 하면서 넓은 점포를 활용하기 위해 외국계 커피전문점을 들일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INTERVIEW / 요리에 인생 건 광화문 엘리트 3인방유학파ㆍ전문직 출신 “재미ㆍ활력이 가득”음식은 패션과 더불어 트렌드의 변화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지표. 요즘 광화문에서 인기를 끄는 음식점들 역시 이 일대 문화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게 만든다. 특히 남부러울 것 없는 전문직 출신 최고 엘리트들이 ‘요리’에 투신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뉴욕식 아케이드로 이름 높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한식에 기반을 둔 이색 퓨전요리로 유명한 ‘미세스마이’의 주인은 13년 경력의 외환딜러이자 미국 미시간대 MBA인 홍명식 사장(45)이다.체이스맨하탄은행, 스탠다드차터드은행에서 잘나가는 ‘0.5초의 승부사’였던 홍사장은 지난 2000년 모든 이력을 뿌리치고 서울 압구정동에 ‘포 마이’라는 퓨전레스토랑을 열었다. 억대 연봉에 전도양양했던 그가 일개 ‘음식점 주인’으로 변신하자 주변에서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홍사장은 “‘맛 딜러’가 훨씬 행복하다”며 밀어붙였다.3년 남짓 지난 지금, 홍사장은 ‘전문외식경영자’라 불려도 손색없을 만한 성공을 일구었다. 3월29일에는 서울 강남에 회전스시집 ‘사까나야’를 새로 오픈하고 본격적인 사업확장에 돌입한다.3월 말 ‘미세스마이’ 옆에 ‘My X-Wife’s secret recipe’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윤혜려 박사(39)는 자신의 전공을 실전에서 살리는 케이스다. 이화여대 식품영약학과 졸업 후 유학길에 올라 미국 텍사스에서 외식경영학 석ㆍ박사를 마친 후 귀국, 현재는 이화여대와 호서대, 경희호텔관광대학 등에서 강의 중이다.더불어 ‘나무르’라는 외식 컨설팅회사의 고문으로, 한국식품영양재단 비상임연구원으로도 활동해 직함만 5개가 넘는다. “전문직 종사자와 외국인에게 집에서 만든 것처럼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그는 레스토랑 운영에 관한 한 최고의 선진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손발을 맞출 종업원의 면면이 화려한 것도 그 때문. 유지영 지배인은 경희대 호텔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샌드위치전문점 ‘위치스 테이블’로 선풍을 일으켰던 ‘광화문 스타’이고, 홀서버도 호텔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인재로 뽑았다. 정지환 주방장 역시 이탈리아에서 경력을 쌓은 실력파.종로 알파빌딩 1층, 옛 광주은행 자리에 문을 연 ‘오봉팽’은 베이커리 카페다. 제이슨 리 사장(31)은 ‘잘나가는 컨설턴트가 빵집 주인 됐다’고 해 유명인사가 다 됐다. 하지만 예사 빵집 주인이라기보다 대형 비즈니스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미국의 대형 베이글체인점인 ‘오봉팽’의 국내 사업권을 독점적으로 따와 종로 알파빌딩 1층에 개점했고, 차례로 홍대점과 강남점도 열 계획이다.제이슨 리는 11살 때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갔다. 컬럼비아대에서 도시사회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원을 마친 화려한 학력을 갖고 있다. 98년부터 앤더슨컨설팅(현 액센추어) 뉴욕에서 근무했고, 서울에는 2000년에 왔다.내 비즈니스를 하는 것, 그동안 이론으로 배워왔던 것을 실제 경험해 보는 것, 또 컨설팅 결과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국내 기업문화에 대한 염증 등을 이유로 컨설턴트 경력을 접고 사업가로 변신했다.“왜 베이글을 택했는가”에 대해 그는 “자신이 뉴욕에서 살 때 즐겼던 것 중에서 ‘서울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샌드위치 7,500~9,500원, 샐러드 4,500~7,500원 등으로 간단한 식사와 음료치고는 값이 꽤 비싸다.그는 “손님들도 처음에는 비싸다고 말하다가 맛을 본 후에는 생각이 달라지더라”면서 “값이 좀 나가더라도 제대로 된 맛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맞춘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박수진 기자ㆍ김수연 기자 sjpark@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