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분석·소비자 심리 파악의 귀재

영국의 이지그룹(Easy Group)이 가격파괴 상품으로 유럽의 기존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다. 지난 95년 초저가 항공사 이지젯(EasyJet)으로 출발한 이지그룹은 성공의 여세를 몰아 사업영역을 렌터카(Easay Car)와 인터넷카페(Easy Internetcafe), 호텔(Easydom), 영화관(Easycinema)으로 확대하고 있다.올해 35세의 그리스계 영국인 스텔리오스 하지 이오아누가 설립한 이지그룹의 성공비결은 절대적 가격경쟁 우위다. 최근 세계경기에 먹구름이 끼며 많은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경영에 도입하고 있지만 이지그룹의 컨셉과는 큰 차이가 있다.회사의 손실을 줄이거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비용절감이 아니라 생산비용 최소화를 통한 초저가 신상품 개발이다. 즉 기존 시장에서 제살 깎아 먹기 식의 유혈싸움을 피하며 가격파괴 신상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생산원가는 최소화하되 품질의 우수성은 가격에 비해 최대화해야 한다”는 이지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은 이를 잘 설명한다.로 코스트(Low cost)의 제왕, 하지 이오아누 회장은 창업에 앞서 시장 상황분석과 타깃 소비자층 심리를 매우 잘 파악했다. 저가상품을 찾는 고객이 가장 원하는 것은 경제적 이익이다.가격만 절감할 수 있다면 꼭 필요하지 않은 부대서비스에는 별 관심이 없다. 비행기를 탈 경우 절약을 할 수 있다면 기내식은 중요하지 않다. 탑승 전에 요기를 하면 된다. 사실 배가 고프지 않거나 기내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이를 거절하는 승객들도 있다. 저가 항공상품은 이지젯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대형여행사들이 운영하는 비정기 전세기(Charter)가 그것. 그러나 휴가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세기는 왕복여행일정이 맞지 않으면 탈 수가 없다. 게다가 한 번 날짜를 정해 출발하면 돌아오는 날짜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 같은 저가상품 시장 상황분석에 소비자의 절약심리를 적용한 것이 이지젯의 초저가 항공상품이다.초저가 헬스클럽 추진호텔도 마찬가지다. 2성급 이하 호텔에 투숙하는 이유는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여행 중 식사도 레스토랑에서 하기보다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다.따라서 이들이 이용하는 호텔은 룸서비스나 투숙객용 식당 같은 부대시설이 필요 없다. 타깃 대상 소비자가 꼭 필요로 하지 않는 시설 및 서비스 투자를 없애고 대신 초저가라는 상품을 제공하는 전략이다.그러나 기존 시장에 나와 있는 저가상품은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대부분의 저가 호텔은 꼭 필요하지 않는 서비스를 유지하면서도 투자를 못해 외관상 불결해 보이거나 시설이 낙후됐다. 또한 치안이 불안하거나 지리적으로 접근이 힘든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이지그룹은 구경제 상품에 신경제 생산방식를 도입했다. 원가절감을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만 투입하고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한다. 즉 상품예약과 판매를 전부 인터넷으로 함으로써 생산원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또 고객이 필요로 하지 않는 부대시설 운영이나 추가 서비스 제공이 없으니 불필요한 투자비용도 없앨 수 있다. 이는 가격 대비 품질 면에서 경쟁할 수 없는 새로운 상품 시장이 되는 것이다.구경제와 신경제의 융합이라는 발상전환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이지그룹은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까지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최근에는 본사가 있는 영국에 초저가 영화관 이지시네마를 개관했다.하지 이오아누 회장은 “이지그룹이 손댈 수 없는 분야는 장례업뿐”이라며 “장례식 시장은 아무리 가격을 낮춰도 소비수요에 변동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소비자가 있는 한 언제라도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그는 현재 초저가 헬스클럽과 크루즈 투어 신규사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지젯(Easy Jet): 도심에서 공항까지 가는 택시요금의 절반 수준의 초저가 전략이 이지젯의 경쟁력이다. 한 예로 파리~제네바간 항공요금은 30유로(약 4만원)이다.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구입하면 예약 코드를 받는다.여행 당일 공항 카운트에서 본인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예약번호를 주면 제시하면 체크인이 끝난다. 따라서 종이티켓 발행비용이 들지 않는다. 탑승수속시간을 줄이기 위해 지정좌석이 없고 먼저 줄을 서 탑승하면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무료 신문 제공이나 기내식이 없다. 원하면 돈을 내고 스낵이나 음료를 사먹을 수 있다. 비싼 공항사용료를 피해 대형항공사가 취항하지 않는 교외 소형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착륙 러시아워에 걸려 출발이 지연될 우려가 없다.탑승수속시간이 짧아 시간이 아까운 비즈니스맨들도 늘고 있다. 8년 전 이지그룹 출범 당시, 대형항공사들은 이지젯이 단기간에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생각했다. 비행기 여행객들의 구매력이 일반 여행객들에 비해 높아 저가 항공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하지만 이들의 분석은 틀렸다. 기차요금보다 싼 가격은 새로운 소비자층을 만들어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객도 이지젯 고객으로 흡수됐다. 자동차 기름값과 고속도로통행료를 계산할 경우 더욱 경제적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피곤함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이지젯과는 고객층이 달라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고 믿었던 메이저 항공사들이 차례로 넉아웃을 당하고 있다.영국의 브리티시에어웨이즈는 이지젯이 취항하는 일부 중소도시 취항을 중단했다. 프랑스의 에어프랑스는 이지젯이 프랑스 남부도시 니스와 스위스 제네바 왕복 50유로짜리 상품을 출시하자 자사의 이 노선을 없앴다.■이지카(Easy Car): 이지카는 거의 100% 셀프서비스 렌터카 상품이다. 고객은 인터넷으로 렌터카를 예약하고 차고에서 직접 렌터카를 출고한다. 기름도 직접 넣어야 한다. 차를 돌려줄 때는 청소를 해야 한다.깨끗한 상태로 반납하지 않으면 예약시 입력한 신용카드를 통해 15%를 청소비로 뽑아간다. 그러나 렌트비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싸다. 일반업체 평균가격이 하루 50~70유로인 데 비해 이지카는 10유로다. 단 저가 렌터카인 만큼 고급 대형차는 다루지 않고 차량모델도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