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 소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한 김모씨(26)는 요즘 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30여군데에 이력서를 내는 등 취업에 매달려왔지만 아직 일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특히 곤혹스러운 점은 대부분 면접에 가보지도 못하고 서류전형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점이다. 학점도 상위권에 속하고 대학재학 중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현실은 너무 냉엄했다.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주변에 동료(?)들이 많다는 점. 같이 대학을 졸업한 과동기 가운데 과반수가 아직 백수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김모씨는 “가끔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자신감이 없어져 앞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지방대 출신의 최모씨(27)는 올해로 2년째 백수생활을 하고 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최씨는 그동안 줄잡아 100여곳에 원서를 냈지만 아직 직업이 없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새우잠을 자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기업체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번번이 미역국을 마셨다.처음에는 토익시험 성적이 나빠 그러는줄 알고 영어학원을 다니며 910점대까지 끌어올렸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3군데에 원서를 서류전형에서 미끄러졌다. 최씨는 “친구들 가운데는 취업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갔거나 장사를 시작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일단은 서울에서 올해 말까지 버텨보고 그래도 안되면 고향으로 내려가 다른 일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지난 수년간 지속돼온 취업문제가 나아지기는커녕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60~70대1을 오르내리는 취업률 때문에 고민했던 취업준비생들이 올해 들어 한층 더 험난한 관문을 뚫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경쟁률이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고 있고, 기업들 역시 잔뜩 고개를 숙인 채 채용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다가는 취업대란 정도가 아니라 취업공황 상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최근 채용을 실시했던 빙그레의 사례는 최근의 취업 시장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영업관리직 2명, 환경수질기사 1명, 수의사 1명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가자 무려 1,600명이 지원서를 냈다.당초 회사측은 모집인원이 너무 적은데다 직종 역시 제한적이라 큰 기대를 걸지 않았으나 담당부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지원서가 쇄도했다. 특히 전공을 제한하지 않은 영업관리직에는 무려 1,340여명이 몰려들었다. 700대1에 가까운 경쟁률을 보인 셈이다.취업정보 전문업체인 잡링크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올 들어 4월까지 인력을 뽑은 주요 53개 기업을 대상으로 경쟁률을 파악한 결과 평균 경쟁률이 83대1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지난해 상반기에 잡링크가 같은 조사를 했을 때 나왔던 경쟁률 75대1이나 하반기의 67대1에 비해 더욱 치솟은 것이다. 특히 상당수 기업의 경쟁률이 200~300대1까지 올라 채용담당자들까지 한숨을 짓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잡링크측은 “올해 상반기 취업경쟁률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취업경쟁률이 이처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일단 기업들이 채용규모를 크게 줄인 결과로 풀이된다. 상당수 기업들이 아예 채용을 포기하거나 하더라도 극소수 인원만 뽑기 때문이다.일례로 빙그레의 경우 지난해는 30명을 공채했으나 올해는 꼭 필요한 인원만 4명 채용했다. 최근 몇 년간 취업이 어려워지며 취업재수생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 한다는 분석이다.전문가들은 취업 재수생수가 지난해 이미 30만명을 훌쩍 넘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대학 졸업 후 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식으로 일하는 사람까지 포함시킬 경우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최근의 취업 시장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질적 경쟁의 심화다. 우수한 지원자가 몰리며 기업들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가구업체 리바트의 사례를 보면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이 업체가 지난해 공채를 했을 때 서류전형 합격자의 토익 평균점수는 750점대였다. 하지만 올해는 무려 850점대로 100점 가량 급상승했다.이랜드, 대우인터내셔널, 해찬들, CJ시스템즈 등은 해외 MBA 출신 등 석사학위 이상 소비자가 대거 지원하는 바람에 서류전형에서 이들의 처리방법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환경수질기사 1명을 채용하겠다고 공고한 빙그레에는 1급 자격증 소지자만 250여명이나 몰려 인선에 애를 먹었다.문제는 상반기의 취업난이 하반기에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또 한 차례 취업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여전히 채용에 나설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데다 북한 핵문제 등 경제적으로 민감한 현안들 역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취업시장의 평균경쟁률 100대1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미 83대1을 나타낸 만큼 상황이 조금만 더 나빠져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다만 극적 반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외변수들이 원만하게 해결되고 기업들 역시 하반기에 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 다소나마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한현숙 잡링크 사장은 “국내외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기업들이 신규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분석추경예산 편성과 금리인하정부는 5월 중 금리를 내리고 추경예산안을 편성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본격 나설 예정이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5월13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0.25%포인트 인하될 전망이다. 추경예산은 4조~6조원 정도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월7일 인천상공회의소 주최 포럼에서 “추경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 정부 재정이 오히려 경기를 둔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이 6.4%이고 물가상승률이 3%이기 때문에 명목 경제성장률은 9.4%에 달하는데,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3%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사실을 언급한 대목이다. 예산을 명목 경제성장률 정도는 늘려야 경기수축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정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금은 명목 소득에 부과되기 때문에 실질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비율과 비슷하게 증가한다. 지난해 국세 징수액은 103조9,000억원으로 2001년에 걷힌 95조8,000억원보다 8.5% 늘어났다.시장의 돈이 세금으로 빨려 들어간 만큼 정부가 돈을 풀 여지는 커진다.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면 경기회복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재정지출 확대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세금 징수를 늘려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올해 세수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2조~3조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추경예산 편성으로 세금 추가 징수의 부정적인 효과를 없앨 수 있다.둘째, 정부가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많은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이 경우 시중자금을 흡수하는 부작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민간 부문이 쓸 수 있는 자금을 빼앗아가고 금리도 오르는 구축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셋째, 한국은행으로부터 정부가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시중자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민간 부문을 구축하는 효과는 없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한국은행이 그 액수만큼 통화안정증권을 매입해 돈을 푼다면 이와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재정지출 확대에 금리인하까지 추가한다면 경기부양 효과는 극대화된다. 시중에 돈이 풀린 만큼 민간 부문의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는 효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물가상승의 부작용이 매우 크다.금리를 내리면 퇴직자 등 금리생활자의 소비가 위축될 수도 있다. 금리 하락으로 예금자의 실질 이자소득이 이미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금리가 더욱 내려가면 이자 의존형 생활자들은 생계에 곤란을 겪는다.소득이 있는 사람들도 금리가 내린다고 해서 반드시 소비를 늘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미래의 저금리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씀씀이를 더욱 줄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이 경우 경기는 오히려 악화된다. 경제에는 분명 공짜점심은 없다.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