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수익률 자랑… 유럽 금융계 스타CEO

지난해 BNP파리바은행은 프랑스 주식시장 상장기업들 중 정유업체인 토털에 이어 가장 높은 33억유로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토털의 실적은 지난 2~3년간 지속되고 있는 고유가 현상을 볼 때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나 은행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전세계적으로 금융계가 이익감소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BNP파리바는 무려 33억유로에 달하는 13%의 이익증가를 발표했다. 미셀 페베로 BNP파리바은행장은 “이번 수익총액이 10년 전 BNP은행 민영화 당시 자산과 맞먹는다”고 밝혔다.미셀 페베로는 지난 93년 BNP파리바은행의 전신이던 BNP의 민영화를 앞두고 은행장에 임명됐다. 페베로 행장은 민영화 직후 공기업의 전형적인 복지부동의 기업분위기 쇄신에 최우선 순위를 뒀다. 직원들의 사고방식 변화 작업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90년대 중반 유럽은행계는 인수합병(M&A)을 통한 몸집 불리기 바람이 불고 있었으나 미셀 페베로 행장은 바깥세상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듯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이런 그를 두고 금융계는 재무부 고위공무원 출신이라 편협한 사고방식에 모험심도 없고 소심하다고 빈정댔다. 금융계 애널리스트들과 언론도 무표정하고 웃음이 적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미셀 페베로 행장은 유럽 기업인들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그가 초청연사로 참가하는 경제세미나에는 BNP파리바의 성공전략을 듣고 싶어 하는 비즈니스맨들로 항상 초만원이다.페베로 행장이 부실채권 정리 및 내부 건실화에서 고성장 전략으로 방향을 완전히 돌린 것은 99년 파리바은행을 인수하면서다. 99년 어느 봄날 <르피가로신문 designtimesp=23875>을 읽던 그는 평소 침착하고 냉정한 성격과 정반대로 불같이 화를 냈다.소시에테제너럴과 파리바의 합병소식을 신문기사를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투자은행 파리바와는 6개월 전부터 합병안을 의논하고 있었고 소시에테제너럴과도 전략적 제휴안이 오가던 참이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치 믿고 있던 친구에게 약혼자를 빼앗긴 듯한 배신감을 느낀 그는 즉시 두 은행에 대해 적대적 인수를 발표했다.BNP은행의 소시에테제너럴과 파리바 동시 인수 선포는 99년 무더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며 싸움은 몇 개월간 계속됐다. BNP와 소시에테제너럴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대대적인 신문ㆍ잡지 광고를 통해 상대방 주주들에게 지분양도를 종용했다.또한 이들 세 은행 지분 소유 기업들까지 백기사로 참전하는 등 프랑스에서 유례없던 인수합병 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자 마침내 증권감독위가 개입, BNP가 파리바를 인수하는 것으로 최종결정을 내렸다. 소시에테제너럴은 BNP로 넘어가는 위기를 모면했지만 파리바 인수를 놓쳤다.그해 가을 증권위의 결정이 BNP에 유리하게 났지만 BNP와 파리바의 합병을 바라보는 금융계의 시각은 매우 회의적이었다. 워낙 기업문화가 다른 두 은행이라 직원들간의 알력만 심화되고 시너지 효과는 없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심지어 BNP의 파리바 인수를 “저축으로 결혼자금을 마련한 하녀(BNP)가 재정이 어려운 귀족(파리바)과 결혼하는 꼴”이라고 비웃었다. 투자은행인 파리바가 국제적 지명도를 자랑하던 것과 달리 BNP의 활동영역은 국내와 북아프리카 일부 국가 등 옛 프랑스식민지권에 불과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합병 4년 만에 BNP파리바는 유럽단일통화권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우량은행으로 부상했다. 투자신탁 분야에서는 세계 10대 은행에 포함됐다.지난 95년부터 시작된 은행들의 몸집 불리기가 가치창출도 못하고 실패한 것을 볼 때 BNP파리바의 승승장구는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다. BNP파리바는 지난 3년간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정보시스템 통합으로 총 7억6,000만유로의 운영경비를 절감했다.당초 금융계가 우려했던 직원들의 문화적 충돌도 없었다. 페베로 행장은 직원들이 향후 거취 등에 따른 불안감 해소를 위해 합병법인 출범 6일 만에 이사회를 조직했다. 또 사내 문화적 충돌 방지책으로 매일 오전 7시30분에 출근해 간부들과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직원들간의 알력 발생 방지를 당부했다.4개월간 계속된 그의 조찬에는 600여명의 직원들이 초대받았다. 게다가 합병으로 인한 인력감축 규모도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총 8만5,000명의 종업원 가운데 1,200명만이 은행을 떠났다. 그것도 대부분이 행정업무 관련 사무직 종사자들이었다.투자신탁분야 세계 10대은행 포함페베로 행장은 사내 분위기가 안정되자 시장공격에 나섰다. 수익성 있는 사업은 인수합병으로 확대하고 손실이 많은 분야는 과감히 매각 처분했다. 이 같은 전략은 합병 이듬해부터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핵심사업의 영업실적은 매년 눈에 띄게 증가했다.지난해 프랑스증시가 폭락하며 BNP파리바 주가가 23%나 빠졌지만 13%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영업실적 덕분이다. 1,500만명의 고객으로 유럽 최대 소비금융업체인 자회사 세텔렘(Cetelem)이 2002년도에 벌어들인 돈은 5억4,000만유로에 달한다.특히 미국 소매금융 시장의 경우, 2001년 유나이티드캘리포니아뱅크 인수로 고객이 200만명으로 늘어나 미국 수익률이 프랑스 내 수익의 60%에 이를 정도다. BNP파리바의 실적은 독일 대형은행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가 4만명의 대규모 인력감축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BNP파리바는 한국에 지점 외에 신한금융지주와 제휴를 통해 방카슈랑스와 소비금융업에 진출해 있다. 미셀 페베로 행장은 지한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3월 프랑스 재경산업부가 주최한 대한투자설명회에서 합작파트너인 신한지주와의 제휴를 성공적으로 평가하며 참석자들에게 한국투자를 적극 권유했다.또 이날 행사에서 프랑스 한 정치인이 “프랑스 중소기업 해외진출을 위해 은행이 나설 수 없냐”고 묻자 “한국은 대외개방 정도나 관계법령 및 제도 등이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다.프랑스 정책이 한국의 절반 수준으로만 개선돼도 중소기업 형편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날 그를 지켜본 참석자들은 재무부 고위공무원 출신이란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재경산업부가 주관한 행사에서 그것도 상하원 정치인들 앞에서 정부의 기업정책을 비판한 것이다.최근 프랑스 정부는 차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로 예정된 장클로드 트리세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법정 문제로 임명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페베로 행장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그는 통화정책을 다루는 중앙은행 업무보다 기업경영이 적성에 맞다며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프랑스의 명문 엔지니어스쿨 폴리테크니크와 국립고등행정학교(ENA) 출신인 페베로 행장은 음악과 문학에도 조예가 깊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수준급이며 가끔 시간이 날 때 공상과학소설 전문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