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열 우리은행 영업팀 차장(43)은 지난해 8월부터 한동안 쉬었던 서예를 다시 시작했다. 서예는 안차장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취미. 사회 초년병 시절까지도 개인교습을 받아온 그의 실력은 국전에도 몇 차례 출품했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업무량이 늘어나는 만큼 취미를 즐길 시간적 여유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그런 그가 다시 붓을 들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7월 금융권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주5일 근무제’ 덕분. 한 작품을 써내려 가는데 6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붓글씨는 그에게 생각만큼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5일 근무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라는 안차장은 일주일에 이틀을 쉴 수 있는 여건이 되자 오랜 숙원이었던 서예에 재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새로 시작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그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또 하나의 도전분야는 바로 마라톤. 아직은 한강둔치에서 두 아들과 함께 가볍게 뛰는 수준이지만 조만간 정식으로 마라톤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주5일 근무를 시작한 첫 한 달은 막연히 쉬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토요일을 유용하게 보내지 않으면 주말이 무척 지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난해 그는 신경성 위염으로 건강상의 위협을 느꼈다. 그는 요즘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달리기로 하루를 연다.월요일 오전에 동료들과 나누는 인사에서도 그는 큰 변화를 느낀다.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주2일 휴무는 직장인에게 큰 변화물론 금요일까지만 일하다 보니 야근이 늘어나기는 했다. 6일 동안 마쳐야 했던 업무를 5일 안에 끝내려니 퇴근시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또 금요일까지 마치지 못한 일을 위해 자발적으로 토요일에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그래도 안차장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평일은 퇴근을 일찍 해도 대개 직장동료들과 술자리를 함께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야근으로 늦게 퇴근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퇴근시간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주말 여가생활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급여가 이전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역시 “술값이 여가비로 이전된 것”으로 이해하는 안차장에게는 문제가 안된다. 어차피 생활비는 비슷하게 든다는 해석이다.그런 그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직장인’이 주5일 근무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면 개선돼야 할 부분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기업의 복리후생이 뒷받침돼야 샐러리맨들의 업무효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주5일 근무제 초기에는 레저나 여행 등에 관심이 쏠리지만 장기적으로는 취미 등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직장인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각계 전문가들이 내놓는 전망.따라서 현재 각 기업들은 사내동호회를 지원하는 식의 후원 정도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사내강좌’ 등 자기계발을 돕는 지원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그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도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각 구성원의 기호를 한 번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여가활용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이 함께 유원지라도 찾게 되면 대개 아이들 기호에 맞추기 마련”이라며 “그러다 보니 정작 쉬어야 하는 직장인은 자기 시간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따라서 “어린이와 여성, 남성이 각각 선호하는 시설을 모두 갖춘 유원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그는 어린시절 함께 서예를 배웠던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친구들은 은행원인 안차장에게 “돈 만지는 손으로 어떻게 서도(書道)를 실현할 수 있겠냐”고 농을 건네기도 한다. “요즘은 수명이 길어져서 정년퇴직 후 생활도 설계를 미리 해야 하잖아요. 저는 걱정 없습니다. 자기계발이 다 이래서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돋보기 / 재계 현황삼성·LG·한화 등 토요휴무제 전격 도입국내 기업들의 주5일 근무는 엄밀히 말하면 ‘토요휴무제’다. 재계와 노동계의 의견대립으로 주5일(주40시간) 근무의 입법화가 지연되면서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연월차를 활용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현재 주5일 근무제 시행안은 현재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오는 7월 1,000명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미뤄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휴무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대기업들은 점차 늘고 있다. 따라서 이미 주5일 근무시대에 들어선 것만은 분명한 대세로 보인다.<한경BUSINESS designtimesp=23913>가 선정한 ‘2003 한국 100대 기업’의 상당수도 토요휴무제, 또는 격주 토요휴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LG, 한화,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을 비롯해 국민은행, 신한금융지주회사 등의 금융회사 등이 토요휴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현대모비스, 효성 등 은 격주로 토요휴무를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