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업체와 식품업체의 공동 기술개발. 두 기업의 제품성격이 달라 기술제휴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세계 제1위 화장품그룹 로레알과 다국적식품업체 네슬레는 공동 기술연구로 ‘먹는 화장품’ 이네오브(Inneove)를 개발했다. 그동안 먹는 화장품이 시장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실제 화장품이라기보다 피부미용보조식품이었다.로레알과 네슬레가 공동출시한 이네오브는 주름살 제거 및 피부노화 방지 영양크림이다. 이는 얼굴에 바르지 않고 먹는 화장품이다.“먹는 화장품이다 보니 체내흡수가 빨라 피부반응 효과가 일반 화장품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게 브리지트 리베르만 이네오브연구소 소장의 설명이다.두 회사는 먹는 화장품 출시를 위해 4년 전 공동출자로 이네오브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에는 두 회사의 기술연구진이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 화장품업계 선두주자의 노하우에 식품회사의 영양섭취 기술을 합쳐 혁신적인 신상품을 개발하자는 것이 이네오브연구소 조인트 벤처 설립의 목적이었다.몇 해 전만 해도 기업들이 사내 신상품전략 기밀누출을 우려해 R&D센터를 마치 군사용 벙커처럼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다. 날이 갈수록 한정된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기업들은 혁신적인 상품개발을 위해 전략사령실마저 공유하고 있다.과거에도 기업의 상호보완적 측면을 제휴하는 코브랜딩(co-branding)이라는 제휴가 존재했지만 그 개념을 벗어났다. 이제는 분야가 다른 두 업체의 전략과 노하우를 장기적 차원으로 혁신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어느 한쪽에서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상품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진지하게 연구하고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즉시 공동출시에 착수한다. 새로운 상품으로 좁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주고받는 것이다.유럽의 대표적 가전제품업체 필립스와 커피회사 메종드카페의 전략적 제휴도 혁신상품 개발전략에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지난해 필립스와 메종드카페는 기존 원두커피기계와는 완전히 다른 커피메이커 센세오(Senseo)를 개발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센세오는 기존 시장의 일반 커피메이커에 커피엑기스 엑스프레소메이커 기능을 첨부시켜 강한 커피향과 맛을 선호하는 유럽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커피메이커 전문업체 필립스는 하드웨어(커피머신)를 개발했고 커피회사 카페드메종은 이 기계에 맞는 특별상품을 생산하고 있다.현재 필립스의 센세오 커피머신은 커피메이커 시장점유율은 14%로 출시 1년도 안돼 베스트셀러 넘버원 상품으로 부상했다. 필립스와 메종드카페는 ‘센세오 커피메이커에 센세오 커피만 사용’이라는 전략으로 시장확대는 물론 부가가치 높은 고급상품시장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올렸다.기업들의 혁신상품 개발전략은 ‘먹는 화장품’ 이네오브나 커피메이커 센세오 같은 순수기술분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제품생산 테크놀로지와 마케팅 및 유통을 제휴하는 경우도 있다.미국의 식용 인공향기 전문화학업체인 듀퐁 뉴트리션&헬스와 식품업체 제너럴밀스(General Mills)는 일반 두유가 몸에는 좋으나 독특한 향으로 마시기 어렵다는 것에서 착안, 비린 콩냄새를 없애고 과일향을 주입한 두유 ‘8th Continent’로 대성공을 거뒀다.듀퐁 N&H는 콩에 당분과 인공향료를 첨가한 유제품을 개발했고 소비자들의 식성과 취향을 잘 아는 제너럴밀스는 마케팅과 유통을 책임졌다. 두 회사는 2년 전 신상품 컨셉을 결정하고 50대50으로 총 4,000만달러를 투자해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듀퐁 N&H와 제너럴밀스는 평소 신제품 개발에 18~24개월이 걸리는 시간을 불과 8개월로 줄이고 신제품 ‘8th continent’를 출시했다. 에릭 프라이왈드 듀퐁 N&H 사장은 “최근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며 신제품 개발 시간단축은 품질만큼 중요하다”며 “기업간의 전략적 제휴는 시간절약은 물론 예산절감 효과도 있다”고 설명한다.미국의 종합건강제품업체 존슨&존슨과 유제품 및 먹는 샘물 전문업체 다논의 신제품 공동개발도 성공한 케이스다. 프랑스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던 미국계 다국적 기업 존슨&존슨은 알프스산 먹는 샘물 에비앙으로 유명한 다논을 찾아와 에비앙 브랜드를 부착한 피부 영양크림 개발을 제안했다.존슨&존슨은 제품개발은 자사가 맡고, 다논은 무공해 먹는 샘물 에비앙의 이미지를 빌려주며 유통을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존슨&존슨과 다논의 제휴에서 탄생한 영양크림이 에비앙 아피니티다.두 회사가 공동출자해 탄생시킨 에비앙 아피니티는 현재 프랑스 영양크림시장 점유율 5%를 넘어섰다. 미국 존슨&존슨은 다논을 통해 프랑스 시장 확대 기회를 얻었으며 대신 다논은 먹는 샘물 에비앙의 가치를 극대화했다.어떤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한다고 해서 다른 기업과 못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제품성격과 분야만 다르면 동시에 여러 업체와의 제휴도 가능하다. 존슨&존슨과 미용제품 전략파트너인 다논은 프랑스맥도널드와도 제휴관계에 있다.다논의 우유제품을 취급하던 맥도널드는 다논측에 바이어와 공급자의 관계를 격상시킨 전략적 파트너십을 제의했다. 패스트푸드점 고객수가 가장 적은 오후 3~5시에 다논의 인기 비스킷 프랭스와 요구르트 악티멜을 넣은 특별 간식메뉴를 출시하자는 것이었다. 이 역시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고칼로리 정크푸드 판매업체라는 맥도널드의 부정적 이미지 개선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세계적으로 유명한 네스티와 네스카페는 네슬레와 코카콜라의 유통망 확대를 목적으로 한 공동제휴 제품이다. 네슬레와 코카콜라는 서로 경쟁관계인 일본시장만 제외하곤 세계 24개국에서 공동유통 전략을 실시하고 있다.전혀 분야가 다른 제조업과 문화산업이 신상품 개발 제휴를 맺은 경우도 있다. 지난해 코카콜라는 미국의 디즈니와 워너유니버설, 프랑스 영화배급업체 고몽 등 세계 12개 영화제작사 및 배급사와 제휴해 영화와 콜라를 연계한 신상품 시네모시온을 공동 판매했다.신상품 개발을 위한 기업들의 짝짓기 현상이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전략적 제휴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프랑스 가전업체 톰슨멀티미디어와 인터액티브 TV 부문, 프랑스 이동통신업체 오량쥬와는 i모드 공동 기술개발 계약을 체결했다.아직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기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미디어9 소프트웨어 개발에 응용됐다. 파스칼 브리에 마이크로소프트 프랑스 사장은 “기술제휴가 당장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도구”라고 말했다.개발된 기술과 노하우는 당장 활용성이 없더라도 다른 환경이나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 잃어버린 투자가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