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반도체칩’ 선두주자 떠올라

최근 정부는 반도체산업을 이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차세대 기술 가운데 하나로 바이오칩을 선정한 바 있다. 바이오칩이란 과연 무엇인가.증권가에서는 우량종목을 말하는 블루칩이란 용어가 있다. 몇 년 전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오른 것이 생명공학 벤처기업주이다. 이들 기업을 따로 바이오칩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 말이 지금까지 남아 바이오칩 하면 생명공학 기업주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차세대 기술 바이오칩은 하나의 상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공학의 반도체칩이라 생각하면 된다.바이오칩이란 유리, 실리콘 혹은 나일론 등의 재질로 된 작은 기판 위에 DNA, 단백질 등의 생물분자들을 결합시켜 유전자 발현 양상, 유전자결함, 단백질분포, 반응양상 등을 분석해 낼 수 있는 생물학적 마이크로칩(Biological Microchip)을 말한다.바이오칩은 크게 마이크로어레이(Microarray)와 마이크로플루이딕스(Microfluidics)로 나뉜다. 마이크로어레이는 수천 수만 개의 DNA나 단백질 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해 붙이고 분석대상 물질을 처리해 그 결합 양상을 분석할 수 있는 바이오칩을 말하는데 DNA칩, 단백질칩(Protein Chip) 등이 대표적이다.바이오칩의 대명사인 DNA칩은 제작방법에 따라 잉크젯이나 마이크로스포팅 기술을 이용해 준비된 DNA를 기판 위에 붙이는 형태와 반도체칩 제조에 쓰이는 광리소그래피 기술 또는 마이크로미러 기술을 이용해 정해진 위치에 DNA를 합성하는 형태로 나뉜다. 전자는 DNA를 원하는 양만큼 기판 위에 뿜어내는 기술을 이용한 것이며, 후자는 빛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여러 기판을 이용해 원하는 유전물질을 직접 기판에 심어 합성하는 방법이다. 바이오칩 개발에 정보통신업체나 반도체 개발회사가 뛰어드는 것도 바로 이러한 기본기술이 동일하기 때문이다.선두 아성에 IT기업들이 도전장바이오칩 선두주자는 대부분 미국에 있다. DNA칩 관련 대표기업으로 어피메트릭스를 들 수 있고 이 회사와 함께 DNA칩 개발을 선도했던 하이섹(Hyseq), 인사이트 지노믹스(Incyte Genomics) 등도 손꼽을 만하다.단백질칩은 생명현상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이용가치가 매우 높은 바이오칩이다. 그러나 DNA와는 달리 효소, 항체, 수용체 등 필요한 단백질의 확보가 어렵고 변성되기 쉬워 DNA칩에 비해 시장진입이 늦은 실정이다. 단백질칩을 개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들로는 자이오믹스(Zyomix), 콤비메트릭스(CombiMatrix), 패커드 바이오사이언스(Packard BioScience), 사이퍼젠 바이오시스템즈(Ciphergen Biosystems) 등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단백질칩이 DNA칩 이후의 바이오칩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현재 바이오칩시장은 DNA칩 선발주자인 어피메트릭스가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자사의 칩 제조 시스템을 사용하는 대가로 해마다 500~1,000만달러의 로열티를 받고 있으며 바이오칩 분석기기 및 소프트웨어 개발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자사의 기술 표준을 확산시키고 있다. 나아가 97년에는 마이크로어레이 기술표준화를 위한 컨소시엄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정보기술 및 기타 분야의 거대 기업들이 이 분야에 참여하고 있어 바이오칩 시장의 경쟁 양상은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대표적인 예가 모토롤러로, 지난 98년 모토롤라 바이오칩 시스템즈(Motorola BioChip Systems)를 설립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신호처리 기술, 고품질의 제조역량 등을 바탕으로 게놈정보를 응용하는 생명과학연구, 의약품 개발과 임상진단 등의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모토롤러는 현재 인사이트, 지노메트릭스(Genometrix), 오키드 바이오컴퓨터, 패커드 인스트루먼트(Packard Instruments), SNP 컨소시엄 등 10개 이상의 생명공학기업 및 연구기관과의 제휴를 통해 바이오칩 개발에 필요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하고 있는 DNA칩 시장과는 달리 단백질칩이나 랩온어칩 시장의 경우, 계속해서 칩 제조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상황이라 향후 시장의 발달 양상이나 기업간 경쟁구도 등을 예측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렇지만 주요 기업들의 기술개발 동향과 게놈 및 프로테옴 연구 등 칩을 응용하는 관련기술 분야의 발전 등을 고려할 때 이들 시장이 향후 5~10년 내에 DNA칩 시장을 능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아가 연구개발용뿐만 아니라 진단용, 환경감시용, 식품검사용 등 다양한 용도의 칩이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바이오칩산업에 대해 시장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전문 시장조사기관들의 예측자료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수년 내에 바이오칩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프리도니아그룹이 2002년 10월 발표한 ‘바이오칩’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현재 5억6,000만달러 규모인 미국의 바이오칩시장이 연 평균 23%씩 성장, 2006년에는 16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이 가운데 바이오칩의 수요는 7억2,000만달러에 달하며 시약, 기구, 소프트웨어, 기술 및 법률적 보조산업 등 관련산업의 규모는 8억8,000만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인 바이오인사이트는 2002년 4월 단백질칩 시장 규모가 오는 2006년까지 현재의 7,600만달러에서 10배인 7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해 앞으로 단백질칩이 바이오칩시장을 주도할 것임을 암시했다.콘텐츠 개발이 성공의 지름길바이오칩 성공에는 칩 제조나 분석기술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의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즉 칩에 담을 DNA나 단백질을 규명하는 일이다. 국내에서는 과학기술부의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의 하나인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에서 한국인에게 발병률이 높은 위암, 간암의 유전자를 발굴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밝혀진 유전자와 단백질을 칩 위에 심은 DNA칩, 단백질칩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칩들로 한국인에게 발병률이 높은 위암, 간암 진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인간게놈지도가 완전 해독된 지금 DNA 연구자들은 개인마다 고유한 유전 특성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유전자는 거의 같은데 민족에 따라 피부색, 머리색이 다르다. 인간의 게놈은 평균 1,000염기당 1개꼴로 다르다. 이 차이를 SNP라 하는데 머리카락, 피부, 눈 색깔, 키, 몸무게, 그리고 질병민감성과 같은 개인의 차이가 여기서 비롯된다. 최근 한국인 고유의 SNP를 분석하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데 그 결과물을 바이오칩으로 활용하면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자신의 SNP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검사결과는 개인에게 맞는 의약품, 치료기술의 선택으로 이어져 이른바 맞춤의약이 실현될 수도 있다.최근 국내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은 미생물 게놈분석이라는 새로운 사업분야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미생물이 갖고 있는 유용한 유전자나 단백질은 신약개발, 유전자변형농산물 개발, 환경정화 등에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다. 이를 밝혀내는 데 바이오칩이 필수이다. 따라서 바이오칩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으며 국산 바이오칩이나 스캐너도 개발되고 있다. 수입대체뿐만 아니라 세계시장 개척이라는 면에서도 바이오칩시장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진출 노력이 시급하다고 하겠다.지난해 삼성종합기술원은 유전성 당뇨병 진단용 마이크로어레이 DNA칩을 개발한 바 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바이오칩분야에서 세계시장의 20%를 점유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칩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삼성이 반도체칩에 이어 차세대 기술로 지목된 바이오칩분야에 뛰어들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