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학원인 동원스시아카데미 이상주 원장은 요즘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올 초 개설한 ‘이민반’에 수강생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이민반’은 해외이주를 준비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5~7주 과정의 요리강습을 하는 강좌다. 스시, 롤 등 해외에서도 취업이나 창업이 가능한 요리기술을 실습위주로 강의한다.올 하반기 들어 수강생이 대거 늘어나면서 지금은 하루 6개반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원장은 “대기업과 은행 간부급 직장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최근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말반을 개설했다”고 밝혔다.‘이민학’을 강의하는 명지대 박화서 교수(50)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올 2학기 경원대의 요청으로 학부과정에 이민학 강좌를 개설했는데, 당초 예상했던 200명을 훌쩍 뛰어넘어 400여명이 수강을 신청하는 등 예상외의 반응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최근 이민 열풍을 실감한다”는 박교수는 호주 연방정부 이민성 이민관, 주한호주대사관 이민부 매니저 등을 거친 이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2001년 국내 처음으로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에 이민학 과정을 개설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박교수는 “최근의 이민 열풍은 국내 경기가 위축된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향후 이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줄어들면서 이민행렬은 더욱 늘어나고 이민산업도 대폭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캐나다 등 현지에서도 열풍 실감그동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이민’이 30~40대 중산층을 중심으로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최근의 이민 열풍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질주하는 듯 폭발적이다. TV홈쇼핑업체가 단 두번의 방송으로 4,000여명에게 705억원어치의 이민상품을 판매했다는 사실이 ‘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곧이어 열린 이민박람회에 무려 1만5,000여명이 몰린 것은 ‘열풍’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지난 97~98년 IMF 외환위기로 불었던 이민 열풍이 그 시절을 버금가는 경제위기 탓에 다시 한 번 재현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현지에서도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캐나다 오타와로 이민을 떠난 박형진씨는 “최근 두달 사이에 이민자들의 초기 정착을 도와준 가정만 네 곳”이라며 “벤쿠버나 토론토는 원래 이민자가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었던 오타와의 경우 특이한 일”이라며 바다를 건너간 뜨거운 이민 열기를 전했다.이민 열풍이 얼마나 거센지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업계의 사정을 살펴봐도 잘알 수 있다.이주공사 또는 이민공사 등으로 불리는 알선업체수는 올 8월 말 현재 67개사로 올해만 22개사가 늘어났다. 이들 업체는 요즘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월 1~2회 실시하던 설명회도 매주 2~3회로 늘린 곳이 적지 않다. 일부 업체들은 이민 대상 정부와 직접 교섭을 통해 TV홈쇼핑 상품과 유사한 상품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주공사 관계자는 “아직 공개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해당 정부와 합의된 프로그램 상품을 곧 내놓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업계에서는 시장규모가 올해는 500억~600억원대로 지난해의 300억~400억원에 비해 60% 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이민알선업체뿐만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다양한 상품개발에 나서는 등 이민을 떠나려는 사람들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은행들이 설치한 이주센터를 찾는 사람들도 예년보다 20~30% 늘어났다. 시중은행의 이민 상담 창구에서는 이민 갈 나라에서 고객의 금융계좌를 은행이 대신 개설해주거나 신용카드 발급을 도와주는 등 각종 금융상담을 해준다. 은행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주센터를 강남이나 명동 등 핵심지역으로 옮기는 한편 이민자를 위한 각종 상품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이뿐만 아니다. 앞으로는 기존의 이민 비즈니스 이외에 파생 비즈니스도 속속 생겨날 전망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이민자를 위한 요리학원이 대표적이다. 동원스시아카데미는 하루 2교시 3시간 5주 과정으로 스시, 롤, 퓨전스시 등 60여가지의 요리를 배울 수가 있다. 교육을 수료하면 국내외에 통용되는 수료증 및 수료식 사진을 발급해준다.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의 영어자격시험인 IELTS 전문학원들도 성황이다. 최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들이 IELTS 자격을 강화하면서 학원등록을 위한 대기자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이다.이밖에 특별히 눈에 띄는 비즈니스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향후 다양한 틈새 비즈니스가 나타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한편 최근의 이민 열풍이 실질적인 수요로 이어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적잖다.일단 통계상으로 이민자수가 예년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올 8월까지 6,900여명이 고국을 떠났다. 따라서 올 연말까지 이민자가 지난해 1만1,178명 수준인 1,1000여명 정도에 머물 것으로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전망했다.따라서 최근의 이민 열풍이 실질적인 이민으로 이어질지는 내년이나 내후년이 돼봐야 알 수 있는 셈이다.업계 일각에서는 현재의 이민 열풍이 한때의 유행처럼 지나갈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고려이주개발공사의 성원모 상무는 “이민 대상 국가들의 이민요건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어 마음이 있다고 모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경력, 영어능력 등을 겸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격자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민산업이 핵심산업군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아직 국내 이민 비즈니스가 태동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장 성장성은 무한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시작하고, 한발 앞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업계가 이민 비즈니스를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