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0대 로펌회사 중 하나인 폴헤이스팅스가 한국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김종한 변호사(41). 12살 때 부친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김변호사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외자유치 정부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김변호사는 현재 폴헤이스팅스에서 임원급에 속하는 파트너 변호사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850명의 변호사 중 180명만이 주식소유, 의결권, 경영참가 등의 권한을 갖는 파트너 변호사들이다. 김변호사는 한국의 법률시장 개방에 맞춰 한국팀장으로 임명된 것이다.폴헤이스팅스는 1951년 미국에서 설립, 88년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아시아 법률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홍콩의 쿠앤파트너스를 합병했고 다국적 기업의 한국투자와 한국기업의 해외활동을 지원해왔다. 지금은 중국 상하이, 베이징에 이어 2005년으로 예정돼 있는 한국 법률시장의 개방에 맞춰 김변호사를 포함한 한국인 변호사 5명 등 모두 10여명이 홍콩에서 진출 채비를 하고 있다.“한국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한국인으로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동안 꼭 망명생활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주변에서만 맴돌았는데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고국과 고국 기업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김변호사의 고국사랑은 남다르다. 김변호사는 미국 조지타운대 재학시절 교환학생 파견시에 우선순위인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학들을 포기하고 한국 대학을 선택했다. 그당시 대학 관계자와 동문들은 김변호사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법학도로서 엘리트코스인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학을 포기하고 한국을 주저 없이 선택한 김변호사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던 것. 아내도 1년을 수학한 연세대와의 인연으로 재미 연세대 동문회에서 만났다. 김변호사는 폴헤이스팅스에 입사한 이후에도 한국과 관련된 일은 자청해서 맡았다. 삼성전자가 해외투자기업으로 인수한 미국 AST사의 법률자문을 맡았으며 인텔의 국내 투자유치와 실패로 끝났지만 대한생명의 해외매각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회사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일은 당연히 김변호사가 맡는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폴헤이스팅스 서울지사장으로 내정된 김변호사는 요즘 한국에서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변호사는 소풍을 가는 어린이인 양 들뜬 마음에 만나는 한국사람들에게 꼭 법률시장 개방시기를 물어본다고 한다.“항상 한국을 생각했습니다. 더 나은 조건의 일도 있지만 한국은 항상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