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0일 오전 11시30분.JW메리어트호텔서울의 안내데스크 뒤쪽에 위치한 AYS룸.‘앳유어서비스’(At Your Service)라는 이름의 이 사무실은 호텔의 고객서비스를 담당하는 컨시어지(consierge)부서의 핵심부문 중 하나다.“우리 호텔에서는 어떠한 불편사항이든지 한곳에서 처리해 드립니다. 객실에서 일단 수화기를 드시면 이곳 AYS로 연결되죠. TV에 이상이 있거나, 아니면 리무진버스의 스케줄이 궁금하거나 어떤 내용이라도 모두 저희에게 문의하면 이곳에서 각각 해당 부서에 연결해드립니다. 원스톱서비스인 셈이죠.”이 호텔은 지난 9월19~20일 1박2일에 걸쳐 기업의 최고경영자 담당비서 등 우수고객 20명을 초청, 독특한 행사를 가졌다. ‘파트너십인엑설런스’(Partnership In Excellence) 행사로 고객에게 호텔 업무의 면면을 솔직히 밝혀 고객과의 갈등요소를 제거한다는 게 핵심.이날 점심식사를 앞두고 진행된 컨시어지부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에서 AYS팀을 담당하는 심원희 객실부 과장은 호텔의 이모저모를 궁금해 하는 고객 20명에게 자랑섞인 설명을 이어갔다.“그럼 혹시 손님이 호텔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내일 날씨 어때요’ 같은 엉뚱한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시나요?”한 참가자의 질문에 심과장은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저희가 직접 인터넷을 찾아보고 연락을 드리죠.”“아…”여기저기서 자그마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행사가 끝난 뒤 호텔측이 진행한 참가자 설문조사에서 이 부서는 전체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경기전망을 나타내는 지표들이 다소 개선되는 기미를 보이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조심스레 일고 있지만 소비불황의 골은 여전히 깊어 보인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7개월 연속으로 소비재 판매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감소세를 보였다. 서비스업 역시 활동지수의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10월 초 유통업계가 발표한 자료에서 주요 백화점 매출은 8개월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최근의 소비불황은 심리적인 면이 강하다. 경기악화에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소비자들은 각종 경기 불안요인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따라서 특히 외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은 대규모 투자 대신 소수의 고객이라도 그들에게 바짝 다가서는 ‘밀착마케팅’을 택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일종의 비밀스러운 부분인 서비스업의 내부를 공개하는가 하면 주요 타깃이 되는 소비자층을 상대로 무료강의를 하기도 한다.강의 통해 잠재고객 확대JW메리어트호텔서울 행사의 경우 미국 본사에서 진행해 왔던 행사를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예다. 파트너십인엑설런스라는 원제와 함께 한국식 타이틀인 ‘지피지기’(知彼知己)를 부제로 달았다. 말 그대로 ‘호텔을 알고 고객을 알면 윈윈(win-win)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따라서 초대된 고객 20명의 눈길을 끈 것은 비단 AYS만이 아니었다. 엄천득 객실관리부장을 따라 올라간 각 객실에서는 객실담당 직원들의 침대정리 시범을 볼 수 있었다. 2인1조로 진행되는 객실 정리에는 120개의 지침이 매뉴얼화돼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호텔의 안전을 책임지는 CCTV도 공개됐다. 전체 125대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각 모니터가 어디를 비추고 있는지를 참가자들이 직접 확인하게 했다. 그중 14대는 줌기능도 있어서 수상한 사람은 이를 이용해 행적을 쫓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그밖에 저녁까지 진행된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일식당의 대표메뉴를 주방장에게 직접 배우는가 하면 세탁실을 방문해 호텔의 일일 빨래분 8t의 세탁이 자동화로 이뤄지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고객과의 밀착도를 강조하는 것은 이처럼 타깃 고객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호텔업계에서 특히 유효한 전략이다.조선호텔 역시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지난해에 진행한 바 있다. 호텔 업무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것으로 역시 호텔의 업무 진행과정을 일일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이 호텔에서는 수시로 요리클래스를 유료강의로 진행하기도 한다. 요리강습은 호텔에서 고객에게 다가가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호텔 주방장으로부터 노하우를 직접 배우는 동시에 지배인 등 직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요리뿐만 아니라 테이블매너까지 배울 수 있어 호텔 레스토랑을 자주 이용하는 고객이 호텔과 가까워지는 데 효과적이다.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의 경우 올여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테이블매너교실을 열었다. 졸업시즌에는 사회 초년생을 위한 매너교실을 여는 등 테마를 살리는 것도 특징이다.이처럼 강습 형식을 빌려 고객을 ‘바짝 당기는’ 마케팅 기법은 요즘 가전기기업체들이 앞 다퉈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디지털카메라 이용자, 일명 ‘디카족’이 급격히 늘면서 디지털카메라업체들 사이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기능도 모양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따라서 ‘사진교실’ 등을 열어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디지털카메라와 자사 브랜드를 소비자가 좀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확대 개최하는 추세다.일본계 가전업체 JVC의 경우 올봄, 디지털기기에 특히 약한 여성 고객을 중점적으로 공략한 ‘우먼인 러브 디지털영상교육’을 진행했다.교육 프로그램은 잠재고객을 유도하는 효과도 크다. 이 회사는 지난 8월 말 출시한 신제품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폈다. 8월 말 선보인 가정용 고화질(HD) 캠코더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상품인 만큼 8월 말에서 9월 초에 걸쳐 3회간 ‘JVC HD 월드스쿨’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인기를 끌었던 한 지상파 방송의 HD드라마를 소재로 삼아 HD영상 붐 조성을 위해 힘을 모았다.올림푸스는 아예 애프터서비스(AS)센터를 신설하면서 교육전용 장소를 별도로 마련했다. 지난 4월부터 월1회 디지털카메라 교육을 실시했던 이 회사는 디지털아카데미교육장 개장을 계기로 좀더 세분화된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지난 8월에 문을 연 AS센터 ‘용산존’은 1층에서는 판매와 전시를 하며 2층에는 서비스센터와 갤러리가 들어섰다. 또 2층 한쪽에 디지털아카데미 교육장을 설치했다. 따라서 고객이 직접 제품을 조작해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이 교육장을 통해 어린이, 노인 등 타깃별로 또는 사용수준에 따른 레벨별로 차별화되고 전문화된 교육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 공간을 필요로 하는 디지털카메라 관련 동호회에 장소를 무료로 빌려줄 예정이다.이밖에도 이미 97년에 1만여명을 돌파한 ‘필름사진교실’을 진행해 온 후지필름은 지난 2000년 3월부터 역시 디지털카메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코닥 역시 월4회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매회 평균 15~20명 정도가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는 테마사진촬영교실 등으로 좀더 세분화해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이쯤 되고 보니 고객을 한울타리로 묶는 정도는 요즘 마케팅의 기본요소가 됐다. 글로벌 피트니스센터인 캘리포니아휘트니스센터는 지난 9월 말 회원을 대상으로 3주년 기념파티를 열었다. 오후 8시부터 서울 청담동의 바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고객의 공통 관심사인 운동을 주제로 소속 트레이너들의 기념공연 등으로 꾸며졌다. 약 1,500명의 회원이 참가, 호응 속에 밤새 진행됐다는 후문이다.선택적 소비 증대, 감동 유도해야특히 최근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각종 동호회가 유행하면서 고객 커뮤니티 지원은 업종을 불문하고 기본 중의 기본이 됐다.‘회원제북클럽’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선보인 베텔스만코리아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성공한 외국기업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북클럽 회원에게는 1년에 4번 도서와 각종 문화상품이 소개돼 있는 카탈로그를 발송한다. 특히 카탈로그에는 와인 강좌, 십자수 강좌, 엄마와 함께하는 영어교실 등 고객들을 위한 행사도 소개된다. 이 같은 고객밀착마케팅으로 이 회사는 ‘설립 2년 6개월 만에 45만명 회원 모집’이라는 유례없는 성과를 거뒀다.이 같은 고객밀착마케팅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국내 소비자의 소비성향이 선택적 소비로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 1분기 통계청의 소비재 판매지수를 보면 용돈, 교제비나 교양ㆍ오락 활동에 대한 지출의 합계인 ‘여유성 소비지출’은 약 23.1%에 달하고 있다. 또 이미 TV, 냉장고 등의 내구소비재 보급률이 90% 이상이고 자동차 보유가구도 50%를 넘는 게 현실인 만큼 소비자들은 교체구매 시기를 선택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이지평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센터 미래팀장은 “선택적 소비성향이 확대되면 소비자는 구매에 있어 심리적인 영향에 크게 흔들리게 된다”며 “따라서 기업은 고도성장기에 적용되는 대량소비 전략 대신 감성중시형 트렌드를 창조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연구원은 또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고객감동이 중요하다”면서 “결국 소비자가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의외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