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그(Drug)는 ‘약’을 뜻하는 영어단어다. 마약을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기도 하지만 본뜻은 분명 약이다. 그렇다면 드러그와 스토어의 두 단어를 합쳐 만든 말인 ‘드러그스토어’는 약을 파는 곳이다. 약국이라는 셈이다.그러나 일본땅에서 드러그스토어가 소비자들에게 비친 이미지와 뜻은 영 다르다. 약도 물론 팔지만 약 이외의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점포마다 차이는 있지만 세제 등 각종 생활용품과 식음료품은 물론 공구, 전기용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다.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은 파죽지세로 시장영역을 넓혀가는 드러그스토어들의 약진과 관련, 할인점과 편의점의 강점을 고루 갖춘 강자의 대도전이 막을 올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할인점 수준의 저가격과 편의점 못지않은 이용 편의로 무장한 드러그스토어들이 선발업태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드러그스토어들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는 증거는 대형 업체들의 영업실적과 장사 기법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외형에서 1위를 달리는 마쓰모토 기요시는 2002년 결산(2003년 3월)에서 2,619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원화로 따지면 3조원에 가까운 수치다. 2002년 말 점포수는 약 500개에 불과했지만 이를 5년 후인 2008년 3월까지는 1,000개로 늘리고 매출을 5,000억엔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이 회사의 야심이다. 이 회사의 매출은 10년 전인 93년 3월 결산에서 1,000억엔을 크게 밑돌았으나 일본 경제가 불황 수렁에서 허덕인 기간에도 외형에서 뒷걸음질치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렸다. 마쓰모토 기요시에 이어 2ㆍ3위를 달리는 가우치약품과 CFS코포레이션은 같은 시기 결산에서 1,640억엔과 1,501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베스트10에 턱걸이한 세가메딕스도 636억엔의 기록을 남겼다. 매출 5위(1,020억엔)의 선드러그를 제외한 상위 9개사가 모두 본사를 지방에 두고, 해당 지역의 토종업체로 출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드러그스토어에서만은 지방의 파워가 도쿄를 압도한 양상이다.드러그스토어의 돌풍은 갈수록 탄력을 높여가고 있는 다점포화 전략과 치밀하고도 정교한 판촉기법 및 편의점, 할인점 등 타 업태와의 울타리 붕괴를 진원지로 하고 있다. 특히 마쓰모토 기요시는 공격적이고도 과감한 점포개설과 대규모 물량공세, 그리고 경쟁업체들의 허를 찌르는 장사수완으로 언론과 전문가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지바현이 텃밭인 마쓰모토 기요시는 지난해 12월 오사카의 번화가 한복판에 이 지역 세번째의 점포를 냈다. 바로 코앞에는 토종업체의 점포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쓰모토 기요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면적에서 선발 경쟁점포의 2배나 되는 매장으로 고객들을 끌어들였다. 매장이 넓으니 취급상품의 종류도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 초염가상품뿐만 아니라 마진이 박한 고가품도 두루 갖추면 집객력이 높아져 경쟁점포들을 단시간에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점포 전략의 기본 컨셉이었다. 마쓰모토 기요시는 이 같은 컨셉을 축으로 점포를 신규 개설할 때마다 외형 경쟁에서 일단 인근의 선발 경쟁점포들을 제압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가나가와현에서 출발한 CFS코포레이션은 특정지역을 소나기식으로 집중 공략하는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요코하마 코난다이역 부근에서 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m 내에 점포를 5개나 열어놓고 있다. 5개 점포의 매장면적과 상품구성, 진열대 크기 등은 주변 상권과 고객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르다. 그러나 5개 점포가 힘을 합쳐 견제하니 경쟁점포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한곳을 집중적으로 뚫고 나가는 일점 돌파의 전략으로 역 부근만은 확실한 텃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CFS코포레이션은 5개 점포 일대 상권의 거주인구가 줄잡아 4만2,000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대당 드러그스토어 관련 소비지출을 연간 27만엔으로 잡으면 113억엔대의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며 이중 25%의 마켓셰어를 5개 점포가 쥐고 있다고 회사측은 보고 있다.마쓰모토 기요시 2개 점포서 4억엔 매출고객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늘이기 위한 전략에서도 마쓰모토 기요시의 기법은 언론과 경쟁업체들의 주목대상이 되고 있다. 도쿄 시부야의 금싸라기땅에 자리잡은 마쓰모토 기요시의 2개 점포는 하루 1만명의 고객이 몰리는 곳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2개 점포의 연간매출은 모두 합해 약 4억엔. 고객 1인이 쓰고 가는 돈은 500엔 정도로 편의점 수준에도 못미칠 수 있지만 회사측의 생각은 다르다. 고객이 한명이라도 더 들어오고 북적거려야 점포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마쓰모토 기요시는 주고객인 여성들이 한번이라도 더 들어가고 싶은 매장 만들기에 심혈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한 첫번째 카드가 조명이다. 마쓰모토 기요시의 간판을 단 매장은 어디든지 1,600룩스 이상의 밝기를 유지한다. 일반 대형 백화점이 500~700룩스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맑은 날 거리에 있다가 매장 안으로 들어가더라도 어둡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내부의 불문율이다. 두번째 카드는 상식을 뒤집는 진열법이다. 상품이 많아 보이도록 하는 ‘벽진열’과 무거운 것을 위에 놓는 ‘역진열’이 핵심이다. 역진열의 경우 유통업체는 일반적으로 값싸고 무게가 나가는 상품을 밑으로 내려놓는다. 진열의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눈높이의 ‘골든라인’에 인기상품을 올려놓기 위한 아이디어다. 하지만 마쓰모토 기요시는 관념을 뒤집었다. 골든라인에서 엉뚱한 상품을 먼저 본 고객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다른 것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동안 좀더 많은 상품에 시선을 줄 수 있지 않으냐는 계산에서다. 경쟁점포들이야 어떻게 하던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마이웨이식 진열법이다.이 회사는 여성 고객들이 화장품을 시범적으로 사용해 볼 수 있는 코너를 점포마다 널찍한 크기로 마련해놓고 있다. 시부야 점포의 경우 공짜 화장을 해 보고 샘플을 얻어가려는 여고생들에게 최고의 명소로 인기를 누리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점포와 점포 외부 사이에 설치된 유리벽에 마련된 시험 화장 진열대의 높이가 키보다 약간 낮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챈 고객들은 많지 않다. 마쓰모토 기요시의 의도는 분명하다.점포 밖을 지나는 행인들 눈에도 매장 안에 사람이 많이 모인 것처럼 비쳐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화장을 시험해 보는 여성 고객들의 얼굴과 머리 부위가 밖에서도 보이도록 함으로써 이 점포는 언제나 손님이 많은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전략의 하나다.일본 언론은 업태의 구분에서 할인점, 대형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중간에 위치해 온 드러그스토어들이 영업방식에서 양측의 장점을 고루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같은 추세라면 드러그스토어가 시장판도 변화의 핵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고객 확보 싸움에서 예측불허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다점포망에서 우위를 누려온 편의점들의 강점을 드러그스토어가 영업시간 연장으로 위협하면서 저가격으로 펀치를 날린다면 우선 편의점들이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마쓰모토 나미오 마쓰모토 기요시 사장은 “드러그스토어의 편의점화는 현재 진행형에 있음이 대세”라고 지적한 후 “24시간 영업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약사의 근로시간 문제가 걸림돌이라 24시간 체제를 미루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후쿠이현에 본사를 둔 겡키는 ‘주부들을 위한 편의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업태는 드러그스토어지만 3만5,000여종의 취급상품 중 상당수가 식음료 등의 생필품이며 주류까지 팔고 있다.이 회사의 후지나카 겐이치 사장은 “드러그스토어들이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타 업태와 승부”라고 강조, 유통업계 전반에 확산될 드러그스토어와의 전쟁을 짐작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