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씨티은행 프라이빗뱅킹진출 러시, 국내은행도 부자고객 잡기 위해 PB 대폭 강화

‘부자고객을 잡아라.’요즘 은행가에 떨어진 특명이다. 세계 최대의 증권회사인 메릴린치가 2002년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고액 자산가들 가운데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5만5,000명이고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50만~7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 보고서를 반영이나 하듯 올 들어 고액 자산가를 붙잡기 위한 국내 은행들의 부자마케팅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들은 고액 금융거래자나 자산가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프라이빗뱅킹(Private BankingㆍPB) 관련 센터와 영업점을 잇달아 개점하고 있다. 이처럼 시중은행들이 PB에 큰 관심을 드러내자 HSBCㆍ씨티 등 외국계 은행들도 최근 들어 PB업무에 본격 진출하고 있다. PB영업 역사가 긴 외국계 은행들은 세계 각 지점에서 오랫동안 쌓은 글로벌 노하우와 수준 높은 서비스로 PB영업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PB, 고객 자산 총관리지난 10월1일 HSBC은행 서울지점은 PB서비스인 파이낸셜 플래닝 서비스(Financial Planning Services)를 국내 시장에 내놓았다. HSBC은행의 파이낸셜 플래닝 서비스는 3억원 이상의 유동자산을 갖고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투자, 세무, 변호, 부동산, 은퇴설계, 위험관리 등의 재무관리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HSBC은행은 22년간 세계 각 지점에서 실시해 그 성과가 입증된 자산배분시스템을 2년에 걸쳐 한국 실정에 맞게 보완했다. 또한 지난 6월부터는 일부 우량고객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실시해 의견조율을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박준규 개인금융본부장은 “HSBC은행의 개인금융서비스는 한국 고객들에게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며 “130여년 동안 전세계 80여개국에서 축적해온 파이낸셜 플래닝에 대한 선진 노하우가 한국의 고액 자산가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밝혔다.HSBC의 PB인 파이낸셜 플래닝 서비스는 각종 테스트를 통과한 파이낸셜 플래너의 재무설계를 통해 고객 개개인에게 맞춤화된 금융설계가 일차적으로 제공된다. HSBC의 파이낸셜 플래너들은 고객의 재무현황을 분석한 뒤에 이에 적합한 금융설계를 제안해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고객의 재정적인 문제해결과 재무상태에 대한 조언을 통해 고객이 목표한 재무를 달성하도록 종합적인 서비스가 제공된다.HSBC의 PB서비스는 은행과 고객과의 장기적인 신뢰를 토대로 고객의 자산관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기존에 제공됐던 타 은행의 PB서비스와는 차별화된 것이 장점이다. 현재 HSBC은행 서울지점에는 글로벌 기준을 통과한 8명의 파이낸셜 플래너가 고객의 체계적인 재무관리를 돕고 있다.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2억개 이상의 고객계좌를 보유한 세계적 금융기업인 씨티은행도 올 들어 한국에서 PB영업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현재 씨티은행은 1억 이상의 예금을 보유한 고객을 대상으로 ‘씨티골드서비스’라는 자산관리형 PB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하지만 씨티은행은 그룹 차원에서 ‘씨티그룹 프라이빗뱅크’(CPB)를 전세계 37개국 125개 지점에 운영하고 있다. 특히 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는 지난 1월부터 자산 50억원과 은행 예치자산 10억원을 모두 보유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CPB서비스를 시작했다.씨티은행 김찬석 이사는 “씨티그룹은 이미 오래전부터 은행 차원에서 시티골드서비스라는 독자적인 PB영업을 실시했다”며 “올해부터 실시하는 CPB는 자산 50억원과 은행계좌 10억원을 모두 충족하는 고객만을 위한 PB가 서비스 중이고 PB서비스는 씨티은행이 가장 우수하다”고 밝혔다.CPB는 고객의 금융과 재무관리 전반에 대한 목표와 요구를 해결해주는 재무주치의를 말한다. CPB는 씨티그룹의 오랜 전통과 세계 각지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고객에게 전달해 방대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로 안정적인 종합재무관리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CPB 고객에게는 일반예금은 물론 미 달러화 옵션 연동계좌, 증시 연동형 예금, 국내외 뮤추얼펀드 등의 다양한 상품이 판매되고 투자대행, 송금, 담보대출, 외환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씨티그룹의 프라이빗뱅커는 글로벌 수준의 전문교육과정을 두고 있어 PB전문가 사관학교로 유명하다. 더불어 씨티은행은 오래전부터 KYC(Know Your Client)라는 정책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만들기 전에 고객의 재무건전성과 투명성을 미리 파악해 부정한 금액에 대해서는 PB를 거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이처럼 HSBC와 씨티은행의 수준 높은 PB서비스가 국내에 진출했기 때문에 벌써부터 시중은행들은 긴장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특히 세계적인 규모의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와 스위스의 USB도 국내 소매금융 진출에 이어 PB영업 진출이 유력해 이 부분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전망된다.시중은행, 다양한 PB서비스 선보여외국계 은행들이 국내 PB시장에 뛰어들자 시중은행들은 고민에 휩싸였다. 시중은행들은 PB분야 서비스가 외국계 은행에 비해 역사와 종합적인 재무관리 서비스가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일부 시중은행의 경우에는 외국계 은행 출신의 PB담당 인사를 영입해 PB업무를 개척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외국계 은행보다 영업점과 고객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PB부문에서도 우위를 점치고 있다.리딩뱅크인 국민은행은 ‘골드앤와이즈(Gold & Wise)’라는 브랜드로 PB시장에 대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압구정PB센터 개점을 시작으로 타워팰리스, 강남, 서초, 이촌, 부산에 PB센터를 연 국민은행은 올해는 분당, 강북에 PB센터를 열어 고액 자산가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 PB 가입자에게는 수익과 위험에 대한 성향을 반영한 자산배분을 통해 글로벌 포트폴리오가 구성된다. 그리고 뮤추얼펀드를 포함한 다양한 해외투자상품과 특정금전신탁이 제공된다. 국민은행 PB는 고객과의 장기적인 신뢰 형성을 토대로 동반자적 PB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한다. 한편 국민은행 PB 가입 대상자는 은행거래 유동자산이 1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제일은행은 지금까지 PB센터 없이 전국 영업점 내에 설치된 PB 61곳을 운영해 왔다. 최근 PB업무와 관련해 조직을 확대 개편한 제일은행은 내년 상반기에 서울 강남과 강북에 PB센터를 한곳씩 열 예정이다. 제일은행의 PB 가입 대상자는 3개월 수신 평균잔액이 5,0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지난 8월 말 현재 제일은행 PB는 고객 4만4,880명에 평균 수신잔액은 1조4,230억원으로 드러났다. 제일은행은 고객의 자산관리 프로젝트에 중점을 두고 투자, 법률, 세무, 보험 등 개인의 총체적 관리를 해주는 자체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기업금융을 주로 담당했던 우리은행은 PB 역사가 짧지만 단기간에 상당한 PB영업 기반을 구축했다. 우리은행은 기업고객을 전담하는 PB센터를 서울 서초, 대치, 분당 3곳에 운영 중이고 일반 PB영업을 병행하는 영업점 내 PB를 36개 두고 있다. 우리은행 PB 가입 대상자는 예치금이 1억원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은행측은 10억원 이상의 고액 자산가를 위한 PB센터를 별도로 강남 교보타워에 개점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의 PB 고객에게는 1대1 전담 자산관리 서비스가 제공되고 국내외 투자상품을 포함한 다양한 상품과 은행 최초의 부동산 종합컨설팅 서비스를 한다.하나은행은 지난 90년대 초반 투자금융사에서 은행으로 전환한 은행답게 고액 고객을 상대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5개의 PB센터가 운영 중이고 영업점 내 PB는 104개에 달한다. 하나은행의 PB서비스는 고객의 요구에 따른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후적인 개념이 아닌 고객의 요구를 미리 파악해 이에 대응하는 상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전적인 개념으로 쓰인다. 하나은행은 상속, 증여와 관련된 세무, 법률 서비스와 고객의 건강, 교육, 문화, 여행, 결혼 등 고객의 토털 라이프 케어 서비스도 제공한다. 하나은행의 PB가입대상은 1억원 이상의 예치자산을 보유한 고객만 해당된다.고액 보유고객을 확보하라한미은행은 지난 92년에 서울 청담동 영업점에서 처음으로 PB서비스를 실시했다. 현재 한미은행은 압구정동, 해운대, 대치동에 PB센터인 ‘로얄프라자’를 운영 중이다. 또한 전국 102개 영업점에 PB를 개설해놓고 있다. 한미은행에 1억원 이상을 예탁한 고객은 로열고객으로 분류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각종 은행수수료 면제, 세무, 법률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고 국공채, 회사채, 금융채, CD, CP 등의 채권형 자산에만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한미셀프디자인신탁 상품이 주요상품이다.신한은행은 지난해 9월 서울 테헤란로에 PB센터 1호점을 열고 영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전국 200여개 영업점에 VIP코너를 설치하고 고액 고객을 맞고 있는 신한은행은 금융지주회사라는 장점을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신한은행 PB 고객들은 굿모닝신한증권,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 SH&C생명보험 등 10개 금융 네트워크의 양질의 서비스를 맛볼 수 있다. 신한은행 PB 가입 대상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조흥은행은 서울 스타타워에 PB센터 1호점을 두고 있다. 10억원 이상의 예치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PB 고객이 될 수 있다. 조흥은행의 대표적인 PB상품은 유동성 자금을 최적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인 ‘웰스 익스플로러’를 비롯해 금리와 주가 등의 시장상황이 변동해도 중도해지 부담이 없는 상품으로 전환이 가능한 6개월 만기의 회전식 정기예금인 ‘초즈 베스트 타임’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조흥은행은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헬스케어를 도입해 해외 유명 의료기관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이처럼 외국계 은행과 국내 은행들은 고액 자산가를 붙잡기 위해 다양한 PB서비스를 앞다퉈 쏟아붓고 있다. 수억원 이상을 예탁해야만 PB에 가입할 수 있다는 단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고액 자산가를 타 은행에 순순히 빼앗길 수 없는 일이다. PB를 놓고 벌이는 외국계 은행과 국내 은행의 치열한 경쟁은 이제 1라운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