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보상만으로 인재확보 어렵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경제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글로벌 기업의 잇따른 상륙이다. 자연히 매스컴을 장식한 인물의 면면도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최근 2~3년새 많은 글로벌 기업의 본사 임원들이 한국을 다녀갔고 각종 매체의 지면과 전파를 탔다. 그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국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의 빠른 변화를 실감해 이를 직접 확인하고자 앞다퉈 한국을 찾고 있다.지난 11월3일 방한한 도널드 로먼 타워스페린 부회장 역시 한국의 주요 고객사들과 인사 관련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밝혔다. 타워스페린은 지난 1934년 설립된 회사로 세계 23개국에 9,000여명의 직원을 두고 경영ㆍ인사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는 지난 94년에 서울사무소를 열면서 본격 진출했다.도착 다음날인 11월4일, 그는 ‘2003년 WWTR(전세계 총보상)보고서’를 들고 신라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타워스페린이 발간한 이 보고서는 연 매출액 약 5억달러 기업(2003년 4월1일 현재)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으로 세계 25개 주요 국가의 보상제도와 복리후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간담회에 앞서 로먼 부회장과 단독으로 만나 한국기업의 인사관리에 관한 몇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었다.인재확보에 대한 한국기업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인사관리시스템의 가시적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는 기자에 말에 “인재확보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중요한 경영이슈”라고 전제하고 “인재유지를 위해서는 인사관리(HR)에 대한 전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로먼 부회장이 말하는 ‘전체적인 접근’이란 ‘총보상’(Total Rewards)을 뜻하는 것으로 금전과 비금전적 보상을 모두 포함한다. 그는 “직원 개개인이 선호하는 보상의 종류와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유능한 인재를 오래 기업에 붙잡아둘 수 없다”고 덧붙였다.2003년 WWTR에 따르면 한국기업 CEO의 연간 총보상은 39만3,533달러(약 4억9,780만원)로 25개국 중 21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또 생산직 직원의 총보상은 2만6,519달러(약 3,354만원)로 CEO와 생산직 직원의 총보상 차이는 14.8배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CEO의 총보상이 생산직 직원의 총보상보다 44배나 많다. “CEO총보상의 경우 특히 성과급 부분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게 로먼 부회장의 분석이다.로먼 부회장은 인재관리를 위한 성과ㆍ보상문제와 함께 ‘직무몰입도’(Employ Engagement) 개념을 강조하며 청년실업과 노사문제 등 한국경영계의 이슈 역시 성과주의와 직무몰입도 개념을 적용해 진단했다.한국을 방문하게 된 목적은 무엇입니까.아시아 주요 국가를 순방 중인데 한국이 그 첫번째 국가입니다. 한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한국기업의 니즈(needs)와 잠재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어 한국사무소의 실적 역시 괄목할 만합니다. 직원들을 독려하는 것도 이번 방한의 목적 중 하나입니다.‘핵심인재’는 한국경영계의 중요 이슈지만 풀기 힘든 문제이기도 합니다.급여 향상 같은 금전적인 면만 강조해서는 인재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한국 경영자들은 비금전적인 면의 보상에 중요도를 낮게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재전쟁’(Talent War)이라 할 정도로 전세계 기업이 인재를 잡는 데 혈안이 돼 있는데요. 각종 조사결과를 보면 인재확보에 있어 중요한 것은 ‘관계’라고 합니다. 인재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관리자가 일대일의 관계를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재가 떠나는 것은 회사를 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관리자를 떠나는 겁니다(They don’t leave company, but leave manager). 관리자들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직원들의 다양한 니즈를 파악해야 할 겁니다.한국은 노사문제가 심각합니다. 강성노조하에서 성과주의 경영이 이론처럼 쉽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성과주의는 회사 전체의 성과를 올리고 이를 직원들이 공유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체계입니다. 결국 회사의 성과가 상승하면 직원들이 이를 공유할 기회도 많아진다는 뜻이죠(인터뷰에 동석했던 박광서 타워스페린 한국사장은 “국내 기업끼리 경쟁할 때는 오너의 전횡이 가능했지만 글로벌시대인 요즘은 한국기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직원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유능한 경영자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거들었다).최근 직무몰입도 개념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직원이 만족하면 회사 전체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이를 통해 주주가치도 실현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리더가 분명한 회사의 비전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면 직무몰입도도 따라서 올라갑니다. 미국에도 심각한 노사문제를 겪은 뒤 이를 지혜롭게 극복한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의 노사문제를 제가 정확히 진단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에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죠.직원 개개인의 직무몰입도를 높여 생산성을 높이면 이는 곧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봅니다. 이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습니까.기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구조조정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입니다. 이 경우 남은 직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와 이직한 직원을 어떻게 처우해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죠. 그러자면 관리자들의 투명성이 우선돼야 합니다. 관리자의 관점과 직원들의 관점을 조율해 보는 것도 중요하고요. 직원들이 회사에 갖는 시각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두려움에 근거한 것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구조조정이 실제로 있을 예정이어서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면 이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정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만약 직원들이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막연히 감원이 있으리라는 불안에 의한 것이라면 이는 구조조정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이미 직원들에게 관리자가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니까요(이 부분에 대해 박사장은 “구조조정의 시기와 인원수는 시장에서 결정해주는 문제”라며 “우리나라 경영자들이 이 같은 결정을 순조롭게 할 수 있으려면 노동시장의 경직성 해소와 근로자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업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합니다. 보상을 논하기 이전에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용창출에 소극적인 한국기업을 향해 조언을 한마디 해주십시오.제가 경험했던 사례 가운데 한 호텔업체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회사는 9ㆍ11테러 직후 객실 투숙비율이 떨어지는 어려운 경영환경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근시안적으로 직원을 감축하지 않고 직원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 향상, 특히 젊은 직원들의 로열티를 강화하기 위해 직원교육에 과감히 투자했습니다. 최근 호텔경기가 회복되자 이 회사는 어려울 때 입사한 젊은 직원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회사의 CEO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원들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미래의 긍정적인 포지셔닝을 가능케 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쉬운 선택은 아니겠지만 신규채용을 줄이면 장기적으로 기업성장을 저해한다는 점은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인사컨설팅업체의 간부이기 이전에 한 회사에 소속돼 20년 넘는 기간을 근무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요. 어떤 보상이 가장 매력적이었나요.역시 ‘사람’(Smart People)이죠. 그동안 훌륭한 인재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양성과 지적 역량을 그들로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MBA 학위를 취득했을 때는 3년 정도 근무할 생각으로 타워스페린에 입사했습니다. 20년 넘게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가 다양한 기회를 주고 다양한 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카콜라, P&G, PGA투어 등 많은 유명한 고객사를 접하면서 유명 기업인들과 일할 기회를 갖게 된 것도 큰 장점입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회사죠.약력: 미국 랜돌프-매컨 대학 영문학과 졸업. 윌리엄 앤 메리대학 경영학 석사. 82년 타워스페린 입사. 97년 타워스페린 성과·보상부문 글로벌 리더. 2003년 7월 미국 컨설팅전문지 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컨설턴트 25인’에 뽑힘. 뱅크오브아메리카, 보잉, 코카콜라, 포드 등 다수의 글로벌회사 컨설팅을 맡아왔음.©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