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건설업은 경직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거칠고 딱딱하며 남성적인, 막일꾼이란 뜻의 일본말 ‘노가다’와 포크레인 같은 건설장비가 먼저 떠오르는 분야가 건설업이다.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건설업은 산을 밀어 도로를 닦고 황무지에 아파트를 건설하는 불도저식 국토개발과 궤적을 같이해 왔다. 지난 50여년간 수많은 ‘기적’을 일궈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한 주역이 건설업인 까닭에 그 어떤 감성적 요소가 침투할 겨를이 없었다.그런 건설업에 온기와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무조건 부수고 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소비자의 감성에 어필해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마케팅 기법이 확산되고 있다.건설업계가 감성마케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IMF 위기 이후부터다. 부동산경기가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부도가 줄을 이으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 짓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가 지났다는 것을 깨달은 건설업체들은 소비자에게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주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대형 건설업체들은 먼저 아파트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삼성이 한국형 아파트, 사이버아파트에 이어 ‘래미안’을 내놓았고, 롯데건설은 ‘낙천대’ ‘캐슬’, 대림은 ‘e-편한세상’, 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를 속속 선보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중견건설업체까지 퍼져 이제 웬만한 주택건설업체치고 브랜드 하나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지난 1~2년 사이 아파트의 브랜드화 추세가 뚜렷했다면 최근에는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감성마케팅의 두 번째 사이클인 문화마케팅의 트렌드가 시작된 셈이다.건설업 고유의 이미지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화예술분야에 지원과 투자를 시작한 것은 소비자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목적이 크다. 특히 주택의 경우 주소비층이 여성인 점에 착안, 그에 맞는 이벤트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고객 만족’과 ‘브랜드 홍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가 문화마케팅의 복안.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우 지난 5월 래미안아파트 입주자 5만명을 용인 에버랜드에 초청, 음악회를 열었다. 주택업계 최초이자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입주자 초청 음악회는 그 규모 면에서 타 건설업체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 강남구 일원동과 종로구 운니동에 운영 중인 두 개의 상설 주택문화관에서 ‘주부노래교실’, ‘컴퓨터교실’, ‘건강강좌’, ‘대학입시설명회’ 등 다양한 이벤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곽재민 삼성건설 마케팅팀 상무는 “음악회, 그림전시회 등 문화마케팅을 통해 건설업체에서 연상되는 딱딱한 이미지를 누그러뜨릴 수 있고 이벤트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 및 기업이미지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어 잠재고객 확보에 활용도가 높다”고 말한다.대우건설도 지난 2월 새 브랜드 ‘푸르지오’를 출시하면서 브랜드 홍보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대우는 행복사진전, 지하철 그림전시회, 화이트데이 이벤트 등을 개최하면서 단시간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었다.모델하우스와 고객대상 이벤트로 문화마케팅을 전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차원에서 문화예술에 직접 투자하는 예도 있다. 아파트 브랜드 ‘루미아트’로 잘 알려진 우림건설의 경우 심영섭 사장의 문화예술 취향이 감성마케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케이스다.지난 5월 사원과 협력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연 송승환 PMC프로덕션(‘난타’ 제작사) 대표 초청 강연회 직후 심사장은 즉석에서 ‘난타’ 티켓을 4,000장 구매키로 했다. S석을 기준으로 따지면 1억2,000만원에 달하는 거금. 이를 계기로 PMC프로덕션과 우림건설은 둘도 없는 협력관계를 맺었다. 이후 강남난타전용극장을 우림이 대신 임대, ‘우림청담씨어터’로 이름을 바꾸고 각종 공연장으로 제공하고 있다.이뿐만 아니라 우림건설은 명동 코리아극장을 뮤지컬전용극장 펑키하우스로 바꾸는 데 리모델링 지원을 했다. 김우식 홍보팀장은 “난타의 티켓구매가 현금지원이었다면, 펑키하우스 리모델링은 현물지원인 셈”이라고 밝히고 “건설회사가 가진 거친 이미지를 중화시키고 사회 공헌 효과까지 거뒀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림건설의 각 부서 벽면에는 우림청담씨어터와 펑키하우스의 공연작품 포스터가 빠짐없이 붙어 있어 여느 건설회사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심사장의 이러한 문화적 취향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다. 6년 전부터 매월 조회에서 시낭송을 해 오다 올해 들어서는 매달 1,000~2,000권의 책을 구입해 임직원과 주위에 선물하고 있다. 심사장은 “무식한 건설업계 사람이 책을 건네니 당황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울려 밥이나 술을 먹는 것보다 책 한권 주고받는 사람이 더 친해지는 법”이라는 지론을 편다.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SBS드라마 <완전한 사랑 designtimesp=24570>에는 이국적인 배경이 자주 나온다. 청원건설이 시행하고 벽산건설이 시공한 일산의 복합쇼핑몰 라페스타가 그곳이다.특이한 점은 이곳이 단순한 드라마 촬영장만은 아니라는 것. 드라마를 자세히 보면 주인공 차인표의 근무지는 ‘청원건설’과 비슷한 이름의 ‘청윤건설’이고 라페스타의 조감도와 미니어처가 극중 사무실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사 중에는 “사장님이 지구를 두세 바퀴나 돌아 쇼핑몰을 지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모두 실제 청원건설과 라페스타를 기반으로 한 대사들이다.이런 ‘확실한’ PPL(Product Placementㆍ상품을 이용한 간접광고)은 청원건설 문화마케팅의 일환이다. 드라마를 유치하기 위해 직접 세트를 지워줬고 방송국을 통째 유치하기 위해 설계단계에서부터 방송설비 기반을 구축했다. 현재 <완전한 사랑 designtimesp=24574>의 회장실과 차인표 사무실 세트가 라페스타 안에 설치돼 있고 케이블 음악방송 KMTV는 아예 이곳으로 방송국을 이전, 매주 쇼프로그램을 쇼핑몰 중앙광장에서 촬영하고 있다. 또 무대를 필요로 하는 예술가들의 공연이 상시 이어지고 있다.300m 길이에 양옆으로 점포와 식음료 시설이 늘어선 보행자 중심의 쇼핑몰인 이곳은 오페라하우스 라운지를 연상시키는 설계로 쇼핑을 하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설계의 특징을 십분 활용할 수 있게끔 마케팅 포인트를 잡은 셈이다. 최상 마케팅팀 대리는 “라페스타의 키 테넌트는 바로 문화”라고 말하고 “외국의 수많은 쇼핑몰과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벤치마킹해 문화적 요소가 가득한 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시도했다”고 밝혔다. 즉 ‘문화’라는 포인트로 고객을 견인해 쇼핑몰 활성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주말이면 5만명의 인파가 몰려들고 오후 7시면 재료가 떨어져 영업을 할 수 없는 식음료 업소가 10여개에 달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이 같은 문화마케팅은 앞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김우식 우림건설 홍보팀장은 “벤치마킹을 원하는 건설사들의 문의가 많다”고 전하고 “상품의 질과 기술이 평준화되고 있는 추세에서는 차별화된 마케팅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요소이므로 감성에 호소하는 문화마케팅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 = 문화, 감성’이라는 공식이 어색하지 않은 때가 멀지 않아 보인다.돋보기 | 요즘 모델하우스는 만능 공간공연·강좌·촬영 등 쓰임새 다양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건설업체의 모델하우스는 분양 프로젝트가 끝나면 철거돼 수명이 6개월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치도 사업현장을 따라 이동해서 수요자는 물어물어 찾아가기 일쑤였다.그러나 요즘 모델하우스는 달라졌다. 건설업체마다 교통요지에 부지를 확보해 상설전시관을 만들면서 견본주택을 보여주는 본연의 임무 외에 각종 문화이벤트 및 행사의 요람으로 자리잡고 있다.삼성은 강남과 강북에 대형 주택전시관을 마련해 문화센터 수준의 주부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고 대림산업도 강남구 신사동에 상설전시관을 열어 어린이연극, 뮤직비디오 상영 등의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SK건설도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 개관한 모델하우스를 상설주택전시관으로 용도변경해 문화행사를 통해 주민교류의 장으로 활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실제 주택과 똑같이 꾸며져 있어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으로 활용되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최근에는 건설업체들이 드라마 촬영장으로 자사 모델하우스를 제공키 위해 마케팅을 펼칠 정도다.이밖에 우림건설은 매월 명사 초청 강연회를 서초동 상설전시관에서 열어 임직원 교육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