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거리를 걷다 보면 ‘스파’(SPA)라고 쓰인 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스파가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스파가 관심을 모아왔다. 미국인 상당수가 건강을 위해, 미용을 위해 스파를 찾고 있다. 퇴근 후에 스파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파는 로마시대의 온천에서 유래된 것으로 최근에는 물로 피로를 풀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스파는 특히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남성고객이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여성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스파는 여성들의 외모를 관리하는 곳으로 뿌리내리고 있다.최근 미국 스파 비즈니스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스파들이 10대 소녀들에게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파는 대개 성인, 특히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여성고객만으로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컨설팅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만 9,600개의 스파가 영업을 하고 있고, 전체 시장 규모가 연간 107억달러에 달한다. 다른 잠재고객에게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들이 최근 10대 소녀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새로운 시장 창출에 있다. 스파 비즈니스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파 입장에서 외모에 관심이 많은 10대 소녀들은 엄청난 잠재고객이다. 10대 고객이 본격적으로 스파를 찾게 되면 상당한 시장 창출 효과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일찍 스파를 경험한 소녀들은 성장 후 고정고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일석이조인 셈이다.스파는 10대 사이에서 이미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스파의 무게중심이 건강에서 미용으로 옮아가면서 10대들의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스파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손톱과 발톱 매니큐어를 바르고, 피부를 관리한다. 외모에 민감한 10대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 여기에 스파들이 본격적으로 10대 고객들에게 눈을 돌리면서 자연스럽게 스파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스파를 이용하면서 마치 어른이 됐다는 심리적 만족감도 10대들을 스파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데이트, 생일파티 프로그램 마련스파들은 사실 일찌감치 10대 소녀 잡기에 나섰다. 국제스파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회원사의 3분의 1이 10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스파는 더욱 활발하게 10대 고객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스파에서 생일파티를 하고, 데이트 프로그램을 마련, 고객을 모으고 있다. 텍사스에 위치한 어번리트리트는 생일파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친구들과 함께 마사지를 받고, 머리를 손질하고, 매니큐어를 칠하면서 웃고 떠들 수 있게 한 것이다. 뉴햄프셔의 리버밸리클럽은 미용서비스는 물론 음식, 음악까지 제공하는 생일파티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스파에서 데이트를 하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남자친구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소녀들의 감성에 호소한 프로그램이다. 모녀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갖는 프로그램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칫 대화가 단절될 수 있는 부모와 자식간을 스파가 연결해주고 있는 것. 엄마와 딸이 한공간에서 함께 피부마사지를 받으면서 평소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스파에서 미용관리를 한 후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한차원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 하는 패키지 상품도 많이 팔리고 있다.지난 여름에는 10대만 전문으로 하는 스파까지 등장했다. 텍사스 플라노의 세븐틴스튜디오스파살롱이다. 지난 여름 문을 연 세븐틴은 12~19세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일반 스파에서 10대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속속 선보이고 있지만 오직 10대를 위한 스파는 세븐틴이 처음이다. 세븐틴의 창업자인 수잔 티어니 사장은 “10대 소녀들은 자신만의 취향과 유행을 따라가는 것을 좋아한다”며 “성인을 위한 스파와 차별화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세븐틴은 10대가 원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신 패션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문가들의 미용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피부와 체형관리 세미나도 수시로 열린다. 간혹 패션쇼도 개최해 어린 고객들이 최신 패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비디오게임과 초고속인터넷을 쓸 수 있는 컴퓨터도 마련해 10대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각종 미용용품을 판매하고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용과 관련한 모든 것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세븐틴은 10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다. 머리손질이 35~50달러, 염색은 20~75달러다. 피부관리는 보통 45~95달러, 손발톱을 다듬는 것은 3~42달러이다. 화장은 25달러선이다. 전신마사지는 90분에 90달러, 비교적 가벼운 미니마사지는 30달러선이다. 머리손질에서 매니큐어, 마사지, 화장까지 할 수 있는 토털 패키지는 총 4시간이 걸리며 170달러 수준이다.스파들이 10대 청소년들에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구매력이다. 청소년들의 구매력은 상당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일부 청소년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지만 대개 고정적인 용돈이 있다. 설령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해도 용돈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구매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10대들의 소득은 거의 소비로 이어진다. 10대 소비자를 전문으로 하는 시장조사기관인 틴에이지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12~19세의 구매력은 지난해 1,700억달러였다. 일주일에 1인당 평균 101달러를 지출한 셈이다. 지난해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구매자 그룹이다. 2001년에는 1,720억달러, 2000년 1,550억달러를 기록했다.청소년은 또 성인과 달리 구매패턴에 급격한 변화가 없고 때로는 경기상황과 반대로 움직인다.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서 성인 소비자들이 전반적으로 소비를 줄이려는 추세인 반면, 전체 청소년의 절반에 가까운 48%는 향후 12개월 동안 오히려 소비를 늘릴 것이라고 답했다. 34%는 올해와 같은 수준에서 소비를 하려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를 줄일 것이라는 응답은 16%에 그쳤다.청소년들의 구매력이 부각되는 다른 이유는 10대 인구의 증가다. 이른바 틴에이저로 분류되는 12세에서 19세 인구는 지난 92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1년 기준 12~19세 인구는 3,200만명이었다. 청소년 인구는 2010년까지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일각에서는 스파를 선두로 한 10대 대상 미용 비즈니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용 관련 회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청소년들의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자칫 ‘외모가 가장 중요하다’는 그릇된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건강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창 성장할 나이인 청소년들이 너무 일찍 치장을 하게 되면 피부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0대 사이에 인기가 높은 선탠이 과할 경우 피부암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국제암협회은 저널을 통해 최근 선탠을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시작하면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보도했다.세븐틴의 티어니 사장은 그러나 “청소년 대상의 스파는 단지 여자아이들을 성인여성처럼 보이게 꾸미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며 “자기 스스로 관리하고 돌볼 수 있게 돕는 것이 청소년 전문 스파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