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통합 넘어 화학적 통합 도모

2003년 한해 동안 금융권은 굵직한 인수ㆍ합병(M&A)을 겪었다. 종목코드 ‘000010’인 최장 역사를 자랑하던 조흥은행은 신한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또 외환은행은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에 매각됐다.98년 이전 27개였던 시중은행 중 5개가 98년 말 정부 주도의 1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출됐다. 그후 다양한 형태의 합병을 통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은행은 불과 10여개. 남은 10여개의 은행 또한 M&A 전선에서 열외는 아니다. 합병자 혹은 피합병자라는 입장 차이는 있겠지만 은행들의 추가적인 M&A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한미은행의 최대주주인 칼라일과 제일은행의 최대주주 뉴브리지 등 외국계 사모펀드의 국내 진출에 이어 글로벌 은행들도 국내시장 진출전에 뛰어들었다. 스탠다드차타드와 HSBC, 씨티은행 등은 한국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이 같은 금융권 M&A 가속화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논의가 일고 있다. 효과적인 인수 후 통합(Post Merger IntegrationㆍPMI)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2003년 11월 신한금융지주회사 주최로 열린 ‘성공적 통합(PMI) 전략’ 국제심포지엄에서 선우석호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M&A를 통해 한 기업을 인수한 경우 실질적인 인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인수 후 통합(PMI)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며 “실제로 인수 그 자체보다 PMI가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과정”이라고 말했다.그는 물리적 요소의 성공적 결합, 지주회사제도의 충분한 활용, 문화통합 등이 M&A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봤다. 물리적 요소의 결합을 통해 300여개의 신한은행 지점과 800여개의 조흥은행 지점의 상호보완 효과를 낼 수 있다.선우 교수는 또 지주회사의 체제는 통합 실행상에서 유연한 선택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PMI 전략 실행에 있어서도 강점을 지닌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지주회사 CEO의 강력한 리더십, 통솔력이 작동돼야 한다”며 “지주회사의 CEO가 자회사 중 매출액 등 비중이 큰 회사의 CEO를 겸임하는 체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선우교수는 특히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한 문화통합전략 구사를 강조했다. 단순한 물리적 통합을 통한 규모 증가뿐만 아니라 화학적 통합의 중요성을 제시한 셈이다. 그는 합병시 직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직원의 스트레스는 합병시 상이한 문화와 관련된 스트레스와 합병 후 인사상 이슈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했다.선우교수는 “이러한 스트레스는 총 9단계의 감성단계로 분석이 가능하다”며 “거부-두려움-분노-슬픔-인정-안심-관심-호감-향유 등의 단계가 그것이다”고 역설했다.피합병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단계인 거부(“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에서 2단계 두려움(“그 일은 언제 일어나지?” “나한테 어떤 영향을 주지?”), 3단계 분노(“우리는 팔려가는 거야”)로 연결된다. 그후 4단계 슬픔(“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5단계 인정(“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구나”), 6단계 안심(“생각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구나”)으로 이어진다. 7단계 관심(“안도감의 증가”)과 8단계 호감(“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구나”), 9단계 향유(“참 잘된 일이었구나”)로 발전한다는 설명.선우교수는 신한과 조흥의 경우를 노조의 성명서, 직원 의식조사 등을 근거로 분석하며 조흥은행은 현재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 단계는 ‘현실에 대한 인정’의 바로 전 단계로 능동적 문화통합 전략실행을 위한 최초의 단계라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현실에 대한 인정’의 단계는 바로 능동적으로 문화통합전략을 실행해야 하는 최초의 단계다.그는 직원들의 불안 해소에 초점을 맞춘 문화통합 프로그램의 수행이 선행돼야 M&A를 통해 전략적으로 의도하는 합병시너지보다 더 큰 시너지 창출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구체적으로는 합병 전에는 두 기업의 문화를 세부적으로 평가해 진행사항을 자세히 알려 직원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제거, 합병 후에는 직원들의 걱정과 기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금융업은 소위 ‘사람장사’로 그 어떤 산업보다도 인적자원의 질이 경쟁력을 규정한다”며 “핵심 직원에 대한 스톡옵션 도입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글로벌컨설팅회사 액센츄어의 그레그 체스트너트 M&A 글로벌 본부장도 금융산업의 통합(PMI) 전략을 강조하는 전문가다. 그는 1990년대 이후 5억달러(약 6,000억원)가 넘는 150건의 M&A 계약을 분석한 결과, 이중 36% 이상은 시장가치 이상의 프리미엄을 지불했음에도 M&A 결과가 낙관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체스트너트 본부장은 “확고한 리더십 확립이 PMI 수행의 핵심 성공요인”이라며 “통합추진조직의 조기 출범을 통해 신속하게 리더십을 확보해야 통합 성공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체이스맨해튼은행과 케미컬은행의 예를 들며 “확고한 리더십을 조기에 확보, 3분의 2 이상의 통합작업을 1년 이내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이들 은행은 합병 3년 사이에 주가가 두 배 이상 상승해 가시적인 성공을 거뒀다.체스트너트 본부장은 또 PMI 작업은 ‘커뮤니케이션과의 전쟁’이라고 단언하며 지속적이고 인내심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행을 촉구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인수ㆍ피인수 기업의 문화적 통합에 실패해 M&A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체이스맨해튼은행의 경우 마케팅회사나 PR 전문회사의 도움을 구해 전략을 펼쳤으며, 내셔널뱅크는 인수 후 통합을 위한 별도의 커뮤니케이션팀을 조직해 PMI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실례를 들었다.신한금융지주회사의 인수합병이 발표된 직후, 주가가 약 38.5% 상승했다는 사실을 지적한 체스트너트 본부장은 이는 동기간의 다른 금융업종의 22.6%에 비해 2배 가까운 상승률이라고 평가했다. 시장의 평가가 기본적으로 호의적이라는 얘기다.그는 이어 “신한금융지주회사는 통합유예기간의 설정, 지주회사의 조율에 의한 공동경영위원회의 운용, 새로운 은행창출 지향, 지주회사체제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융합 프로그램 실시 등 낯선 시도가 많다”며 “이러한 방식으로 통합에 성공하면 M&A를 추진하는 기업에 새로운 통합모델의 지평을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