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선홍 전 기아자동차 회장(72)의 복귀 소식이 화제다. 말단사원으로 출발해 국내 10위권 그룹의 총수로 등극한 그의 인생은 수많은 샐러리맨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봉고신화’로 대표되는 그의 성공기는 부도, 감옥행 등으로 땅에 버려졌지만 그가 국내 자동차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났고, 다시 자동차업계에 복귀했다. 북한에서 조립생산을 하는 조그마한 회사(평화자동차)의 고문이지만 그의 의욕은 기아자동차 시절 못지않다는 것이 측근들이 전하는 말이다. 당시 김 전 회장과 운명을 같이했던 경영진은 “(그의 복귀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동차산업에 대한 그의 열정과 경험을 그냥 썩히기는 너무 아깝다는 것이 이들이 그의 복귀를 반기는 이유이다.그렇다면 20~30년간 김 전 회장과 고락을 같이하며 기아그룹을 일군 핵심 임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97년 부도 이후 현대자동차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300여명에 달하는 임원들 대다수는 옷을 벗었다. 현재 기아자동차의 상무급 이상 임원 50여명(금감원 감사보고서) 중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특히 합병 이전 핵심 경영진은 거의 퇴진했다고 보면 된다.97년 8월24일. 그룹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 힘을 쓰고 있던 김 전 회장은 대대적인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김 전 회장 본인은 그룹을 총괄하되 실무적으로는 3명의 주력 사장단이 경영실권을 나눠 분담하는 트로이카 경영체제를 구축한 것. 당시 박제혁 기아자동차 사장은 생산 및 관리부문을 담당하고, 송병남 그룹 경영혁신기획단 사장은 자구계획수립과 추진, 유영걸 기아자동차판매 사장은 영업 및 판매를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김 전 회장은 이 트로이카 사장단과 함께 마지막 승부수를 걸 작정이었다.박제혁 전 사장(61)은 김 전 회장의 ‘오른팔’, ‘분신’으로 불릴 정도로 측근 중의 측근이다. 사장 재임 때도 늘 ‘김회장과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였다. 요즘도 김 전 회장을 자주 만날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66년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69년 기아산업에 입사했다. 10년간 인사부와 기획관리실을 거쳐 비서실에서 일하면서 김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97년 11월 부도난 기아자동차의 사장 및 관리인을 맡았으나 이듬해 4월 물러났다. 기아에서 물러난 그는 2000년부터 넵스테크놀로지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넵스테크놀로지는 IT솔루션 개발과 엔지니어링, 하우징, 물류서비스 등을 하고 있다. 그는 “그저 후배 일을 도와주는 차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박 전 사장은 97년 기아자동차가 무너지는 순간에 대해 “너무나 허망했다”고 회고했다. “신제품 개발이 끝난 상황에서 화의요청을 한 것인데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밀어붙였다”며 쓸쓸하게 말했다. 그는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특별한 게 없다”며 입을 닫았다.98년 당시 기아자동차의 마지막 사장인 송병남씨(67)는 현재 부동산 리츠 회사인 리얼티 어드바이저스 코리아 회장을 맡고 있다. 송회장은 67년 기산의 부설연구소인 한국경제연구소의 조사부 부장을 맡으면서 기아와 인연을 맺었다. 71년 독일 유학으로 기아를 떠났으나 82년 부산수리조선소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84년 소프트웨어업체를 차려 독립했으나 88년 다시 기아정보시스템 사장으로 돌아왔다. 이후 98년 4월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6개월간 일하다가 물러났다. 송회장은 “지난 연말에 김 전 회장을 만났다”며 “중국 자동차산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귀띔했다.유영걸 당시 사장(63)은 현재 능률협회 총괄사장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넓은 유사장은 68년 기아와 인연을 맺었다. 92년 기아자동차 기획조정실 전무이사를 지낸 뒤 96년 기아차서비스 대표이사 사장, 97년 기아차판매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99년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몸을 담아 CS(고객만족)부문장을 거쳐 2001년 대표이사 사장, 2003년 3월 총괄사장으로 승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당시 김 전 회장이 트로이카 경영진을 구축하면서 15명에 달하는 부회장 등 고문진은 대거 퇴진했다. 그 무렵 언론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동서이기도 한 도재영 전 부회장(66)의 퇴진을 ‘읍참마속’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김 전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 전 부회장은 30년을 기아에서 보낸 정통 ‘기아맨’이다. 66년 기아그룹에 입사해 93년 기산 자동차사업부문 사장, 97년 기아자동차판매 대표이사 부회장 등을 거쳤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화제를 불러모았다. 정수기회사의 세일즈맨 생활을 1년간 하는가 하면 사단법인 우리민족서로돕기 지도위원 등 시민운동에도 열성적이었다.지금은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사단법인 한국자동차진단보증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둘 다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뜻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기아사태 당시 경영종합기획실장을 맡고 있던 이종대 전 사장(63)은 현재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구조조정론’을 강의하고 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 전 사장은 89년 기아경제연구소 소장으로 기아차와 인연을 맺었다. 97년 11월 법정관리로 넘어간 기아그룹 경영관리단 대표이사 사장, 98년 기아차 기획총괄 사장 등을 겸임하면서 기아차 매각을 이뤄냈다.이후 국민일보 사장을 거쳐 2000년 10월 대우자동차 회장으로 대우차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진행, ‘구조조정의 달인’이란 별칭을 얻었다. 때문에 참여정부 출범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이 전 사장은 요즘 여유로운 모습이다. 일체의 비즈니스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아코디언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마규하 전 기아그룹 부회장(69)은 60년 기아산업에 입사, 97년 11월 물러나기까지 37년간 기아그룹에서 근무한 정통 기아맨이다. 아세아자동차 공장장, 기아정기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쳤다. 그는 현재 기아에서 퇴임한 이듬해인 98년 3월 경영컨설팅사인 나오큐리서치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산업대학 겸임교수로 기계시스템 설계, 품질경영 등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매주 수요일 동료임원들을 만나고 있지만 개개인의 사정을 상세하게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밖에 김 전 회장과 함께 퇴진한 한승준 전 부회장, 이기호 전 종합조정실장 등은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경영진은 특별한 모임보다는 그저 집안 대소사 때 얼굴 보는 정도라고 한다.돋보기 | 김선홍은 누구인가‘봉고신화’ 일군 자동차업계 대부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은 공채 1기, 말단사원으로 시작해 현대자동차에 이어 국내 2위의 자동차업체를 일궜다. 김 전 회장이 기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58년 4월1일이다.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잇달아 성사시키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김 전 회장은 87년 입사 30년 만에 기아자동차 사장에 올랐다. 기아는 처음에 자전거를 생산하는 업체에서 리어카, 3륜차를 거쳐 승합차 사업으로 승승장구한 기업이다. 이런 기아의 역사는 곧 김 전 회장의 역사나 다름없다. 기아자동차의 발상지인 소하리 공장 건설을 책임지고 추진했고, 이후 기아를 연산 100만대, 세계 17위의 세계적 회사로 성장시킨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국민차사업건을 따내는 등 일찍이 해외진출에도 성과를 거뒀다. 그의 경영철학은 ‘본경영’이다. 자동차를 본(근본)으로 한다는 것이다. 원가가 더 들더라도 완벽한 차를 만들도록 지시해 실무진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당시 현대와 대우의 경영진도 기아의 기술력을 인정할 정도였다. 그런 그도 사업 확장, 외환위기의 조짐 등 여러 이유로 발목이 잡혔다. ‘최소한 40년 기아인생을 채우고 싶다’는 말은 자주 했지만, 결국 1년을 앞둔 97년 그의 차는 더 이상 굴러가지 않았다. 그리고 6년 만에 다시 자동차사업에 발을 담갔다.